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저무는 제주살이 열풍, 그 원인은?

새 날 2020. 5. 2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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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소박한 전원생활을 꿈꾸는 현대인들. 이른바 ‘제주살이’ 열풍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로부터 10년, 최근에는 제주를 떠나는 사람이 제주로 이주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더 많아졌다. 제주지역 순이동인구를 살펴보면 지난해 12월 전출인구가 전입인구보다 24명 더 많았다. 지난 3월에는 그 격차가 362명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제주살이 열풍이 시작된 지난 2009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23일 방송된 SBS <뉴스토리> ‘제주 이주 열풍 끝나나’ 편에서는 최근 제주살이의 꿈을 접고 제주를 떠나는 사람들에 대해 집중 취재했다. 해당 현상이 왜 발생하는지 그 원인도 짚어봤다.


제주살이 꿈 접는 사람들


제주시 연동에 사는 27세 안은정씨. 지난해 9월 제주에 온 지 1년도 채 안 돼 제주살이의 꿈을 접었다. 그녀는 하루빨리 제주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안씨가 제주살이를 접은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 문제 때문이다. 프리랜서 필라테스 강사인 그녀는 일감이 적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생계유지를 위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투잡에 뛰어들었으나 이마저도 얼마 전 뚝 끊겼다. 제주에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다. 안씨를 더욱 힘들게 한 건 정서적 고통이었다. 사람이 그리웠다는 안씨. 그래서인지 그녀는 취재진을 유독 반겼다. “사람 만나는 게 너무 반갑다. 밖에서 온 손님을 만나는 게 지금 얼마만인지 기억도 안 난다”



2년 전 제주살이를 접고 고향 청주로 돌아온 30대 이동윤씨 부부. 미용재료 납품업체 영업사원이었던 이씨는 제주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겪었던 냉대와 차별 그리고 정서적 소외를 하소연했다. 그는 제주 공동체에 진입하지 못해 영업실적이 떨어졌고 급기야 생활마저 곤란해졌다. 이씨는 그때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원형탈모 증세까지 생겼다. 이씨 부부는 “아무리 풍경 좋고 예쁜 곳이라고 해도 감정적으로만 가기에는 한계가 확실히 있다”며 “살아보니 그냥 좋은 것만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딱 3개월 만 행복했다”고 말한다.


서귀포시 표선면에 사는 60세 고희권씨. 요즘 그는 제주살이를 접을지 말지 고민이 많다. 지난 2015년 직업군인으로 은퇴한 뒤 제주에서 귀농의 꿈을 키워왔으나 땅값이 너무 올라 그 꿈을 접은 것이다. 귀농정착금 3억 원을 지원받으려 했지만 당시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땅은 대략 400평 정도. 규모도 작을뿐더러 원리금으로 1년에 3600만 원을 갚아야 하는데 그 부담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고씨는 “3억 원으로 1천 평에서 2천 평 정도는 구입해야 농사지을 때 감가상각비가 나온다”며 “제주도에서 과수원이나 감귤밭을 가꾸며 살아가려면 인건비와 주택구입비까지 고려해 최소 10억 원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주시 애월읍 해안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40대 이지영씨 부부. 제주살이 1년 3개월 만에 큰 위기에 봉착했다. 제주에서 직접 살아보니 육지에서 생각하던 것과는 사정이 달랐다. 계절에 따라 매출액이 들쭉날쭉했고 심지어 손님이 아예 없는 날도 있었다는 이씨. 그녀는 제주에 오기 전 사전답사도 여러 차례 하였으나 이러한 상황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남편은 아내가 힘들다고 하면 언제든 다시 육지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최근 제주살이를 그만두고 떠나는 사람들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취재진이 실태 파악을 위해 애월읍을 찾았다. 이곳은 최근 제주살이를 접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이주민들이 크게 늘었다. 이들이 육지로 떠난 뒤 남은 빈집은 폐가로 방치돼 있었다. 이 마을의 40%가량이 이주민이지만 이들 가운데 3분의1 이상은 정착을 못하고 떠나는 실정이다. 최재헌 공인중개사는 “일자리가 가장 큰 이유다. 제주에는 큰 회사가 없기 때문에 자영업을 하지 않으면 어렵다. 직장에 다니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보니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한다. 


저무는 제주살이 열풍, 그 원인은


그렇다면 이주민들이 제주를 떠나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일자리 문제 등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최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제주지역 노동환경은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제주 평균임금은 228만 원으로 전국 평균 258만 보다 30만 원이 적었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비율도 17.7%나 된다. 이에 대해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일자리의 질이 전국에서 가장 나쁘다”며 “중국과의 무역전쟁 그리고 코로나19 때문에 관광이 급속히 붕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자리 자체가 줄고 있고 또 기존 일자리의 임금도 삭감되는 상황이다. 외지 사람들이 제주도 사회에 정착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조건”이라고 말한다.



제주만의 독특한 공동체 문화도 이주민들이 정착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하는 요소다. 노광표 소장은 “친인척을 제주도 방언으로 ‘괸당’이라고 하는데, 나쁜 의미로 말하면 혈연, 지연 이런 걸 많이 따지는 것이고, 좋게 얘기하면 제주도 사람들은 끈끈한 공동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이화진 박사는 “제주 사람인가 아닌가, 제주도에서 태어났는가, 부모님이 제주도 출신인가까지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3대를 지나야 제주 사람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밑바탕에 이런 공동체 문화가 켜켜이 쌓여있다”며 “선주민에게 정착주민과 친하냐고 물었더니 ‘인사는 하지만 정착주민과 마을 일을 의논하지는 않는다’는 답변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인사는 하지만 우리 편은 아니다’라는 메시지”라고 말한다.



지난 2008년부터 2019년까지 제주도의 땅값은 33%나 올랐다. 이로 인해 이주민들이 제주 정착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2008년 이후부터 꾸준히 상승했다”며 “서울에서 전입된 인구가 가장 많았던 때인 2015년, 2016년 당시 집값이 많이 올랐다. 1년에 8% 이상, 10년간 33%나 올랐다”고 말한다. 


주택 가격 역시 10년 동안 세 배 가까이 상승했다. 지난 2010년 1억2623만 원이었던 아파트 호당 평균가격이 2015년에는 2억3천만 원, 2016년과 2017년을 거치면서 3억 원대까지 급등했다. 덕분에 지난해 4분기 ‘주택구입부담지수’는 제주가 서울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았다. 



제주를 찾아 또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들. 하지만 일자리 부족 문제와 일부 배타적인 공동체 문화 그리고 폭등한 땅값으로 인해 제주살이 열풍은 10년 만에 그 기세가 한풀 꺾인 분위기이다. 


그렇다면 제주살이 열풍은 10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될 것인가. 전문가들은 제주살이를 접고 육지로 돌아가는 현상이 당분간 지속되리라는 전망과 함께 앞으로의 10년은 지난 10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일 수 있음을 경고했다.


“제주도가 문제의 심각성을 좀 느껴야 해요. 10년 동안 제주도는 부자가 됐지만 제주도민은 가난하고 번 돈이 제주도의 지속 가능한 경제를 위해 제대로 안 쓰이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여 제주살이를 꿈꾸는데, 그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은 제주도에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게 되잖아요. 이는 국제도시로서의 자기 기반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거든요. 그런 부분에 투자해야죠. 제주도민의 문제나 제주도의 문제가 된다면 제주도의 품격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죠. 지난 10년과는 다른 10년이 지금 우리 앞에 오고 있는 거죠.”(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



* 이미지 출처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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