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요즘 아이들 역시 세상 살아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닌 모양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계층이 초등학생이란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요즘 아이들, 학교 끝나기가 무섭게 방과후 교실이나 온갖 종류의 학원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바쁘다. 재잘거리던 동네 꼬마 녀석들 모습을 본 지가 언제였나 싶다.
학부모들은 학부모들대로 아이들의 교육비를 마련하느라 지쳐가고, 어느덧 등골이 휠 정도다. 사교육의 덫에 빠져들기 싫은 일부 학부모들은 나름의 고육책을 마련하기도 한다. 이른바 '품앗이 과외'다. 하지만 사교육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노라는 참신한 시도가 되레 학부모들 사이에서 갈등을 키울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또래 집단 내에서의 생활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까지 있단다. (부모 학벌 안 좋으면 '품앗이 과외' 못한다? 기사 참조)
ⓒ연합뉴스
학벌이 좋은 부모와 그렇지 않은 부모 간 서열이 생기기 마련이고, 이는 자연스레 아이들마저 줄세우기 광풍 속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빚곤 한다. 이를 안 하자니 교육비에 치여 삶의 질이 형편 없게 될 테고, 반대로 이를 하자니 서열화에 학부모와 아이들이 동시에 눈물을 흘려야 할 처지인지라 이도 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우리 사회에서의 서열화는 비단 학벌뿐만이 아닐 테다. 소유 재산부터 출신지역 등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어른들끼리의 서열화야 일상과도 같은 일이니 그냥 받아넘겨도 될 일이지만, 어느덧 아이들에게까지 대물림된 이 지독한 악순환은 최악의 형태랄 수 있는 왕따 현상마저 빚으며 아이들의 삶을 불행이란 구덩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좋은 의도였지만 종국엔 이렇듯 학벌에 의한 부모들의 줄세우기로 귀결되며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빚게 되는 사례가 비단 '품앗이 과외' 뿐이랴. 짐작컨대 주변에서 비슷한 상황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다. 우리 사회만이 갖는 병리적 현상 탓이다.
학교라는 커뮤니티에서의 서열화는 이미 보편화의 단계를 넘어 광속 질주하고 있는 양상이다. 성적순에 의한 줄세우기가 어느덧 도를 넘어 급기야 급식 순서에까지 반영될 정도로 교육자들의 감각이 무뎌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빨라 성찰의 기회조차 포착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새다.
반면, 아이들의 놀이 문화는 외려 점점 단순해져간다. 마치 아이들의 꿈이 연예인과 공무원으로 단출하게 수렴해가듯 말이다. 손에 쥐어준 스마트폰이 아이들의 유일한 위안거리이자 모든 놀이의 관문 역할을 한다. 디지털 세상의 편리함이 빚은 새로운 풍속도다. 이로 인한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자제력이 약한 탓에 인터넷과 게임 중독에 쉽게 빠져들고, 최근엔 음란물에 심취된 아이들마저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경찰이 인터넷 SNS에 자기 신체 영상 내지 음란 동영상을 올리거나 상습적으로 내려받은 사람들을 적발했는데, 이 가운데 초등학생이 무려 30%에 이른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주로 현실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받은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를 통해 쉽게 접근 가능한 온라인에 몰입하여 가상세계에서라도 주목 받고 싶은 심리가 작용한 탓이다. 편리해진 디지털 환경이 어느덧 어른들의 세계관을 아이들에게까지 쉽게 물들여놓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결국 사회 곳곳이 위험천만 암초 투성이란 의미이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이를 피해가기가 쉽지 않아 마치 지뢰 게임을 현실 속으로 옮겨놓은 느낌이다.
ⓒ보건복지부
통계 조사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보건복지부가 4일 '2013 한국 아동 종합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우리나라 아동의 '삶의 만족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네 삶이 팍팍하리란 건 익히 예상했던 일이지만, 어느덧 아이들에게까지 전가된 결과를 보고 있자니 적잖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학업 스트레스, 학교폭력, 인터넷 중독, 방임, 사이버 폭력 등이 우리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를 크게 낮추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앞에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 측면에서 볼 때 어쩌면 당연한 결과물이 아닐까 싶어 안타깝다. 그만큼 우리 아이들의 삶이 위태위태하다는 방증일 테다.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4일 한국-세계은행 교육혁신 심포지엄에 참석하여 다음과 같이 밝혔다.
"창조경제의 토대를 마련하려면 교육혁신이 필요하다.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행복교육, 창의교육을 실현해야 한다. 모든 학생이 꿈과 끼에 맞는 교육을 받아 각자의 소질과 능력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 재능이 사회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그런데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다른 때보다 더욱 공허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비단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 때문만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 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유가 보다 결정적이다. 마치 다른 세상에서 살다 온 사람처럼 괴리감이 큰 발언만을 풀어놓다 보니 이제껏 그래왔듯 현실감이란 측면에서 매우 동떨어진 느낌이다. 툭하면 약속을 파기하던 행태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다고 하여 과연 달라질까 싶다.
아울러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경남교육청에 지원하던 무상급식 예산을 끊겠다고 선언했다. 홍 지사의 진짜 꿍꿍이가 무언지 나로선 알 방도가 없다. 다만, 다른 사안도 아닌, 아이들의 밥을 볼모 삼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는 행위는 그 어떠한 합리적 이유를 내세운다 해도 결코 바람직스러운 행태는 아닐 테다.
아이들의 삶이 불행해진 데엔 바로 누군가처럼 금과옥조로 여겨야 할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또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이들마저 이용하려드는 정치인들이 득세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 즉 여전히 후진적인 정치적 지형으로부터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세상은 오죽할까. 아이들의 삶을 통해 어른들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른들의 불행이 아이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의미일 테니, 이는 결국 세계 최저 출산율이라는 기현상으로 이어지며 암울한 대한민국의 미래 모습을 그려나가고 있는 현재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아 더욱 씁쓸하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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