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나도 저들처럼 늙고 싶다

새 날 2017. 5. 22.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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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많은 영역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연일 계속되고 있는 새 정부의 인사엔 으레 '파격'이라는 단어가 덧칠되곤 한다. 특히 누가 봐도 부러움을 살 만큼 잘 생긴 데다가 능력 또한 출중한 인물들이 요직에 발탁되면서 '외모패권주의'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마저 시중에서 회자되고 있다. 우리 대통령은 전 세계 지도자 가운데 가장 잘 생긴 인물 7위에 선정될 정도로 멋진 외모를 뽐낸다. 물론 잘 생긴 외모만큼 일처리 또한 깔끔하다. 아니 시원시원하다. 대통령을 측면에서 자발적으로 지원하며 보호에 나선, 이른바 '문빠'라 불리는 팬덤 현상이 창궐하는 이유를 충분히 알 것도 같다.


'외모패권주의'라는 표현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단순히 멋지고 잘 생긴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뿐 아니라 몇몇 인사들의 자연스레 빗어 넘긴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은 다른 의미에서의 패권임이 분명하다. 우리 사회에서 흰 머리카락을 향한 시선은 사실 그다지 좋지 못한 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러움을 당당히 드러내고 있으니, 이를 외모패권이 아니면 과연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사실 문재인 대통령의 외모는 나의 이상형에 가깝다. 멋지게 나이 들어간다는 게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그분께서 몸소 실천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데일리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은 우리 같은 범인들에게는 지저분함과 노화의 상징으로 다가오는 터라 보통 염색을 통해 이를 숨기기에 급급하다. 자연스러운 게 좋다면서 하얗게 변모해가는 머리카락을 그냥 놔두고 있으면, 오히려 주변에서 왜 염색하지 않느냐며 성화에 오지랖까지 부리기 일쑤다. 심지어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약한 우리네는 울며 겨자먹기로 일반 사람들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곤 한다. 획일화된 우리 사회는 조금이라도 튀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는 사람들의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꼴을 그냥 놔둘 리 만무하다. 얼굴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뜯어 고치는 일마저 보편화된 마당에 하얗게 세어가는 머리카락을 까맣게 염색시키는 일 따위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진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는 것은 가을이 되면 나뭇잎에 단풍물이 들듯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 가운데 하나다. 나이 듦이라는 현상이 이러할진대, 온통 젊음만을 예찬하는 사회 분위기인 까닭에 그러한 환경에서의 늙음은 본질보다 훨씬 더 초라한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이 듦을 초조하게 받아들이게 하고 심지어 이를 죄악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어느덧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러움이라는 미덕을 앗아갔다. 자연스러움은 이제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게으름으로 받아들여진다. 자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족쇄가 그에게 채워지기 일쑤다. 틀린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이상한 시선과 마치 잘못됐다는 투로 바라보는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는 덤이다. 다양성과는 아주 먼 행위들이다.


ⓒ서울경제


이러한 현상은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남성들 사이에선 희어진 머리카락을 염색하지 않은 이들의 모습을 간혹 볼 수 있지만, 남성들에 비해 외모가 좀 더 비중 있게 다가오는 여성들 사이에선 이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번에 청와대와 정부 각료로 인선된 이들의 면면은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대통령 본인부터 희끗해진 머리카락을 결코 숨기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빗어 넘기고 있고, 외모패권주의의 대표주자격인 조국 민정수석 역시 하얗게 물들어가는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방목시키고 있다.


ⓒ경향신문


최초의 여성 외교부장관 후보로 임명된 강경화 후보자의 모습은 다른 의미에서 외모패권주의의 화룡점정이다. 젊었을 때의 모습보다 오히려 최근의 희끗희끗해진 자연스러운 색깔 톤의 머리카락이 더욱 강력한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멋지게 늙어간다는 게 과연 어떤 형태의 것인지 몸소 입증하려는 듯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대통령을 비롯하여 앞서 언급한 이들이 머리 위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은 상황에서도 대중들에게 멋진 외모로 각인될 수 있는 건 생김새가 워낙 출중한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언제나 자신이 현재 선 곳에서 맡은 바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이른바 꼰대로 늙기보다는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희끗희끗 날리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마저도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싶다. 


나도 저들처럼 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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