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사교육 경감 대책' 기대할 수 없는 까닭

새 날 2014. 12. 18.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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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발표하려던 당초 계획보다 8개월이나 늦춰진 지난 18일, 마침내 정부의 '사교육 경감 및 공교육 정상화 대책'이 발표됐습니다.  세월호 참사 여파 때문이라고 하지만 어쨌거나 8개월이란 시간이 더 주어졌기에 보다 공을 들였으리란 관측이 가능해집니다.

 

ⓒMBC 방송화면 캡쳐

 

그렇다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슬쩍 엿볼까요?  우선 영어의 경우 교과서만으로 충분히 수능을 준비할 수 있도록 EBS 수능 연계 교재의 어휘수를 교육과정 수준으로 조정하고 난이도를 완화할 계획이랍니다.  또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내용의 지문이나 복잡한 문법의 지문도 가급적 배제하기로 하였습니다.

 

수학의 경우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학습량 및 내용을 조정하여 수능 준비 부담을 완화할 계획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는 학교 급간 학습량과 난이도가 지금처럼 어렵지 않도록 재조정키로 하였습니다.  수능 준비에 대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EBS 수능연계 교재수와 문항수 또한 줄일 계획입니다.

 

ⓒ서울경제

 

유아대상 영어학원에 대해서는 학원비 인하를 유도하고, 학원비 인상의 주요 요인으로 지적돼 온 외국인 강사 채용 금지를 검토키로 하였습니다.  외국인 강사 채용을 영어학원 학원비 상승의 주범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학원비 등을 학원 외부에 게시하는 '옥외가격 표시제'의 전면 도입 등 학원비 공개를 확대하고, 행정처분이 부과된 학원을 공개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학원 중점관리구역을 '사교육특별관리구역'으로 개편하여 선행학습 영향평가, 학원비 단속 등을 강화할 계획이랍니다.

 

교육부는 사교육의 주범을 영어와 수학 두 과목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실제 사교육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총 규모 18조6000억원 중 65%가 영어와 수학이 차지할 만큼 큰 비중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울러 사교육을 늘어나게 하는 주 요인으로 과도한 학원비 인상과 선행학습, 대학 서열 등을 꼽고 있습니다.  물론 결코 틀린 분석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대책 역시 학부모들의 바람만큼의 큰 기대를 갖도록 하기엔 한계가 있을 듯싶습니다.  왜냐면 가장 핵심이 되는 문제는 도외시한 채 그동안 내놓았던 대책들의 재탕 삼탕쯤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8개월이나 늦추면서까지 나름 고심했다고는 하나 본질보다는 곁가지에 쓸 데 없는 정력을 낭비한 느낌이 역력합니다.

 

ⓒ세계일보

 

대표적인 경우가 영어 교과의 어휘수를 줄이겠다며 구체적인 예시를 든 부분입니다.  단순히 어휘수를 수백 내지 수천 개 줄인다고 하여 이러한 결과가 곧바로 사교육 경감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에 불과합니다. 

 

물론 교육부가 예시로 든 어휘들의 면면을 보니 마치 예전에 저희가 공부하던 vocabulary 22000 수준을 넘어 33000 수준쯤 되는 듯 무척이나 생소하거나 어려운 어휘들 천지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게 과연 고등학교 과정의 어휘가 맞을까 싶을 정도더군요.  그동안 우리 영어 교육이 실용성보다는 엉뚱한 방향으로 발달한 채 얼마나 겉돌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증명해 주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이렇듯 어휘 몇 개 줄인다고 하여 사교육이 과연 확 줄어들 수 있을까요?  대학 서열이나 입시 제도 따위의 근본적인 변화없이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일까요?  교육부가 얼마나 현실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책상에 앉아 안이하게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지, 자신들이 직접 나열한 예시 단어의 황당한 느낌만큼이나 당혹스럽게 와닿고 있습니다.

 

수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문항수를 줄이고 학습량을 대폭 경감한다고 하여 학원과 과외로 향하는 학부모 및 아이들의 무거운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일 겁니다.  왜 그런지는 이번 수능시험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지 않았던가요? 



즉 문제를 너무 쉽게 낼 경우 변별력이 떨어지니 또 그에 걸맞는 수준을 갖추기 위해 나름 고심할 테며,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시험문제는 아이들을 걸러낼 수 있게끔 틀리도록 유도하게 되고, 반대로 아이들은 이로부터 틀리지 않기 위한 경쟁을 지속하게 될 테니, 이는 공부하는 학습량이나 출제 범위의 문항수 따위를 줄인다고 하여 해결되는 사안이 결코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어차피 경쟁이 심화된 입시제도와 대학 서열의 틈바구니 속에서 근본적으로 바뀌는 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한편 빠르게는 국제중 등 중등 입시부터 특목고 등 고등학교 입시 및 대학 입시까지, 큰 틀의 변화 없이 유아대상 영어학원에 대한 외국인 강사 채용을 금지하게 될 경우 이를 원하는 수요는 엉뚱하게 외국인 강사의 직접적인 개인 과외 수요를 늘릴 가능성이 높으며, 그러다 보면 보다 음성적인 곳으로 숨어들 테고, 또한 그에 걸맞게 다시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큽니다.  이른바 풍선효과를 낳을 개연성이 높기에 이 또한 실효성이 미미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밖에 학원 중점 관리 따위의 정책은 전혀 새로울 게 없습니다.  이제껏 지속돼온 정책의 연장선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일부 고액 불법 학원 때문에 모든 학원을 잠재적인 범죄자인 양 취급하는 정책은 학원 사업자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데다 지나친 간섭과 규제는 자유 경쟁이라는 시장의 근본 취지를 무색케 할 수도 있기에 그다지 바람직스러운 정책은 아닙니다.  학원에 대한 규제는 이미 학파라치 등의 정책을 통해 일상 속에서 계속 이뤄져 왔고 또한 지금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공교육 정상화 대책이란 취지에 걸맞으려면 공교육 정상화 방안이 우선 거론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보다는 사교육 경감 정책에 방점을 찍고 있는 행태 탓에 애시당초 정부가 정책의 방향을 잘못 잡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감마저 드는 상황입니다.  

 

공교육이 제자리를 찾게 될 경우 사교육은 자연스레 줄어들 테니 교육부의 정책은 사교육 경감보다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교육을 살리는 방향으로 정책의 기조를 잡는 게 옳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즉 주된 정책과 부된 정책이 서로 자리를 바꾼 듯 보이는 작금의 현상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번 사교육 경감대책 역시 이전 대책들로부터 반복돼왔듯 별로 실효성은 없으면서 무늬만 요란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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