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부부인가요 아니면 불륜인가요?

새 날 2015. 3. 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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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조금은 한가했던 시간이라 머리카락을 깎으러 미용실에 들렀습니다.  물론 제 전담 코디네이터이자 스타일리스트인 아내님과 함께했지요.  아내님의 장난끼가 발동한 모양입니다.  사실 제 머리카락은 제 것이 아니랍니다.  앞 머리카락의 길이부터 전체적인 스타일까지 아내님의 세심한 참견(?) 없이는 제 마음대로, 그리고 미용실 헤어 디자이너조차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대뜸 요즘 유행하는 투블럭 스타일로 깎아달라 주문하는 아내입니다.  옆 머리카락을 훌러덩 밀더니 머리 피부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과감하게 깎아버리더군요.  마치 모히칸 스타일 같습니다.  제가 모히칸 같다고 뭐라 하니 뒤에서 재미있다며 깔깔거리는 아내입니다.  그러자 제 머리를 손질하던 헤어디자이너께서 한 말씀 거들고 나섰습니다.

"두 분을 보고 있으면 부부가 아닌 것 같아요.  어찌 그렇게 재밌게 지내시는지, 지금도 그렇지만 평소 이 앞을 지나다닐 때에도 유심히 관찰하고 있으면 무척 사이가 좋아 보였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볼 땐 필시 불륜으로 의심했을 것 같아요."


물론 그 자리에선 그저 웃고 말았던 저희 부부입니다만, 곰곰이 되짚어 보니 그리 단순한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  비단 이번 뿐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주위에서 비슷한 말을 자주 듣곤 했기 때문인데요.  가장 흔한 표현으로는 "두 사람은 아직도 신혼 같애" 따위의 말들입니다.  

 

부부가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이 이상하게 비치는 세상, 씁쓸하거니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한 단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평소 친구들끼리의 대화 중에도 뼈있는 농담을 자주 듣곤 합니다.  일례로 "가족끼리는 그러는 거 아니래" 따위의 말들입니다.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사실 우리 부부의 살아가는 모습이 지극히 정상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들에겐 다소 이상하게 비치는 모양입니다.



제 서식지 주변엔 북한산 등반객들이 늘 넘쳐나는데, 이를 바라보는 일각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은 편입니다.  다소 황당하지만 중년들의 불륜행위의 메카로 등산이라는 취미생활이 떠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산 주변 전철역 입구에 즐비한 모텔들은 전부 등반객들 때문에 먹고 산다는,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풍문들마저 떠돌아 다닙니다.  이러한 편견 때문에 자칫 일반 등반객을 향한 시선마저 삐딱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게 할 정도입니다.  불륜 공화국이라는 말이 괜한 게 아니더군요. 

 

ⓒ한겨레신문

 

때마침 헌재의 간통죄 위헌 판결이 있었습니다.  미용실에서의 일화가 어느덧 간통죄로 연결지어지던 순간, 이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겠구나 하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 개인적인 입장에선 간통죄 폐지는 진작 이뤄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성적 자기 결정권 따위의 어려운 법률 용어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개인들의 지극히 사적인 영역을 국가가 통제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21세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간통죄가 어이없게 다가오는 건, 불륜행위를 저지른 당사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더라도 육체적인 행위만 있으면 해당 법률에 의해 사법처리되고, 그 반대로 아무리 서로 마음을 주고 받을 만큼 깊은 사이라 해도 육체적인 관계가 없다면 이를 피해갈 수 있다는, 결정적인 모순 때문입니다.

 

그러나 간통죄 폐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어쩌면 우리 사회에 만연돼있는 좋지 않은 풍조가, 최소한의 심리적 안전장치라 할 수 있는 간통죄의 폐지로 인해 상승효과를 불러오며 실제로 극단적인 가정 파괴로까지 대거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입니다. 

 

부부 간의 다정스러움은 극히 자연스럽기도 하거니와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선 왠지 이러한 모습 연출을 낯 간지럽게 만드는 경향마저 있습니다.  이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우리네의 이율배반적인 정서 아닐까 싶습니다.  앞에선 부부애를 말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당장 간통죄 폐지를 걱정해야만 하는 세태,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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