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빠름'과 '자극'을 요구하는 온라인 소통 시대

새 날 2014. 4. 14. 10:05
반응형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하겠지' 방관자 효과

 

주위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목격자가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되어 도와주지 않고 방관하게 된다는 심리적 현상을 '방관자 효과'라 일컫는다.  방관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여러 현상들 중 특히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도와주지 않을 때 흔히 사용되는 표현이다.

 

키티 제노비스

 

'제노비스 신드롬'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1964년 3월 13일 새벽 미국 뉴욕의 한 주택가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강도에게 무참히 살해될 때까지 38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인 현장을 자기 집 창가에서 지켜보면서도 정작 어느 누구 하나 나서서 그녀를 도와주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던 사건에서 비롯됐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구경꾼 효과'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왜 발생하는 걸까?  심리학 쪽에선 이른바 '책임분산' 때문이라 보고 있다.  지켜보는 사람이 많으니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도움을 주겠거니 여기는 심리적 요인 탓이다.  일반적으로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도와줄 확률은 낮아지고, 도와주려는 행동으로 옮겨지는 데에도 시간이 더 걸리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사건

 

최근 뉴질랜드에서 벌어졌던 한 사건은 '방관자 효과'의 전형이다.  뉴질랜드 헤럴드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일 뉴질랜드의 북섬에 위치한 오클랜드 항구에 시신 한 구가 떴는데,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선뜻 나선 사람은 없고 대부분 못 본 척 지나치거나 그도 아니면 시신을 보며 농담을 주고 받고 휴대폰을 꺼내 사진찍기에만 몰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이 비단 방관자 효과 때문만인 걸까?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외면하는 현상은 최근 단순히 방관자 효과만으로 그치지 않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의 발달, 특히 모바일, 과 SNS 매체의 성장으로 온라인 소통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 뭐든 자극이 되고 관심을 끌 만한 대상은 비단 기자와 같은 전문 직업인이 아니더라도 이제 일반인들조차에게도 콘텐츠로서의 확실한 먹잇감이 돼버렸다.

 

오프라인 상에서의 소통보다 외려 온라인 상에서의 소통이 훨씬 많아진 요즘, 과히 소통 과잉이라 할 만큼 SNS 매체가 우리 사회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는데, 온라인 공간에서 좀 더 인기를 끌거나 관심을 모으기 위해선 더욱 자극적인 소재와 대상이 필요해졌고, 이의 선점이라는 절체절명(?)의 지상과제 앞에선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개념 따위는 철저히 외면당하기 일쑤다. 

 

자극을 요구하는 사회.. 그 결과는?

 

간혹 사진기자들이 위험에 처해 죽어가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고 직업 정신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이를 방관한 채 사진찍기에만 여념이 없어 사회적 질타와 뭇매를 맞곤 했다.  그렇지만 이들에겐 엄연히 전문 직업인이라는 타이틀이 매겨져있어 혹여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수긍되는 측면이 있다.  문제는 온라인 소통의 과잉이 마치 모든 시민을 전문 직업인이라도 되는 양 만들어가고 있다는 데에 있다.

 

바다 위에 떠있는 사람을 보며 이미 죽었든 살아있든 관계없이 이를 구하려거나 신고하기보다는 우선 사진부터 찍고 보자는 심리가 바로 그에 해당한다.  머릿속에는 온통 사람들에게 얼마나 흥미를 끌 만한 요소인가만이 그득할 뿐 윤리적인 고뇌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사실상 별로 없다. 



그렇다면 뉴질랜드가 아닌, 우리에게도 같은 상황이 놓여지게 된다면 과연 어땠을까?  우리라고 달랐을까?  결코 그렇지 않았을 테다.  아마도 주위에 있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타인의 위급상황에서 측은지심을 꺼내들기보다는 휴대폰을 가장 먼저 꺼내들어 영상으로 담기 바빴으리라는 게 보다 솔직한 속내일 듯싶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 사회에서 혐오와 극도의 일탈 행위로 인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일베'의 탄생은 어쩌면 숙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자극적인 글을 써야만 회원등급이 높아지는 일베 시스템은 타인으로부터 관심을 끌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SNS에서의 심리가 그대로 투영된, 바로 현대인의 자화상이 좀 더 강화된 형태로 발현된 모습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빠름'과 '자극'에 잠식되어가는 사회

 

남의 시선에 민감한 우리의 정서는 페이스북 '좋아요'에 집착해가며 더욱 자극적이고 흥미를 끌만한 요소들을 찾아 헤매고 다닌다.  지난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한 20대 여성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알몸으로 도심을 1km 이상 활보하였는데,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어느 누구도 이를 도와주거나 몸을 가려주려 한 시민이 없었고, 오히려 이 여성을 쫓아다니며 이미지와 동영상 찍기에 여념이 없었던 사건이 있었다.
 

어려움에 처한 그녀를 도와주기는커녕 휴대폰을 먼저 꺼내들고 이를 촬영하기 바쁜 현대인들, 이 상황을 목격한 순간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흥미거리라는 판단 하에 이를 어떻게 요리하여 SNS 친구들에게 알릴까를 고민하는 일이 그들에게 있어 순간 가장 최선의 일이 돼버린 결과일 테다. 

 

더욱 안타까웠던 건 동영상과 이미지가 SNS를 타고 삽시간에 전파되는 동안 그녀의 신상이 모두 털리는 상황까지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사건 자체에 대한 심각한 인식보다는 어떻게 하면 가볍고 자극적인 흥미를 끌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에 골몰하는 현대인들의 잔인한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이젠 방관자 효과에 자극적인 소재거리를 찾는 개인들의 심리가 더해져 윤리적 문제는 나 몰라라 도외시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유사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늘 목격해야 할 광경이 될지도 모른다.  타인의 어려운 처지를 도와주기는커녕 오직 자신의 인정받기 게임에 활용할 생각만 머리에 그득할 만큼 우리 사회가 점차 차가워져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우려스럽다.  오클랜드에서의 사건이 비록 우리나라에서의 일은 아니지만, 때문에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묵직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만약 위와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할 텐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