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일본과의 관계개선 위해 국민안전 포기할 셈인가

새 날 2015. 1. 16.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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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물밑 움직임이 매우 활발합니다.  올해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가장 눈에 띠는 행보는 한국과 일본 의원 간 상호 교차 방문입니다.  다음달에는 일본 집권 자민당이 무려 천 명이나 되는 대규모 방문단을 이끌고 방한할 예정이라 그 어느 때보다 한일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 정부도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붙인 모양새입니다.  정부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에 부담이 되는 상황을 떨쳐버리기 위해 일본 수산물 수입 규제 해제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일본 수산물 수입 규제 해제 여부를 놓고 관계부처 간 협의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15일 "일본 수산물이 안전하다는 과학적 조사 결과가 나온다면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감안해 빨리 해제해야 할 것이다"라는 외교부 당국자의 발언에서도 이와 같은 움직임이 읽힙니다.  물론 해당 소식이 언론에 알려지며 논란이 되자 "민간 전문가들의 2차 현지조사가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에 정부가 어떤 방향성을 갖고 방침을 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이내 한 발을 빼긴 했습니다만, 정부는 그러마 하고 이미 결정을 내린 듯한 모양새입니다.

 

실제로 일본산 수산물의 안전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우리 정부와 연계된 민간 전문가들이 지난해 12월 일본 현지 조사 활동에 착수하였으며, 올 1월까지 모두 두 차례에 걸친 조사를 벌일 계획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즉 정부가 이미 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 완화를 염두에 둔 상황에서 그의 전제 조건이랄 수 있는 명분 축적을 위해 진작부터 이러한 활동을 진행해 오고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우리 정부는 2013년 9월부터 일본 8개현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나마도 이러한 조치가 있기 전까지 그 어떠한 수입 규제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가,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사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그에 따른 국민 여론이 비등해지자 그제서야 마지못한 듯 뒤늦게 취한 조치였습니다.  우리 정부는 매번 이런 식입니다.  정부가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입니다.

 

ⓒ오마이뉴스

 

정부가 일본산 수입 수산물의 규제 완화를 내세우는 논리는 이렇습니다.  통상법상 수입규제의 법적근거를 제시할 의무가 수입국인 우리에게 있는데, 현재 일본에서 이에 대한 입증 작업을 하고 있으며 과학적으로 위해성이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 수입을 금지할 경우 일본이 이 문제를 WTO에 제소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일본은 이 조치가 WTO 위생 및 식물위생조치의 적용에 관한 협정(SPS)에 따른 임시 특별조치인 만큼 수입을 금지할 과학적 근거가 충분치 않을 경우 이를 해제해야 한다며 우리 정부에 으름장을 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지난 2013년 국회 입법조사처가 내놓은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일본과 우리 정부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얘기에 불과합니다.  WTO SPS와 관련하여 그동안 모두 40건의 분쟁이 발생하였으나 방사능 오염 식품에 대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으며, 외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미국과 EU가 일본식품에 대해 광범위한 무역조치를 취했던 사례가 있는 만큼 우리 정부의 조치는 전례가 없던 일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일본 수산물에 대한 수입금지조치를 발표한 뒤 일본정부가 과학적 근거를 요구해 왔지만, 이 또한 WTO SPS 협정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는 최악의 경우 일본이 WTO에 우리를 제소한다 해도 우리에게 충분히 승산 있다는 얘기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 물론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더구나 올해가 국교정상화 5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회복시켜 놓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국민 안전과 이를 맞바꾸어선 안 될 노릇입니다.  우리 국민을 일본과의 외교 정상화에 대한 희생양으로 삼아선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외교 관계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긴 합니다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우리 국민의 안전 및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할 순 없습니다.  정부의 이러한 행태 뒤엔 평소 국민들에 대한 배려가 어떤 수준인지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셈이라 씁쓸하기 그지없습니다. 



일본 정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와의 진정한 관계 개선을 바란다면 우선 아베 정권의 우경화 광폭 행보부터 멈춘 채 진정성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만, 전혀 기대 난망인 상황입니다.  어쨌거나 한일관계 개선이 단순히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때문에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성격의 것이라면 두 나라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게 별로 없어 보입니다. 

 

일본이 겉으로는 관계 개선을 바란다며 웃고 있지만, 뒤에선 음흉한 미소를 지은 채 독도 영유권 주장, 위안부 및 교과서 왜곡 등의 망동을 일삼으며 오로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 해제 압박을 우리 정부에 가해오고 있습니다.  정부가 우리 국민보다 일본 국민을 더 배려하지 않는 이상 국민 안전을 내팽개친 채 이에 응해야 할 이유 따위 전혀 없습니다.

 

중국 대만 러시아 등은 여전히 일본산 식품 수입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만이 서둘러 이를 해제해야 할 명분은 결국 국민 안전을 도외시한 채 일본의 국익을 따르는 일로 귀결되기에 빈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더구나 최근 식품뿐 아니라 방사능에 오염된 각종 일본산 폐기물이 일반폐기물로 둔갑된 채 수입되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 시점에서 수산물 수입 규제를 풀어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국민 안전과 생명 담보를 위해 이를 더욱 강화시켜 나가고, 폐기물 등 여타 품목에 대한 수입 또한 전면 중단시켜야 함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 대가를 빌미로 국민 안전을 볼모 삼아 희생시키는 일은 절대로 발생해선 안 될 노릇입니다.  정부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 완화 움직임을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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