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택배 서비스가 늦어 짜증스러운가요?

새 날 2016. 3. 18.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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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으로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물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인류의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바꿔줄 일종의 혁명으로 받아들이는 류가 전자일 테고, 영화 등의 매체에서 흔한 소재로 등장하는 것과 같이 종국엔 인류의 능력을 뛰어넘어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 예상하는 류는 후자에 해당할 테다. 어찌되었든 인공지능을 개발한 주체는 인류일 테니, 핵의 애초 개발 목적과 쓰임새가 전혀 다를 수 있는 것처럼 이를 어떻게 운용하여 우리의 삶에 보탬이 되게 하느냐 역시 전적으로 우리 스스로에게 달린 사안일 테다.

 

인공지능의 발달이 기존 방식의 일자리를 대거 대체하리라는 건 누구나 예측 가능하리 만큼 아주 명확한 명제다. 비단 인공지능이 아니더라도 정보통신기술(IT)의 발달이 당장 전통 방식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음 역시 주지의 사실이기도 하다. 얼마전 포스팅을 통해서도 잠깐 언급한 사안이긴 하지만, CCTV 등을 갖춘 자동경비시스템이 아파트 경비원의 일자리를 앗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근래 화두다. 드론의 등장은 택배 기사의 자리를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기도 하다. 

 

ⓒ아마존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아마존은 드론을 이용한 30분 배송 서비스를 추진 중에 있으며, 일반 주택 뿐 아니라 도심 지역 아파트에도 배달 가능한 드론을 개발 중이란다. 일본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 라쿠텐과 야마토운수도 2020년 상용화를 목표로 드론을 활용한 택배 사업에 뛰어들었다. 중국의 2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징둥은 드론을 이용한 택배 상용화를 중국 전역으로 확대 적용키로 했단다.

 

드론 뿐이 아니다. 택배 로봇도 등장했다. 영국에서는 GPS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고 6개의 바퀴가 달려 있는 형태의, 지상에서 주행 가능한 지능로봇을 개발, 그리니치 등 허가를 받은 일부 지역부터 운행하기로 결정했단다. 바야흐로 첨단 기술이 인류의 전통적인 일자리를 본격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추세로 본다면 조만간 쇼핑몰에서 구입한 제품을 사람이 아닌, 로봇이나 드론을 통해 전달 받을 가능성이 점차 농후해지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요근래 특정 택배사의 배송 기간이 자꾸 길어지는 것 같아 해당 택배사로 당첨이 될 때마다 약간의 짜증 같은 게 올라오곤 하던 참이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익일 배송 시스템에 익숙해지다 보니, 어느덧 하루만 늦게 배송이 되더라도 이를 참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해당 택배사는 우체국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가장 큰 배송 시스템을 갖추었으리라 짐작되는 회사라 웬만한 쇼핑몰 배송은 이를 거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익일 배송이 아닌, 배송 의뢰부터 완료까지 적어도 3,4일이 족히 소요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이 택배사에 대한 믿음이 깨지기 시작한 건 비단 늦은 배송 시스템만이 아니다. 얼마전 반품할 물건이 있어 쇼핑몰에 회수 요청을 해 놓았으나 일주일이 지나도 제품 회수가 이뤄지지 않은 적이 있다. 기다리다 지쳐 쇼핑몰에 물으니 택배사가 가져가지 않은 것이란다. 쇼핑몰에 문의한 그날 뒤늦게 택배기사님이 오시긴 했다. 난 평소 같았으면 '감사합니다'란 인사를 한 뒤 물건을 받거나 건네곤 했을 텐데, 이날따라 기사님이 너무도 야속했던 터라 아무 말 없이 물건을 넘겨드리고 말았다. 제품 회수에 어떻게 1주일 이상이 소요될 수 있느냐며 외려 속으로 나름 씩씩거리고 있던 찰나다.

 

 

엇그제의 일이다. 아침에 같은 택배사로부터 문자 한 통이 날아들었다. 주말에 주문한 상품을 18시에서 20시 사이에 배달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기사님은 정확했다. 19시쯤 찾아왔다. 매번 오시던 그분이다. 물론 지난 번 반품 담당자 역시 같은 분이다. 물건 하나를 놓고 가셨다. 그런데 의아했다. 문자에서 언급한 그 물건이 아닌 다른 놈이었다. 난 뒤늦게 이를 알게 된 터라 문자로 문의했다. '아까 오셨을 때 혹시 배송할 다른 물건은 없었나요? 오늘 아침에 배송해 준다는 문자를 받았는데 정작 그 물건은 빠졌거든요'

 

얼마후 기사님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아마도 다른 행낭 속에 들어있는 것 같단다. 배송 다 끝내고 사무실에 돌아가 확인한 뒤 다시 연락을 주마 하셨다. 난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렇게 여쭈었다. '저 때문에 일부러 들어가시는 거라면 그렇게 하지 마세요' 그랬더니 그런 건 아니고 어차피 물건들을 다시 싣고 나와 배송을 계속해야 한단다. 때문에 연락이 조금 늦을 수 있으니 양해해 달라는 말씀도 잊지 않았다. 난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연락이 없다. 난 이대로 유야무야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밤 10시가 넘은 시각, 전화벨이 울렸다. 택배기사님이었다. '지금 와 있는데, 물건 어떻게 할까요? 다른 곳에 맡겨놓을까요?' 난 그렇게 해 줄 것을 부탁한 뒤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그곳으로 향했다. 기사님이 맡겨놓은 곳을 통해 물건을 받아올 수 있었다. 이후 난 혹시나 해서 주변 골목길을 서성거렸다. 저 멀리 어둠속 보안등 밑으로 트럭 한 대가 세워져 있고, 그 곁에선 무언가 부지런히 움직이는 듯한 실루엣 하나가 어른거린다. 트럭은 내가 언급했던 그 택배사의 차량이었고, 실루엣은 다름아닌 아까 그 택배기사님이었다. 나를 보더니 대뜸 무슨 일 있느냐며 반색을 하신다.

 

ⓒSBS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그 시각에도 기사님은 택배 물량들을 배송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거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온다. 무언가 미안한 감정이 저 아래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느낌이다. 그동안 왜 배송 시스템이 다른 곳보다 더 늦었던 거며, 심지어 반품 회수에 1주일 이상이 소요됐던 것인지 어림 짐작케 하고도 남는 상황이다. 배송만으로도 너무 바쁠 만큼 물량이 많아 밤 11시가 될 때까지 배송에 또 배송을 하느라 하루씩 늦어지거나 회수에도 큰 신경을 쓰지 못했던 셈이다.

 

난 지금 의자에 앉아서 손가락 클릭만으로 제품을 주문하고, 운이 좋을 경우 이를 다음날 내 손아귀에 쥘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고 계시는 택배기사님들 덕분이다. 그런데 근래 드론이며 로봇이며, 심지어 인공지능까지 등장하더니 이런 분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택배기사님들의 노고에 대해선 익히 들어온 터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난 그분들께 평소 따뜻한 말 한 마디 잘 건네지 못하고 오히려 조금이라도 늦을 경우 채근하기 바빴다. 지금부터라도 택배기사님들이 방문할 때면, 큰 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밝게 인사를 건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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