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주인님 납셔도 꿈쩍않는 우리집 상전 '말라뮤트'

새 날 2014. 7. 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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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많이 더워졌습니다.  수은주가 연일 30도를 오르내리고 있군요.  벌써 7월인데 장마전선은 저 밑에서 꿈쩍않고 아예 올라올 생각도 않는 눈치입니다.  그 곳에 무슨 꿀이라도 발라져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 더위에 우리보다 더욱 곤혹스러워할 녀석이 하나 있네요.  알래스카가 원산지라며 박박 우기고 있는, 바로 우리집 말라뮤트 녀석입니다.

 

겨우내 뽐내오던 두터운 이중모를 뒤집어쓴 채 이른 아침부터 긴 혀를 내밀며 헐떡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비록 한낮엔 정말 많이 덥긴 해도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기운이 느껴져 괜찮을 법도 한데 말이죠.  이 녀석에겐 전혀 소용없는 노릇인가 봅니다.

 

 

요맘때면 집 마당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온몸을 맡긴 채 비몽사몽으로 지내기 일쑤입니다.  전생에 시멘트 바닥과 무슨 끈끈한 연이라도 맞닿아 있는 건지 개님이 어쩌면 이리도 시멘트 바닥을 좋아할 수 있는 걸까요?  뒹굴뒹굴 마치 씨름이라도 한 판 벌일 기세입니다.  겨울철이면 기운이 뻗쳐 펄펄 날던 녀석인데, 무슨 강력한 신경안정제라도 잔뜩 투여된 양 기가 팍 꺾인 모양새입니다.

 

더위란 녀석은 미르에게 있어 많은 부분을 초토화시켰습니다.  우선 축 늘어진 채 하루종일 잠만 자는 건 기본입니다.  마치 개 죽은 듯 말이죠.  시멘트 바닥을 죽부인 삼기도 하네요.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귀찮다고 주인 알기를 개껌보다 못하게 여기는 듯한 행태가 제일 황당합니다.



더위로 인한 귀차니즘이 벌써부터 극에 달한 건지 이젠 자신을 불러도 코빼기도 안 쳐다볼 만큼 도도하기가 그지없습니다.  엇그제 무려 세 번이나 자신의 이름을 애타게 불러보았건만, 시멘트 바닥에 누운 채 끝끝내 외면하던 미르 녀석입니다. 

 

"흥=3  그런다고 너란 녀석, 기껏해야 개님밖에 더 되겠니?"

 

결국 네번째에 가서야 마지못해 고개를 들고 쳐다 봐 주더군요.  우리집 상전께서 주인에게 눈길을 보내 주시기까지 하다니 에고 정말로 감개무량합니다. ㅠㅠ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었던 겁니다.  현관문을 나서기만 해도 열렬한 세레머니로 환영의 뜻을 표해왔던 바지런한 녀석이 이젠 지 옆을 지나가도 심드렁하기만 합니다.  아니 분명 봤음에도 불구하고 못 본 척 하며 그냥 누워있기 일쑤입니다.  바로 곁을 지나치는 데도 여전히 누운 채 송아지 같은 눈망울만 꿈뻑거리는 녀석, 그래서 슬쩍 발로 건드려 봅니다.  그제서야 반응하는 녀석, 그야 말로 상전이 따로 없군요.

 

네 그랬습니다.  주인님이 납셔도 꿈쩍 않는 미르는 우리집 최고의 상전이었던 겁니다. 

 

"욘석아 상전이라도 좋구나, 이 여름 부디 건강하게 버텨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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