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어쩌면 가장 쉽고도 어려운 일 '사랑이 이끄는 대로'

새 날 2018. 3. 27.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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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제작자인 앙투안(장 뒤자르댕)은 영화 '줄리엣과 로미오'의 제작에 참여하기 위해 어느 날 인도를 방문하게 된다. 프랑스 대사(크리스토퍼 램버트)의 초청으로 대사관 만찬에 함께한 그는 옆자리에 앉은 대사 부인 안나(엘자 질버스테인)와 대화를 나누던 와중에, 인도에 흠뻑 빠진 듯 너무도 진지하고 열심인 그녀의 대화 태도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점차 빠져들게 되고, 그녀 역시 자신이라면 절대로 갖추지 못할 것 같은 자유분방한 사고와 행동을 보여주던 그에게 어딘가 끌리게 된다. 



안나는 인도 철학과 문화에 심취한 상태였으며, 이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 사랑의 신이자 인도의 영적 지도자인 '아마'를 몸소 만나고자 먼 걸음을 자처한다. 안나의 지적인 묘한 매력은 어느덧 앙투안의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며 깊숙이 들어와 버렸고, 인도에 온 이래 툭하면 두통에 시달리던 자신의 처지를 아마에게 맡겨보자는 핑계 아닌 핑계 삼아 안나의 갠지스강 투어에 합류하게 되는데...



앙투안에게는 연인 엘리스(엘리스 폴)가 있었고 안나에게는 남편이 존재했다. 이들 두 쌍은 각기 운명처럼 만나 깊이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앙투안은 안나 앞에서 엘리스에 대해 언급할 때면 마치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같지 않을 정도로 편안하고 배려 깊은 사람이라며 치켜세운다. 앙투안이 인도에 도착,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밟을 당시 엘리스는 그에게 청혼을 해온다. 이렇듯 두 사람의 사랑은 매우 깊었다. 결혼을 염두에 둘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던 그의 마음 속으로 문득 또 다른 여성 안나가 운명처럼 파고들어온 셈이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인도의 속살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는 이 작품만의 독특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 곳곳의 풍광과 삶의 흔적들이 날 것 그대로 화면 밖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무질서해 보이는 도로는 차량 운전자들로 하여금 곡예사로 변신시키기 일쑤이고, 갠지스강가로 한꺼번에 몰려든 수백 만의 인파로부터는 질서라곤 하나 찾을 수 없을 만큼 상당히 혼란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우리 눈에는 무질서해 보이는 그들의 움직임 속에도 분명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질서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현세보다 내세를, 물질보다 정신세계를 더 중요시해온 인도인들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이 영화는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이자, 제52회 시카고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 제4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특별한 발표 부문 후보에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 앙투안과 안나 사이에서 오고가는 열정적이거나 흥미로운 대화는 앞으로 두 사람에게 전개될 미묘한 감정 변화를 두드러지게 묘사하는 장치 가운데 하나다. 



감독은 섬세한 연출로, 배우들은 진지한 태도로 열연을 펼치며 이들의 감정선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전혀 다른 성향의 두 사람은 자신과 비교해 무언가 독특한 상대방에게 자연스레 끌리기 마련이다. 두 사람 사이의 아슬아슬한 밀당 끝에 안나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밖으로 드러낼 때는 나의 감정 또한 그와 함께 터져버린 듯싶었다. 각기 사랑하는 배우자와 연인이 존재하고, 말끝마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달고 살지만, 본능적으로 끌리는 사랑 앞에서 이성은 어느새 한낱 뒷전으로 밀리고 만다. 



사랑을 이토록 달콤하고 아슬아슬하게 표현하다니, 감독만의 뛰어난 역량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우디 앨런의 작품속 속사포 같은 배우들의 대화 형태와 비슷한 면면일지도 모르겠다. 1966년 영화 '남과 여'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동시에 석권한 감독의 관록이 느껴지는 지점이다. 감독은 사회적 틀과 편견 앞에서 움츠러들기보다는 사랑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야 하고 사랑의 감정에 충실하는 것이 삶의 의무이자 권리라 역설할 만큼 사랑을 예찬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안나가 온몸에 뿌리며 영혼을 씻어내리던 갠지스 강물은 세계 최대의 하수구라 불릴 만큼 사실상 오물투성이이지만, 영화에서는 이 또한 세상과 자신을 구원한 유일한 사랑의 과정 가운데 하나로 그려진다. 영적 구원자 '아마'는 사랑의 종착역 같은 존재다. 따라서 '아마'에게 가는 길은 험난하기 짝이 없다. 사랑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라 말하지만, 이는 쉬워 보이면서도 어쩌면 가장 어려운 종류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감독  끌로드 를르슈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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