생각의 편린들

조현아 판결에 대중들은 왜 화가 났나

새 날 2015. 5. 2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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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우리 사회에 수퍼 갑질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지난해 12월 30일 구속된 이후 143일 만의 일이다.  서울고법 형사6부는 22일 조현아 씨에게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녀가 석방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는 달리 항로변경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탓이다.

 

당장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의미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물론이거니와 '유전집유 무전복역'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어쩌면 진작부터 이러한 결과를 예견했던 대중은, 혹시나 하며 다른 결과를 기대했건만 역시나로 귀결되자 그로부터 비롯됐음직한 허탈한 감정을 마구잡이로 발현시키고 있는 모양새다.  수감돼 있을 때도 특혜 논란을 일으키더니, 석방되는 순간까지도 그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던 그녀다.

 

ⓒ서울신문

 

그렇다면 이번 판결이 여론의 뭇매마냥 불편부당한 결과임이 분명 맞는 걸까?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그러하다.  그녀의 갑질로 인해 상처 입은 대중들의 영혼을 달래고 보듬기엔 이번 판결 결과는 턱없이 부족하기만하다.  하지만 법이란 게 감정에만 마냥 호소할 수 있는 그러한 성질의 것이 아닌 데다, 우리가 느끼는 분노 따위를 고스란히 판결 결과에 모두 담아내기엔 범죄 행위 자체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 때문에라도 더더욱 한계가 존재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 아닐까 싶다. 

 

우선 집행유예의 직접적인 사유가 된 것으로 알려진 항로변경 혐의 관련 사항은 법리를 다투는 사안이라 차치하더라도, 무엇보다 이번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되는 대목 중 하나는 2억원의 공탁금이 아닐까 싶다.  그녀는 금전적으로나마 잘못을 빌겠다는 취지로, 사과의 뜻을 공탁금의 형식으로 표해 왔다.  공탁금이란 형사사건에서 가해자 측이 피해자 측에 성의 표시를 하여 처벌이 좀 더 가벼워질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자 법원에 맡기는 돈이다.  형사사건에 있어 공탁금이란 손해보상적 성질을 띠는 제도인 탓에 일종의 필요악이다.  물론 이를 오롯이 형량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 해도 딱히 막을 재간은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그녀의 공탁금에 진정성이 담겨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우리로서는 제대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노릇이나, 법리적으로는 충분히 정상 참작됐음직하다.

 

조현아 씨가 맡긴 공탁금 2억원이란 액수는 상당하다 못해 놀랍다는 게 법조인들의 한결 같은 반응이다.  재벌에겐 푼돈에 불과할지도 모를 2억원, 서민들에겐 평생 가야 한 번 만져볼까 말까 할 만큼 어마어마한 액수다.  공탁금 하나만으로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어쨌거나 형사재판의 경우 공탁금은 합의를 위해 노력한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지는 터라 형량 판단에 있어 중요한 참작 요소가 될 수밖에 없는 게 엄연한 법의 현실일 테다.  비록 조현아 씨가 이러한 법의 한계를 노리고 공탁금을 걸었다거나, 재벌에게 있어 2억원이란 액수가 껌값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법 감정과 국민 정서 사이, 도저히 메울 수 없을 정도의 커다란 간극은 아마도 이러한 지점 어딘가에 있을 듯싶다.  2억원의 공탁금이란 대중들에게 또 다시 돈으로 자신의 잘못을 회유하려는 전형적인 부자들의 위선으로만 비칠 뿐이다.  그녀가 머리를 조아리고 수감된 상황에서 반성문을 썼다 한들, 진정성 있는 사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상과 같은 맥락이다.  법리적으로는 분명 형량 변화에 영향을 끼쳤을 테지만 말이다.   

 

대중들은 "피고인은 두 살 쌍둥이 자녀의 엄마이고 범행 전력이 없는 초범이며 대한한공 부사장 지위에서도 물러났다. 피해자의 상처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재판부의 판시에 단단히 뿔이 난 듯 냉소를 쏟아붓고 있는 모양새다.  왜 아니겠는가.  만에 하나 일반인일 경우에도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게 대중들의 한결 같은 반응이다.  아울러 조현아 씨가 진지하게 성찰하며 반성하고 있다지만, 대중들의 관점에서도 과연 그러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일반인들에게도 법이 같은 잣대로 적용되고 있거나 조현아 씨의 사과에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면 이러한 불만과 분노 표출 따위 애시당초 존재할 리가 없었을 테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분노하고 경계해야 하는 대목은 단순히 이번 판결 결과만이 아닐 테다.  돈 많은 사람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만인 앞에 평등하지 않은 법과 법조계의 좋지 않은 관행, 그리고 조현아 씨 석방과 동시에 '마녀사냥은 그 정도로 충분하다'라는 반응을 일제히 쏟아내고 있는, 국민 정서 따위에는 애시당초 관심조차 없으며 오롯이 '가재는 게편'임을 내비치고 있는 재계의 반응에 대해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조현아 씨를 비난했던 이유는, 조직 내에서의 상하 간 위계질서를 떠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반드시 필요한 배려와 존중이 부족했던 '갑질' 때문이다.  우리는 조현아 씨가 대중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던 모습을 기억한다.  조현아 씨는 앞으로 이러한 반성 행위가 진정성을 띤 것임을 스스로 입증해야 할 책무가 있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비슷한 류의 갑질 논란이 벌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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