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어린이집 폭행이 범죄라면 신상털기 역시 범죄다

새 날 2015. 1. 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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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아침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우연찮게 보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네 짐작하신 게 맞습니다.  인천 모 어린이집 4세 여아 폭행사건 때문입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해당 동영상을 보신 모든 분들이 아마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셨을 테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한동안 삭이지 못하셨을 것 같습니다. 

 

폭행이 오랜 기간 지속됐노라는 주장이 부모들 사이에서 제기됐습니다.  경찰은 공개된 폭행의 정도가 심하고 국민의 공분이 큰 점 등을 고려하여 가해 보육교사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폭행과 학대 행위가 이뤄졌는지의 여부를 어린이집 CCTV 영상을 확보해 조사에 나선 상황이기에 조만간 보다 자세한 전모가 드러날 것이라 판단됩니다.  

 

ⓒKBS 방송화면 캡쳐

 

그런데 치솟는 분노를 차마 삭이지 못한 듯한 일부 네티즌들이 해당 보육교사에 대한 신상털기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사진, 결혼날짜 등이 SNS에 죄다 공개되었고, 또 다른 네티즌들은 이를 각종 커뮤니티 등에 재차 퍼나르기하고 있었습니다.  대다수가 속 시원하다는 반응입니다.  물론 개중 우려를 표명하는 의견도 일부 있었습니다만, 이내 다수의 생각에 묻히고 마는 양상입니다.

 

비록 일부에 불과하지만 공명심에서 비롯된 듯한 모습도 언뜻 비치고 있었습니다.  즉 공공의 이익 측면에서 볼 때 흉악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신상털이는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이런 분들의 지원 사격으로 퍼나르기는 더욱 힘을 받는 모양새였으며, 그녀의 신상정보는 삽시간에 인터넷 공간 전체를 떠도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물론 이분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어린이집에서 비슷한 사례들이 많이 발생하였지만, 그때마다 3세 4세에 불과한 아이들의 증언 능력 부족을 이유로 대부분의 경우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각종 사건 사고 중 교사 학대 건수가 가장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속 건수는 오히려 제일 낮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저지른 행위의 경중에 비해 처벌이 지나치게 가벼우니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이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자력구제에라도 나서겠노라는 심정으로 신상털기를 행한 듯싶습니다.  이제 속이 후련들 하십니까?



그러나 신상털기와 퍼나르기는 또 다른 양태의 폭력이자 범죄행위라는 사실을 결코 망각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신상털기는 단순히 도덕적으로 옳은 행위인지 그른 행위인지의 문제 따위가 아닌 엄연한 범법 행위입니다.  참고로 온라인상에서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하여 공개하는 행위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사항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강력한 처벌을 하지 않는 데 대한 반발 심리와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며 행하는 개인의 신상털기는 잠시 잠깐 동안의 희열을 맛보게 해줄지는 몰라도 그에 따르는 대가는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사안입니다.  물론 아이를 그토록 매몰차게 폭행하는 동영상 장면을 본 이들 모두가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해당 교사의 행위가 몰상식하거나 잔인했던 건 분명 맞습니다만, 아무리 흉악범죄자라 해도 개인들이 또 다른 개인의 신상정보를 캐내어 이를 공개하는 건 법을 떠나 결코 바람직스러운 행태는 아닐 것입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 캡쳐

 

비단 처벌을 우려해서가 아닙니다.  신상정보 유출 행위는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잘못된 정보로 2차 3차 피해를 입었노라는 사례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공개된 신상 중 전화번호 끝자리 숫자 한 개만이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잘못 걸려온 전화로 인해 고통받고 있노라는 사연과 엉뚱한 사람이 이번 사건의 해당 교사로 지목되어 고초를 당하는 등 다양한 하소연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신상털기를 직접 행하거나 이를 퍼나르기했던 당사자 역시 앞서의 2차 3차 피해자로 둔갑된 채 그에 따르는 고통을 겪을 수도 있음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즉 자신이 뿌린 씨앗이 언젠가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듯 우리 모두가 신상정보 유출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신상털기를 통해 잔혹했던 범죄자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그 끔찍했던 범죄 행위에 대한 비난을 위해 비록 같은 양태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또 다른 형태의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분노 표출은 자유입니다만, 그릇된 결과에 대해선 무한 책임이 뒤따르는 법입니다.  이러한 신상털이와 그로 인한 2차 피해는 비슷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우리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빚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한 건 없습니다.  네티즌들의 보다 성숙하고 현명한 자세가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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