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추석 명절 풍경, 눈에 띄게 달라졌다

새 날 2016. 9. 17.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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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추석 명절 연휴가 끝나간다. '명절 후유증 극복 꿀팁' '남은 명절 음식 처리하기' '명절 연휴 직후 이혼 급증' 등과 같이 매 명절이면 반복되는 이야기들이 여지없이 올라온다. 통과의례다. 그런데 해마다 조금씩 변모해오던 추석 명절의 풍경이 올해엔 흡사 롤러코스터 마냥 심하게 출렁이는 느낌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무슨 연유일까? 물론 세대가 변하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도 조금씩 달라지는 탓일 수 있겠으나, 이처럼 급격한 변화 뒤에는 보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 듯싶다. 


원래 추석이라 하면 한 해 농사를 마치고 수확을 거둘 수 있게 된 데 대해 조상에게 감사의 예를 올리고, 가족들이 오손도손 모여 앉아 함께 음식을 장만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한 해 동안의 노고를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근래 추석은 본디 지니고 있을 법한 명절의 취지로부터 많이 벗어나 그 본질이 퇴색되고 있는 모습이다. 모두가 기뻐해야 할 시간과 자리이건만, 언제부턴가 우리는 세대 구분 없이 이러한 명절이 외려 괴로워졌다. 


ⓒ연합뉴스


여성들은 명절 내내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전을 부치거나 송편을 빚고, 또한 찾아온 손님에게 음식을 장만하느라 몸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나마 몸고생만 하면 명절이 지난 뒤 며칠 동안 푹 쉬면서 이를 극복할 수나 있지, 사람들과 얽히고 설켜 가슴 한구석에 또아리를 튼 마음고생은 어찌할 방도가 없다. 응어리는 해마다 그 덩치를 불려나간다. 


명절 직후 갈라서는 부부들이 갈수록 늘고 있단다. 통계청이 발표한 '최근 5년간 이혼통계'를 보면 명절 전후인 2월과 3월 그리고 10월과 11월의 이혼 건수는 바로 직전 달보다 평균 11.5% 가량 많았다. 명절증후군을 겪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온라인 쇼핑몰에는 '가짜 깁스', '가짜 코피'라는 이색 상품마저 등장했다. 연출이나 영화 소품으로 사용되던 가짜 깁스가 명절 때만 되면 며느리 필수품으로 둔갑, 불티나게 팔리는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남성이라고 하여 편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벌초와 장거리 운전, 시댁과 아내 사이에서 괜시리 눈치를 살피며 갈등을 중재하느라 흔히 애를 먹곤 한다.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괴롭다. 아직 초중고생이라면 용돈을 주며 학교 성적이나 석차 등을 슬쩍 묻는 어른들, 차라리 그깟 용돈 안 받고 말지 라는 생각이 불쑥 들 수밖에 없다.



이제 갓 성년이 된 자녀가 있다면, 누구누구는 좋은 대학에 갔다던데, 대학은 어디에 들어갔느냐며 묻는 사람들, 조금 더 나이가 있다면 취업은 했는지 그리고 어느 기업에 들어갔는지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그뿐인가. 결혼 적령기에 이른 청년들에게는 결혼은 언제 할 건지, 왜 하지 않느냐며 걱정해 주는 사람들, 만약 결혼을 했다면 애는 언제 낳을 것이며 누구는 돌잔치를 했다던데 라고 무심코 던진 질문과 말 한 마디에 당사자들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기 일쑤이다. 남들과 굳이 비교해 가며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세우려는 사람들, 평소 연락 한 번 하지 않더니 명절만 되면 내 자식은 이런데 너희 자식은 어떻느냐, 미주알고주알 따져가며 참 남의 아픈 구석을 잘도 헤집어 놓곤 한다. 청년들이 명절을 슬금슬금 피하려는 속내를 전혀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지난해 국내의 1인 가구는 전체 가구 유형의 27%로, 2인 가구를 넘어 1위에 올라섰다. 520만에 이른다고 하니 바야흐로 1인가구 전성시대다. 명절 동안 고향에서 차례를 지내는 대신 혼자 보내거나 가족끼리 여행하는 풍습이 빠르게 늘고 있는 건, 다름아닌 이러한 1인 가구 형태가 한 몫 단단히 한다. 더구나 명절 연휴 기간에 고향을 찾더라도 예전처럼 오랜 시간 고향에 머무는 법이 없다. 실제로 연휴 기간에 3박4일 이상 고향에 머문다는 응답은 10년새 40%에서 20%대로 급감했다. 차례상 장만도 예전처럼 격식을 차리기보다 간소화하거나 편의성을 추구하며, 합리적인 형태로 변모해 가고 있다. 상에 올리는 음식도 현재 살아있는 사람의 취향에 맞추곤 한다. 


빅데이터 분석기업 다음소프트가 2011년부터 2016년 9월6일까지 블로그와 트위터 글 수백억 건을 분석한 결과 '나홀로 추석'을 보냈거나 희망하는 사람이 89% 가량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인 가구의 성장과 함께 앞서 언급했던 전 세대를 짓누르는 괴로운 명절 현상이 이러한 결과를 빚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실제로 혼자 영화관에 가거나 해외여행을 가고, 각자 명절 연휴 시간을 보낸다. 지난해 추석 연휴 기간 영화 관객의 16.4%가 1인 관객이었다는 놀라운 통계 결과가 이 같은 추세를 잘 반영한다. 


나홀로족을 위한 명절 도시락 ⓒ한국일보


하지만 무엇보다 추석 명절 풍경 변화에 기름을 부은 건 다름아닌 SNS의 폭발적인 성장 아닐까 싶다. SNS 발달 이전에는 각 개인이 겪는 고통을 호소할 곳이 마땅치 않아 그냥 감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바야흐로 유무선 기기로 촘촘이 네트워크화된 세상이 도래하자 개인들이 이를 활용해 소통을 하며, 전통이라는 명분 하에 모든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비합리적인 요소들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면서 변화의 물결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모양새다. 


향후 이러한 현상은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전통적인 가족주의가 해체되어가고 있는 데다, 과거보다 합리적인 사고를 갖춘 이들이 갈수록 늘어나 첨단화되는 기기와 소통 도구를 활용, 전통은 가급적 살리되 비합리적인 요소로부터 벗어난, 21세기형 새로운 명절 풍습을 본격 이끌어갈 테니 말이다. 1인 가구의 증가 역시 이를 가속화시키는 데 일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10년 후의 추석 풍경은 지금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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