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결코 유쾌할 수 없었던 제주도 여행

새 날 2015. 2. 24.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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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큰 맘 먹고 오른 여행길이었습니다.  부모님을 비롯한 10명이 넘는, 온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이었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사는 방식이 각기 다르고, 모두들 먹고 사는 일에 치이다 보니 일정 맞추는 일조차 사실상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시간을 절대로 맞출 수 없었을 텐데, 다행히 제법 길었던 설 연휴 덕분에 모처럼의 의기투합이 가능했습니다.  남들에겐 비록 2박3일의 흔하디 흔한 여행에 불과할지 모르나 저희 가족 모두에겐 무척이나 귀한 기회였습니다.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이동해야 하기에 자유여행 방식보다는 패키지 상품이 적합할 듯싶었습니다.  물론 자유여행과 패키지 여행의 장단점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키지 상품을 굳이 선택하게 된 데엔 앞서의 이유 때문입니다.


제겐 생애 두 번째의 제주도 여행이었습니다.  대략 15년 전쯤 다녀갔던 제주도는 자유여행 방식이었으니 패키지로 여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셈입니다.  명절 연휴를 이용해 온 가족이 한꺼번에 여행길에 오르게 된 것은 귀하디 귀한 시간을 쪼개서라도 좋은 곳에서 함께 행복한 추억을 쌓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리 썩 유쾌한 여행길은 못 되었습니다.  이유는 여럿 있지만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코스에 대한 문제점입니다.  패키지 상품엔 으레 반 강제성을 띠는 지역 특산품 따위를 판매하는 코스가 반드시 끼어있다고 들었습니다.  뭐 좋습니다.  그들도 먹고 살아야 할 테니 관광객으로부터 일정 부분의 수입을 얻는 방식에 대해선 딱히 태클을 걸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가 조금 지나친 측면이 엿보입니다.  귀한 시간을 쪼개 여행길에 올랐건만, 알토란 같은 여행지를 돌아다닐 시간도 부족한 상황에서 매일 평균 한 개 이상에 해당하는 상품 판매 코스를 빠짐없이 도는 방식은 영 거북하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일례로 감귤농장 견학이라 해놓고 막상 방문하니 실제로는 산삼 배양을 하는 농장이었으며, 산삼 배양 엑기스가 마치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홍보에 열을 올리고, 판매원들이 관광객들에게 일대일로 달라붙은 채 사줄 것을 호소하는 모습은 영 보기 불편했습니다.  가격도 만만찮은 제품인데 카드 무이자 결제가 가능하다며 마구잡이로 구입을 종용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산삼과 제주도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다음날은 민속마을 견학이었습니다.  그곳 마을 주민이라며 소개된 사람이 열심히 마을에 대해 설명해 주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 말 뼈 진액 홍보 요원으로 돌변하였습니다.  해당 제품이 무슨 커다란 효험이 있는 양 떠들며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결코 값싼 금액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구입하고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판매원들과 가이드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두번째로는 가이드 문제입니다.  과연 자격을 갖춘 가이드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관광객들의 기분을 망치게 하는 데엔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물론 패키지 상품을 구입할 때 저희도 확인한 바이지만, 분명 옵션이 몇 가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추가로 요금을 지불하고 선택 가능한, 말 그대로 선택 관광입니다. 

 

저희가 구입한 상품엔 '몽골 마상 쇼'와 '중국 기예단 서커스'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한 명당 2만원 가까이나 하는 가격이었습니다.  제주도 경관만 구경하기에도 벅찬 시간이었기에 별로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당연히 해당 상품을 선택하지 않을 요량이었죠.  그러나 가이드는 선택을 거의 강요하다시피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현찰로 미리 준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60만원 돈을 현찰로 내라며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저흰 이만한 금액이 현찰로 준비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별로 내키지 않았던 탓에 선택하지 않겠노라 하였습니다.

 

가이드는 노골적으로 기분 나쁜 티를 내고 있었습니다.  웬만하면 자기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선택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후로 저희는 줄곧 가이드의 눈치를 살펴야만 했습니다.  제주도 특산품이라고 하던 귤 초콜릿을 조금 싸게 파는 듯해 사왔더니, 이내 차 안에서 마이크로 초콜릿엔 진짜와 가짜가 있다며 자신이 소개해 주는 쇼핑몰에서 파는 게 진짜인데 그걸 모르고 구입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마치 우리를 힐난하는 듯한 언사를 내뱉고 있었습니다. 

 

이쯤되면 가이드가 관광객의 눈높이를 맞추는 게 아니라 거꾸로 관광객이 가이드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자격 미달의 상황은 더욱 많았지만, 차마 언급하기 곤란한 내용도 있어 더 이상은 말하지 않으렵니다.  어쨌거나 분명히 저희가 돈을 주고 구입한 상품이건만, 상황이 어찌 거꾸로 된 것 같지 않은가요?



설 연휴는 관광업계에 있어 손꼽히는 특수이자 극성수기에 해당합니다.  때문에 여행비용을 평소의 두 배 이상은 지불해야 할 만큼 비싸기 이를 데 없습니다.  저희 입장에선 두 배 이상의 비용을 들인 여행인데 결과적으로는 쪽박을 찬 듯한 이 느낌, 과연 무엇 때문일까요?  앞서 언급했던 두 가지 요소 외 여행지도 한 몫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희 스스로가 선택한 상품이기에 태클을 걸기엔 무리가 따르는 일이란 사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는 이번 여행을 통해 제주도에 대한 평소의 환상이 완전히 깨졌기 때문입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올레길과 성산 일출봉 그리고 산굼부리를 빼고는 죄다 '무슨 무슨 랜드'라 불리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코스, 그도 아니면 상품 판매하는 곳을 도는 게 이번 제주도 여행의 핵심 관광 코스였습니다.  참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제주도만의 정취를 느끼기엔 한없이 부족했습니다.  이곳이 진정 제주도가 맞는지, 마치 내륙을 여행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습니다.  

 

오늘자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중국인들이 춘절을 맞아 한국을 대거 찾았다가 제가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이유 때문에 다시는 한국을 찾기 싫다라는 기사 한 꼭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갔을 당시에도 제주도엔 온통 중국인 천지였습니다.  심지어 제주 시내의 조그마한 분식집 같은 곳에서도 이들을 겨냥한 듯 중국어로 된 메뉴가 창문 가득 채워진 걸로 봐선 중국인들의 위세가 대단한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주 시내에서 들른 그러한 류의 식당에선 정성없는 음식과 재활용한 듯한 김치(라면 면발이 나왔어요 ㅠㅠ) 그리고 비싼 가격으로 국내외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내국인들을 상대함에 있어서도 이 정도인데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에겐 어느 정도의 수준이었을까를 생각해 보니 기사 내용이 충분히 납득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들렀던 제주도 여행길, 결과적으로 결코 유쾌할 수 없었던 추억과 좋았던 제주도의 이미지마저 산산조각나는 결과만을 낳고 말았습니다.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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