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영화관의 가격 다양화 제도와 애국심 마케팅

새 날 2016. 2. 2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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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화 상영관 업계 1위인 CJ CGV가 좌석별 시간대별로 관람료를 차등화한 가격 다양화 제도를 3월 3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그 중 관람객들에게 가장 민감하게 다가오는 대목은 다름아닌 좌석별 요금제도일 텐데, 상영관의 좌석 위치에 따라 '이코노미존’, '스탠다드존’, '프라임존’ 등 세 단계로 구분, 가격 차등화를 시도하겠단다. 스탠다드존을 기준 가격으로 하고, 이코노미존은 그보다 1000원 낮게, 프라임존은 1000원 높게 책정한 것이다.

 

즉, 지금까지는 같은 상영관일 경우 좌석 위치와 상관 없이 모두 같은 가격으로 영화 관람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으나 이젠 관람시간대는 물론, 관람 위치에 따라서도 가격이 차등화되는 셈이다. 이를테면 이용자라면 누구나 꺼려할 법한, 스크린과 너무 가까운 위치의 좌석은 이코노미존으로 지정되어 현재보다 1000원 저렴하게 관람할 수 있게 된다. 일견 합리적인 제도로 읽힌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프라임경제

 

이른바 이코노미존은 평소 관객의 선호도가 낮아 좌석에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흔히 빈 자리로 남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웬만해서는 1천 원 정도 저렴하다는 이유로 관람하기가 더없이 불편한 좌석을 일부러 선호하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짐작된다. 결국 관객이 물밀듯 밀려들어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경우라면 몰라도, 평소와 같이 여유 있는 상황이라면 이코노미존 지정에 따른 가격 인하 효과는 극히 미미하리라 예상된다.

 

그러나 이코노미존과는 달리 프라임존의 등장은 관객에게 전혀 다른 양태로 다가온다. 이번 가격 다양화 제도의 결정적인 모순은 관객이 제일 선호하는, 평소 일반석으로 여겨왔던 G열 이후의 중앙과 측면 대부분이 '프라임존'으로 묶였다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결과적으로 웬만한 좌석은 관객들이 기존 금액보다 1천 원 더 내고 관람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가격 차등화된 좌석의 비율은 그 분포가 어떨까? 전체 좌석 중 이코노미존은 20%, 스탠다드존은 45%, 프라임존은 35%를 차지한다. 아무런 조건 없이 순수하게 좌석의 비율만 놓고 보더라도 프라임존이 이코노미존보다 15%포인트 높기 때문에 어떤 수사적인 표현을 들이댄다 해도 결과적으로 이번 제도가 영화 관람료의 인상 효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피해갈 수는 없다. CJ CGV가 마치 관객들의 선택 폭을 늘린 것처럼 포장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가격 다양화라는 명분 하에 관람료 인상을 단행한 것에 불과하다.  

 

 

관객들에겐 가뜩이나 비싸게 와닿던 영화 관람료이거늘, 업계의 시장 지배적 위치에 놓인 회사가 새로운 제도를 꺼내들었으니 여타의 업체 역시 비슷한 방식의 가격 인상을 시도해 오지 않을까 싶다. 바야흐로 또 다시 영화 관람료 인상의 광풍이 몰아칠 기세다. 상영관을 가끔 이용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찜찜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CJ CGV는 스크린과 가까운 좌석의 경우 관객 선호도가 낮음에도 관람료가 같다는 사실이 너무 불합리하다는 관객들의 지적을 반영하여 이번 정책을 마련했다고 한다. 결국 해당 제도는 관객들의 니즈가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의미인데, 어쨌거나 그 완성된 모양새가 어떠하든 이용자들의 요구 사항을 제때 수용한 회사 측의 자세에 대해서는 매우 높이 살 만하다. 그렇다면 나 역시 CJ CGV 고객의 한 사람으로서 제안 하나를 해볼까 한다. 이번 사례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불합리한 부분이라 시급히 개선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CGV는 지난해 기준 영화관 시장점유율 49.3%를 차지할 정도로 시장 지배적 지위에 놓여 있는 회사다. 때문에 나 또한 영화 관람 시 원하든 원치 않든 어쩔 수 없이 CGV로 발길이 향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런데 이곳에서 영화를 관람할 때마다 매번 느끼게 되지만, CJ그룹에서 만든 광고 한 편이 눈에 영 거슬리게 다가온다. 해당 광고는 다른 광고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편성되어 본의 아니게 반강제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즉, 모든 영화가 상영되기 바로 직전 삽입시켜 놓은 '프리미엄 코리아'라는 제목의 다분히 의도적인 애국심 유발 광고다. 참고로 어떤 분들은 해당 광고 더러 '국뽕'이라 칭하기도 한다.

 

유튜브영상 캡쳐

 

언론보도에 따르면 해당 광고는 CJ그룹이 지난해 문화산업 20주년을 기념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어려움에 처한 분들에게 자부심을 주기 위해 제작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은 심각할 정도로 낯간지러움 일색이다. 정부도 아닌 일개 기업이 왜 직접 애국심에 관여하고 나섰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애국심이란 게 이렇듯 문화 상품에 은근슬쩍 끼워 넣어진 채 세뇌교육을 통해 고취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면 가뜩이나 헬조선을 부르짖으며 자기 비하에 나선 청년들이 널린 작금의 대한민국 처지에서 이를 굳이 말릴 의향은 없다. 허나 그러한 성향의 것이 아님은 삼척동자도 알 만큼 명백한 사실이다. 관객들의 니즈에 의해 가격 다양화 카드를 꺼내 든 상황이고, 이를 빌미로 결국 가격 인상마저 시도한 CJ CGV다. 관객들은 관람료 인상으로 인해 가뜩이나 마뜩잖은 상황이거늘, 앞으로도 낯간지러운 애국심 마케팅이 지속된다면, 영화 관람을 위해 상영관을 찾을 때마다 의식적으로 CGV를 배제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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