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남겨진 자의 고통 '가족시네마 - 별 모양의 얼룩'

새 날 2018. 2. 2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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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원(김지영)의 어린 딸이 유치원에서 단체로 캠핑을 떠났다가 현장에서의 화재로 인해 목숨을 잃은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1주기 추모 행사 참석 차 사고가 일어났던 현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단체로 오른다. 1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은 길다면 길다. 이 흐름이 그들의 슬픔과 아픔을 어느 정도는 무디게 만든 듯 동행에 나선 아이들 부모의 표정은 한결 같이 평온해 보인다. 


그러나 이 평화는 마치 강요되기라도 한듯 잠시잠깐 동안의 억지스런 침묵에 지나지 않는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참사 현장에 도착, 다시는 볼 수 없는 아이들의 사진 앞에 부모들이 각기 장난감이며 먹거리며 꽃 등을 놓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이던 슬픔과 그리움이 다시금 피어오르며 그 불꽃이 더욱 강하게 살아나더니 모두들 넋을 놓은 채 오열하고 말기 때문이다. 



추모 행사를 마친 부모들이 근처의 가게에 잠시 들러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던 와중에 주인 아저씨가 화재와 관련한 이야기를 슬며시 꺼내든다. 화재가 벌어지기 전날 밤 타지에서 온 듯한 한 꼬마 아이를 봤다는 이야기다. 이 믿기 힘든 이야기에 혹시라도 자신의 아이가 아닐까 싶어 모두들 귀를 솔깃하게 된다. 반신반의하던 지영 역시 아저씨가 늘어놓던 이야기 가운데 자신의 아이와 일치하는 부분이 유독 많다고 판단, 유심히 귀를 기울이는데... 


1999년 벌어진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참사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당시 화재로 유치원생 19명 등 총 23명이 숨졌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의 죽음은 이후 부모의 삶마저 크게 바꿔놓는다. 아이들의 안전과 생명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며 이민을 결정한 부부가 있는가 하면, 슬픔을 억지로 잊고 감추기 위해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면서 부러 고통을 자처하는 부모 등 참사의 후유증은 다양한 양태로 발현되고 있었다. 



지원 또한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를 악문 채 버텨왔으며, 덕분에 슬픔이 어느 정도는 가라앉았다고 생각했으나 결과적으로 이는 커다란 착각이었다. 사람이 매우 간절한 입장에 처하게 되고 그로 인해 마음이 약해진 상태에서는 비슷한 분위기와 상황만 조성되더라도 그에 쉽게 동화되거나 빠져들기 십상이다. 지원의 행동이 딱 그랬다. 딸 아이를 언급하는 듯한 비슷한 이야기만 들려와도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참사가 벌어진 장소 부근에 위치한 가게에 들렀을 당시 주인 아저씨가 아이를 봤다며 떠들던 소리는 사실 술에 취한 채 아무런 의미 없이 내뱉는 일종의 술주정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원은 그의 술주정조차 숨진 딸 아이의 흔적이 아닐까 하는 비합리적인 신념에 빠져들며 분위기에 쉽사리 휘들리고 만다. 그녀의 남편(최무성)은 아내의 판단과 행동이 정상적이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그녀가 느끼는 상실감과 고통이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를 헤아리고 있는 까닭에 차마 그녀를 말릴 수가 없다. 조용히 그녀의 뒤를 살피며 배려해줄 뿐이다.



씨랜드 화재 참사 이후에도 우리는 비슷한 종류의 참사를 무수히 겪어왔다. 특히 4년 전 우리 사회 전체를 비통함 속으로 몰아넣었던 세월호 참사는 무수한 생채기를 남긴 사건이다. 이 영화는 세월호 참사 이전에 제작되었으나, 씨랜드와 세월호를 비롯, 수많았던 참사 기록을 통해 당시 자식을 잃은 부모와 남겨진 가족들의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지, 아울러 그로 인한 고통이 어떤 종류의 것이며 이를 이겨내는 힘 또한 결국 가족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묵묵히 일깨우고 있다.  



감독  홍지영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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