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엄마와 딸의 로맨스는 달달할 리 없어 '레이디 버드'

새 날 2018. 4. 6. 12:08
반응형

크리스틴 맥퍼슨(시얼샤 로넌)은 대학 진학을 앞둔 고교 졸업반 소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 불러 달란다. 이유 같은 건 딱히 없다. 어느 누가 그녀에게 이름을 물어봐도 한결같이 '레이디 버드'라 대답한다. 이렇듯 정체성이 뚜렷한 그녀는 자신의 삶에 자꾸만 태클을 걸어오는 엄마(로리 멧칼프)의 간섭이 마냥 못마땅했다. 사사건건 의견 충돌을 빚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세상 모든 게 못마땅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집 아이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그다지 형편이 좋지 않다는 현실과 현재 거주지인 새크라멘토를 향한 불만이 늘 그녀의 내면 한쪽에 토아리를 틀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떡하든 새크라멘토를 탈출하여 멋진 인생을 꿈꾸며 살고 싶었다. 정체성과 자립심이 강하고 호기심이 왕성했던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은 어떡하든 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어느날 절친인 줄리(비니 펠드스타인)와 함께 오디션을 통해 가입한 연극반에서 대니(루카스 헤지스)를 본 뒤로 그에게 단단히 필이 꽂힌 레이디 버드는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뤄지는 척 의도적으로 대니에게 접근한다. 결국 사랑의 결실이 이뤄지는데... 



영화는 캘리포니아의 새크라멘토에서 살고 있으나, 이곳에서 언제든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 난 고교 졸업반 소녀 레이디 버드의 좌충우돌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다. 크리스틴 맥퍼슨이 어떤 인물인가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대신 자신에게 직접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지어준 결과물로 대변된다. 레이디 버드의 행동으로부터는 부모를 비롯한 기성세대와 이 세상을 향한 반발 심리 같은 게 묻어나온다. 그녀가 소속된 학교는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탓에 다소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고 있었는데,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녀와 강사에게 과감히 빅엿을 선사하는 레이디 버드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던 게 하나 있었다. 레이디 버드의 행동과 완전히 판박이인 어떤 학생의 이미지가 문득 떠오른 것이다.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중3 학생인데, 이 아이는 자의식이 무척 강했고, 자기 효능감도 대단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어떡하든 해내고 마는 성격의 아이였다. 똘기가 충만한 점은 물론 엄마와는 아예 말도 섞지 않으려는 성향까지 레이디 버드를 쏙 빼닮았다. 그만큼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예단할 수 없는 그맘때 아이들의 행동과 심리를 잘 묘사한 배우 시얼샤 로넌의 연기가 출중했다는 방증이다. 



영화의 시작점도 새크라멘토였고, 끝 지점도 새크라멘토였다. 왜 이렇게 새크라멘토에 집작하고 있는 것인지 문득 의아했다. 혹시 감독과 연관이 있었던 게 아닐까? 예상은 적중했다. 검색해 보니 배우이자 이 작품의 감독인 그레타 거윅의 고향이 새크라멘토였다. 새크라멘토는 캘리포니아 주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도심에 농업 지대가 자리하고 있어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도시였다. 


레이디 버드는 자신의 집을 표현할 때마다 '구린 곳'이라며 깎아내리기 일쑤였다. 대학 생활도 뉴욕과 같은 화려한 도시에서 하고 싶어 했다. 어쩌면 새크라멘토를 떠나고 싶어하는 레이디 버드의 거친 몸부림은 그레타 거윅의 어릴 적 모습 가운데 일부를 발현한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막상 그곳을 벗어나고 보니 비록 화려함 따위와는 거리가 멀지만, 일상에서 늘 접하게 되는 편안함과 친숙함, 그리고 순박하고 겸손한 주민들의 삶, 그 속에 담긴 따스한 정이 무엇보다 소중했음을 깨닫고, 이를 레이디 버드의 성장 과정 속에 녹여 표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레이디 버드는 일상 속에서 좌충우돌의 행위를 일삼는 듯 보이지만 실은 특정 방향을 향해 일관성 있으면서도 아주 뚜렷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자의식이 확고한 그녀가 바라고, 아울러 가고자 하는 삶의 길을 향해 비록 평탄하지는 않더라도 뚜벅뚜벅 힘차게 내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성장 과정에서 무수한 상실감을 느끼고 아픔도 겪게 되지만, 타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이를 위로해주며 다독거리는 성숙한 면모도 드러낸다. 그녀는 이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이 작품에서 특히 눈여겨 봐야 할 지점 가운데 하나는 레이디 버드와 엄마와의 관계다. 그녀의 엄마는 누가 보더라도 사려 깊고 진중하며 겸손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레이디 버드에게 있어 엄마는 대다수의 우리 청소년들이 느끼고 있는 것처럼, 앞서 언급한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그 소녀도 마찬가지이지만, 잔소리꾼이며 훼방꾼에 지나지 않는다. 



레이디 버드에게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각한 증상으로 다가온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직접 짓고, 새크라멘토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며, 바라고 원하는 일은 어떤 식이든 해내고 마는 독립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성향의 이면엔 다름 아닌 이렇듯 그녀에겐 너무나도 지겹고 표독스러우며 지독하기 짝이 없는 엄마가 자리하고 있다. 


이 영화의 시작과 끝 지점에는 새크라멘토라는 공간적 배경뿐 아니라 이렇듯 엄마가 늘 함께하고 있었던 셈이다. 영원히 앙숙 사이일 것만 같은 엄마와 딸 사이의 로맨스는 달달할까 아니면 씁쓸할까? 


감독의 뛰어난 역량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깨알 같은 재미가 있는 영화다. 인면조 레이디 버드의 꿈틀거림처럼 모든 생명의 싹이 움트는, 이 계절에 보면 더욱 제격일 것 같은 예쁘고 깜찍 발랄한 작품이다.



감독  그레타 거윅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