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인적성검사마저도 학습이 필요한 세상

새 날 2017. 4. 1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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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갈수록 위축되고 취업이 어려워지다 보니 이를 준비하는 취업준비생들의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선 채용 과정의 첫 단추라 할 수 있는 서류 작성부터 쉽지가 않다. 평소 글쓰기에 취약한 사람에겐 더더욱 그렇겠지만, 혹여 그렇지 않더라도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일이란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니다. 이른바 자소설이라 불릴 만큼 공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익숙치 않던 우리에겐 기업이 원하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이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두렵기까지 하다. 그러나 입사 서류는 취업의 첫 관문이자 자신을 드러내는 공식 홍보물에 해당하기에 이 정도쯤의 과정은 기본 중 기본에 속한다.


서류 전형을 통과했다면, 그나마 아주 운이 좋은 편이다. 정성껏 작성한 내 서류를 누군가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으며, 적어도 눈도장 정도는 찍었다는 의미로 다가올 테니 말이다. 대다수의 서류는 이를 심사하는 이들의 손을 거치기도 전에 삭제되거나 휴지통에 버려지기 일쑤다. 이렇게 어렵사리 첫 관문을 통과한 취업준비생들은 숨조차 크게 내쉴 겨를 없이 다음 관문을 준비해야 한다. 요즘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다수는 서류전형 절차를 통과할 경우 통상 인적성검사 단계로 넘어간다. 아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취업준비생들에게는 이 또한 만만찮은 과정이다.


ⓒ연합뉴스


그러다 보니 인적성검사의 기출문제와 출제 예상문제를 다루는 수험서가 인기리에 판매되는 웃지 못할 일마저 공공연하게 벌어진다. 실제로 대형서점의 수험서 코너에 가보면 대기업과 공기업 등 각 기업체별 인적성검사 대비 책들로 즐비하다. 취업준비생들은 이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이들 도서를 구입, 인적성검사에 대비하고 있다.


한 취업포털사이트가 상반기 대기업 신입 공채 모집에 지원한 취업준비생들을 대상으로 '인적성검사 준비 현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82.9%가 인적성검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준비 방식도 다양했다. 독학으로 문제집을 풀이하는 방식이 절반가량을 차지했고, 동료들과 취업 스터디를 하거나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는 경우가 나머지를 차지했다. 취업준비생들에게는 서류 작성과 면접 준비의 어려움에 이은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인적성 검사란 무엇일까? 인성검사란 한 기업에서 특정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소양과 가치관, 인성 등 수치화할 수 없는 정성적 평가를 의미하고, 적성검사란 직무 수행에 필요한 직업적인 역량 내지 적성을 등급이나 백분위, 표준점수 등에 기반하여 평가하는 정량적 평가를 뜻한다. 실제로 각 기업의 기출문제를 들춰보면 인성검사의 경우 조직 내에서의 적응력 등을 평가하는 요소들이 주를 이루고, 적성검사의 경우 수리능력이나 공간감각, 언어능력 등과 같은 IQ 검사에 필요한 요소 따위들로 빼곡히 채워져있다.


기업체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필요한 인재를 골라내기 위한 또 다른 방편으로 이러한 검사를 선호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고달픈 취업준비생들에게는 이마저도 가뜩이나 바늘구멍인 취업 관문을 뚫기 위한 치열한 경쟁 요소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지면서 이의 대비를 위한 사전 학습에 사활을 걸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정성적 평가인 인성검사의 모범답안을 구하기 위해 취업준비생들이 사전에 학습하고, 함께 모여 취업 스터디를 하는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그로데스크하다.



인성을 점수로 가두어놓는 것도 어이없는 노릇이지만, 자신의 본디 성품을 교묘히 감춘 채 사전에 학습된 경향에 맞도록 가짜 답안을 작성, 어떡하든 취업에 성공하겠노라는 발상은 어떤 측면에서는 매우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결코 있어선 안 될 일들이지만, 모두가 모른 척 이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 난 더 두렵고 무섭다.


인성검사 등 정성적 평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비단 정량적 평가라 하더라도 다분히 유전적인 성향 및 요소에 해당될 적성검사를 사전 학습과 모의시험을 통해 치른다는 사실 또한 어이없는 건 매한가지다. 인적성검사마저도 사전 연습을 통해 모범답안을 찾으면서 취업준비생들이 한결 같이 이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은 무한경쟁의 전쟁터인 지극히 대한민국다운 풍경이다.


애시당초 해당 기업, 그리고 직무와 관련하여 가치관이나 역량이 잘 맞지 않는 인물임에도, 충분한 반복학습과 모의시험을 통해 기업체가 필요로하는 답안에 일정 수준으로 근접해있다면 일단 해당 기업에 적합한 인재로써 자질을 갖추게 된다는 의미 아닌가. 이렇듯 본질은 전혀 다르지만 겉으로는 일정 수준에 도달한, 다분히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인재 아닌 인재를 간택한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기업체에도 결코 바람직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다.


선천적으로 타고 나거나 후천적으로 갖취진 한 인물의 사람 됨됨이 및 재능을 평가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전에 정해진 모범답안을 얻기 위해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이 이에 매달려 시험을 준비하는 건 무척이나 무모하면서도 불합리하고 낭비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감내해야 할 만만찮은 사회적 비용이 될 공산이 크다.  


일찍이 인성교육을 의무로 규정한 '인성교육진흥법'이 세계 최초로 시행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정성적 평가 요소인 인성에도 점수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학생들의 인성마저도 사교육을 통해 얼마든 착해 보이게끔 만들어주는 곳이다. 하물며 정답이 명확한 정량적 평가쯤이야 연습을 통해 점수를 끌어올리는 일 따위는 얼마든 가능할 테다. 이제는 취업준비생들의 인성과 적성마저도 사전 훈련을 통해 기업체가 요구하는 기준에 적합한 답안을 고르게 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버젓이 벌어진다. 인적성검사마저도 학습이 필요한, 정말 웃픈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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