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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 경험의 즐거움 552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영화 '13년의 공백'

마사토(릴리 프랭키)가 세상을 떠났다. 두 아들 요시유키(사이토 타쿠미)와 코지(마츠다 잇세이)가 망자의 장례식장을 지켰다. 하지만 마사토의 아내 요코(킨노 미스즈)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사토의 장례식장을 찾는 손님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조문하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이웃한 또 다른 망자의 그곳과는 대조적이었다. 남은 가족에게 마사토의 생전 이미지는 도박 중독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집 밖에 있는 날이면 마사토는 허구헌날 마작에 빠져 지내기 일쑤였고,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날이면 채권자들의 빚 독촉에 온 가족이 온종일 시달려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사토는 담배를 구입하겠다며 집 밖으로 나간 뒤 그 길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의 부재는 13년 동안이나 길게 이어진다. 영화 ..

빠름에 지친 당신을 위로해줄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대학 입시 학원에 다니는 영호(강하늘)는 벌써 세 번째 대입에 도전 중이다. 하지만 공부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학원과 집을 오가는 일상은 무료하고 단조롭기 짝이 없었다. 매사가 심드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호는 초등학교 재학 시절 당시의 한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달리기 시합 도중 넘어진 자신에게 손수건을 건넨, 같은 학년의 한 소녀. 영호는 그녀의 체육복 위에 또렷이 새겨진 이름 석자 '공소연'을 기억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당시의 사건은 그에겐 잊지 못 할 추억이 됐다. 수소문 끝에 그녀의 주소를 알아낸 영호는 무작정 편지를 써 보낸다. 영호가 보낸 편지는 며칠 후 부산에서 어머니(이항나)와 함께 중고책방을 운영하는 소희(천우희)의 손에 닿는다. 소희는 영호가 기억하는 소연의 동생이며, 소..

아무튼, 새해엔 행복해지자 <해피 뉴 이어>

비정규직 직원(원진아)부터 호텔리어(한지민), 도어맨(정진영), 그리고 사장(이동욱)까지 호텔이 일자리인 사람들, 연말 콘서트를 기획하고(서강준, 이광수) 또 이를 관람하는 사람들, 결혼식 준비에 분주한 사람들(김영광, 고성희), 매주 토요일마다 맞선을 보기 위해 라운지에 등장하는 사람(이진욱), 공무원시험에 연거푸 낙방하고 모든 걸 포기한 사람(강하늘). 2021년말, 호텔 엠로스에는 저마다 나름의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오랜 기간 짝사랑해 왔으나 정작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 해 결국 사랑을 놓쳐버린 40살 노처녀에게도 희망이란 게 과연 찾아올까. 일개 말단 직원 덕분에 강박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호텔 사장, 아슬아슬 펼쳐지는 이들의 로맨스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다 <나는 보리>

강원도 강릉의 한 작은 마을. 초등학생인 보리(김아송)는 푸른 바다가 손에 잡힐 듯한 이곳에서 아빠(곽진석), 엄마(허지나), 그리고 동생 정우(이린하)와 함께 살아간다. 보리를 제외한 나머지 식구들은 모두가 청각장애인이다. 때문에 음식을 주문하는 일처럼 듣고 말하기가 요구되는 사안은 죄다 보리의 몫이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가족과의 소통에 큰 어려움이 없었던 보리는 이렇듯 일상 속에서 수어를 터득하고 있었다. 보리네 가족은 아이가 딸린 여느 가정처럼 복닥거리는 일상이지만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남 부러울 게 없다. 그런데 보리는 언젠가부터 가족 사이에서 묘한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왠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만 함께하지 못 하고 주변부를 맴도는 느낌이다. 장애인 가족 사이에서 유일하게 비장애인인..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묻는 영화 <어느 가족>

근래 들어서는 예전에 비해 그 의미가 다소 포괄적인 개념에 가까워졌지만, 가족은 통상 '혼인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집단, 또는 그 구성원과의 관계'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조금은 특이한 형태의 가족도 존재한다. 겉으로 볼 땐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손주까지 3대가 함께 복닥거리면서 사는 영락없는 대가족이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피가 전혀 섞여 있지 않다. 그 흔한 혼인관계조차 없다. 쉽게 떠올릴 법한 전통적인 관계의 가족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도 않다. 가족 구성원들은 일용직이나 유흥업소에 몸 담으며, 아이에게는 도둑질을 종용하는 등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집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영화 은 전통 의미의 가족과는 달리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조..

작은 위안으로 이끄는 영화 <카모메 식당>

카모메 식당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카페 겸 음식점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가 나홀로 운영 중이다. 가게를 인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손님이 많지 않다. 그녀는 손님이 곧 하나둘 늘어날 것이라 믿고 매일 아침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며, 분주한 손길로 식기들을 닦는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첫 손님을 맞게 되는 카모메 식당. 토미(자코 니에미)라 불리는 핀란드 국적의 청년이다. 그는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사치에와 금방 가까워진다. 그렇게 카모메 식당과 인연을 맺은 그에겐 사치에가 정성껏 내린 커피를 마시는 일이 매일 치러야 하는 일과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무작정 핀란드 여행에 뛰어든 일본인 여성 미도리(카타기리 하이리)를 사치에가 우연히..

액션 종합선물세트 <유체이탈자>

어느 날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교통사고 현장에서 깨어난 강이안(윤계상).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다. 거울에 비친 얼굴도 영 낯설기만 하다. 경찰서에서 사고 조사를 마치고 나온 그는 현 상황이 몹시 혼란스러우나 이를 느낄 겨를조차 없다. 이윽고 또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나기 때문이다. 강이안은 12시간마다 전혀 다른 사람의 몸에서 새롭게 눈을 뜬다. 이 기이한 현상은 강이안의 평범했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자신의 정체성이 몹시 궁금해진 강이안. 그를 둘러싼 사건과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몸을 빌려 깨어날 때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뒤를 쫓는 한 남자, 그리고 그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한 여자. 이들 사이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을 것으로 ..

영웅으로 거듭나기 위한 성장통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피터 파커(톰 홀랜드)는 빌런 미스테리오(제이크 질렌할)의 계략에 의해 자신의 정체가 세상 모든 이들에게 탄로남과 동시에 또 다른 빌런으로 오해를 받게 된다. 이로 인해 평범했던 일상이 와르르 무너져버린 피터 파커. 문제 해결을 위해 그는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찾는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도움을 통해 세상을 스파이더맨의 정체가 탄로나기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의 도움은 실행 과정에서 어긋난다. 그의 주문이 멀티버스(다중우주)를 잘못 건드리는 통에 과거 스파이더맨과 대적했던 빌런들을 일제히 현실 세계로 소환하게 된 것이다. 빌런들을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닥터 스트레인지. 이는 곧 빌런의 죽음을 의미하기에 그럴 수는 없다며 완강히 버티는 피터 파커. ..

전쟁이 초래한 비극 속에서 건져 올린 한 줄기 희망 <아뉴스 데이>

폴란드의 한 수녀원. 이 곳을 몰래 빠져나온 아레나 수녀(요안나 쿨릭)는 의사를 수소문하기 위해 마을 주변을 배회한다. 출산이 임박한 동료 수녀를 도울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마을 아이들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프랑스 국적의 적십자사, 어렵사리 의사를 찾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여건상 도움을 받기는 어려운 처지였다. 결국 도움 요청을 거절 당한 아레나 수녀가 할 수 있었던 건 적십자사 건물 밖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리는 일뿐. 그때였다. 프랑스 국적의 의사 마틸드(루드 라쥬)가 아레나 수녀의 기도 모습을 우연히 목격, 마음이 바뀌었는지 아레나 수녀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함께 수녀원으로 향하는데... 1945년,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파고에 휩쓸린 폴란드의 상황은 그야말로 엄혹했다. 영화 는 ..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이 소름끼치게 다가왔던 이유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이 '오징어게임'에 이어 또 다시 인기몰이에 성공을 거뒀다. 이는 K-콘텐츠의 세계적 현상이 결코 일시적이거나 우연이 아님을 입증하는 결과물이라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내심 반갑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왜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걸까. 도대체 어떠한 요소들이 세계인들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내고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걸까. 죽음.. 비단 인간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라면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절대 숙명에 가까운 명제다. 언젠간 맞닥뜨려야 할 운명이자 현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외면하고 싶은 게 인류의 보편 정서다. 그렇기에 죽음이라는 명제는 두려움 및 공포와 떼려와 뗄 수 없는 관계다. 드라마 '지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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