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수포자' 양산, 우리 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새 날 2015. 7. 23. 11:43
반응형

수학 공부를 단념한 채 이를 포기한 자를 줄여 우린 '수포자'라 일컫는다.  한편으로는 재치있는 표현이라 재밌게 와닿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왜 이런 용어가 대중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것인지 알고 보면 참으로 씁쓸하다.  이런 유행어가 만들어진 채 시중에 떠돌고 있다는 건 그만큼 수학이란 교과에 짓눌린 아이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일반계 고교에 가보면 수업시간임에도 불구하고 70% 이상의 학생이 엎드려 자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딴짓 삼매경에 빠져있기 일쑤다.  일반 교과도 이럴진대 수포자가 다수를 이루는 황망한 환경에 놓인 수학 시간엔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덜하진 않을 테다.

 

우리 아이들이 수학을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아이들 저마다의 끼처럼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다 결정적이면서도 공통적인 사실 하나를 엿볼 수 있다.  제아무리 꼴찌를 다투는 아이라 해도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을 테다.  그런데 여러 과목 중 하필이면 수학이란 녀석이 자신의 발목을 제대로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이를 해결하고 싶다.  수학이란 녀석은 참으로 묘하다.  투자 대비 효과가 여타 과목에 비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학습에 공들여야 할 시간은 그 어느 과목보다 많이 필요한데, 그에 비례한 만큼 성적 향상은 두드러지지 않다는 의미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수학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교과체계 중 어느 단락 하나라도 소홀히 했다간 낭패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소위 말하는 기초가 필요하다는 게 바로 이 부분에 해당한다.  물론 여타 과목 또한 기초가 필요한 건 불문가지이나 수학이란 교과만의 특성상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 하급 학년에서 제대로 익히지 않고 고학년으로 진입했다면, 그와 관련한 문제는 해결할 수가 없을 테고, 이를 해결하려다 보니 과거 미흡했던 기초 실력부터 다시 차근차근 밟아 올라와야 하는 수고로움이 뒤따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난관을 모두 극복하고 열심히 노력했다고 하여 투자한 만큼의 대가가 따르느냐 하면 이는 또 별개의 문제에 해당하기에 아이들은 이내 지쳐간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다른 과목에 더 투자하고 말지 하면서 수학이란 과목과는 점점 멀어져간다.  즉 전체 과목 중 가장 많은 노력과 시간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절대적인 비중에 반해 그 산출 효과가 미미한 탓에 아이들은 지쳐 떨어지기 일쑤다.  물론 이렇게 된 배경엔 교육 당국의 이해할 수 없는 교과과정과 사교육 문제가 실타래처럼 마구 얽혀있기에 뭐라고 딱히 꼬집어 단정짓기엔 어려운 구석이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현재 놓여진 어려운 처지를 한 통계조사가 극명하게 보여 준다.  22일 발표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학교 수학교육 학생 교사 인식 조사' 결과, 수포자가 이미 초등학교 6학년생의 36.5%에 이르며 고학년으로 갈수록 점차 느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르면 중3의 경우 46.2%, 고3은 수포자가 59.7%에 이른다.  한 마디로 고등학생의 10명 중 6명이 수학을 단념하고 있는 셈이다.  더욱 논란이 되고 있는 건 40% 가까이에 이르는 초등학생마저 벌써부터 수학을 포기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이 정도면 무척 심각하다.

 

하긴 왜 이러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지 짚이는 대목이 있긴 하다.  우리 교육 당국은 정기적으로 혹은 부정기적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교과과정을 바꿔왔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부지런하며 바람직스러운 면모이긴 하지만, 그 속내를 알고 보면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수학 역시 이의 변경을 통해 난이도 등의 조정이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는데, 교육 당국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졌느냐 하면, 마냥 어렵기만 한 수학 과목을 아이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겠노라는 취지에서 스토리텔링 기법 등을 교과서에 적용해 왔다.  결과적으로는 이 때문에 아이들이 수학을 더욱 기피한 꼴이 됐다.  

 

아이들이 풀고 있는 수학 문제를 어깨 너머로 흘끔 보노라면, 이 문제가 과연 해결하라고 낸 것인지 그도 아니면 아예 틀리도록 유도하기 위해 만든 꼼수적 기법이 동원된 것인지 헷갈릴 때가 종종 있다.  요즘 아이들은 워낙 영민한 데다 사교육으로 단련이 된 덕분에 웬만한 수준의 문제는 척척 풀어내니 변별력을 유지한답시고 동원한 방식이 아마도 이렇듯 몇차례 꼬아 아이들의 실수를 유발하는 식의 문제들이 아닌가 싶다.  이런 기법이 과연 아이들의 수학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오히려 아이들을 수학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지 않을까?  

 

ⓒ헤럴드경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자신감을 키워주는 게 너무 부족하다. 아이들이 수학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던 국제수학연맹 회장의 일침이다.  우리 수학 교육이 현재 처한 문제점과 그에 대한 해법이 무엇인지 이분의 말씀 속에 전부 녹아들어 있다.  

 

아울러 나도 느끼는 바이지만, 아주 가끔은 우리 한국말이 꽤나 어렵게 다가올 때가 있다.  특히 수학 교과서나 교재 속 문제들을 읽다 보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들로 수두룩하다.  어른들도 이럴진대 우리 아이들은 오죽할까 싶다.  쉽게 접근시키려는 의도가 오히려 더욱 멀어지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엄청난 학습 분량도 문제다.  중학교 때까지는 그럭저럭 근근이 버티다가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만 하면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교과과정은 우리 아이들을 자꾸만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고 있다.  사교육 하지 말라는 교육 당국의 목소리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KDI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사교육 시장 규모가 올해 국가예산인 375조4천억원의 8.8% 수준인 33조원에 육박하여 OECD 평균의 3배에 달한단다.  

 

사교육과 우리 교육 당국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영향력을 행사하며 수학 교과 수준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는 모양새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수준이 아닌, 앞서 언급했던 방식의 수준 향상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사교육을 통해 충분히 훈련된 아이들이 학교 교과과정이 쉽게 느껴지다 보니, 교육 당국은 이를 해결한답시고 교과서의 난이도를 높이거나 상급의 교과과정을 하급 과정으로 끌어내리는 등의 묘수를 동원했을 테고, 이러한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하다 보니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은 방향으로의 수준이 높아진 수학은 어느덧 보통의 아이들에게조차 너무 먼 당신이 돼버렸다. 

 

사교육과의 자존심을 건 치열한 사투와 변별력 유지의 대가가 수포자 대량 양산 사태로 이어지게 만든 결과라면, 차라리 그 반대의 전략은 어떨까?  즉 앞으로 틀리도록 유도하기 위한 문제는 지양하고, 스토리텔링 기법을 도입한답시고 이해조차 어려운 문구를 써가며 아이들을 질리게끔 하지 말 것이며, 엄청난 분량의 교과과정을 적절한 수준으로 맞춰 수학으로부터 멀어졌던 우리 아이들의 발길을 다시금 되돌리도록 하는 방법 말이다.  교육 당국이 오는 9월까지 수학 교육과정개편 최종안을 내놓는다고 하니, 이번만큼은 제발 실망스럽지 않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