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한턱낸다는 아내의 너스레가 반가운 이유

새 날 2015. 4. 2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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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아내는 조금씩 아껴가며 모아 두었던 푼돈을 이용해 주식에 입문하였습니다.  많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제가 무슨 기념일이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면 가끔씩 건네주던 용돈이 은근슬쩍 흔적없이 사라지는 듯싶다 했더니 그동안 아내가 만들어놓은 별도의 주머니에 차곡차곡 쟁여진 채 오늘날의 결과를 빚은 것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주식에 처음 입문할 당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법한 코스닥의 값싼 종목에 눈독을 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많이 구입할 처지도 못 됐습니다.  푼돈 모은 돈이 기껏해야 얼마나 되겠나요.  나름의 분석보다는 어디선가로부터 소문을 듣고선 이 종목 저 종목 몇 주씩 찔끔찔끔 사 모았던 겁니다.  심지어 대선 테마주를 건드리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왕초보 주식 투자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아니 실은 너무도 당연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주식을 구입했으면 이후로 수익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할 텐데, 수년이 지날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겁니다.  네, 이미 짐작하신 대로입니다.  바로 그러한 연유 때문입니다.  단단히 물린 겁니다.  구입한 종목마다 코를 꿰었다고 하나, 어쨌든 잔뜩 떨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돼 버린 것입니다.  물론 저 역시 십수년 전에 이미 수 차례 겪은 일이기도 합니다. 

 

ⓒKBS  개그콘서트 캡쳐

 

때문에 그녀의 말 못할 고민과 고통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모른 체 하며 아주 가끔 이 소재로 아내를 놀려 먹곤 했습니다.  언제쯤 수익이 나서 밥 한 끼 얻어먹을 수 있겠냐며 말이죠.  그럴 때마다 아내의 얼굴엔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과 속상해 하는 모습이 서로 교차하며 지나갔습니다.  경험자로서 그 속을 모르는 바가 아니기에 이렇게 놀려 먹는 일이 오히려 제겐 더욱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저 참 못된 사람이죠?

 

그렇습니다.  저는 참 못된 사람입니다.  그래도 아내의 종잣돈 대부분을 마련해 준 사람으로서 밥 한 끼 얻어 먹겠다는 욕심이 그리 과한 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어쨌거나 저는 정말 못된 사람이 맞습니다.  그런데 불과 하루 전의 일입니다.  아내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지고 목소리엔 힘이 잔뜩 들어가더니 제게 한턱 단단히 내겠다고 그러는 게 아니겠나요?  대관절 무슨 일인가 궁금했지만, 대충 짐작이 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마도 보유하고 있던 종목들이 제법 올랐던 모양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아내에게 또 다시 쓸 데 없는 소리를 합니다.  이 사람아 오르면 뭐하나 현금화를 해야 비로소 진짜 자기 돈이 되는 일인 걸..  아내도 모르던 바가 아니었는지 이미 현금화 했다더군요.  아내의 밝은 모습을 보는 것도 참으로 간만의 일인 것 같습니다.  비록 큰 돈은 아니어도 이렇게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걸 보니 그동안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을까 짐작되는 대목입니다.  제게 털어놓진 않았어도 꽤나 속이 쓰렸음이 분명합니다. 

 

이번엔 우스갯소리로 물어 보았습니다.  도대체 수익이 얼마나 되길래 이리도 호들갑이냐고, 그랬더니 투자한 돈이 얼마 안 되는데 이익이 생겨야 얼마나 되겠느냐며 오히려 너스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턱 크게 쏘겠다고 이빨까지 드러내며 환히 웃는 아내입니다.  이렇게나 반색하는 걸 보니 그동안의 마음 고생을 헤아려 주지 못하고 마냥 놀려 먹기만 한 제가 괜시리 미안해졌습니다.  아울러 별 일 아니지만 살아가면서 이렇듯 가끔 웃을 일이 생기니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한 게 아닌가 싶고, 비록 큰 돈은 아니라 해도 자신만의 자그마한 수익을 일궈낸 아내가 대견스러워 한턱낸다는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반갑고 달달하게 와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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