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국민 우롱한 '회장님'의 일당 5억 황제노역

새 날 2014. 3. 2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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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 원의 세금 등을 내지 않고 해외로 도피했던 대주그룹 허재호 회장이 그의 대가로 부과된 254억 원의 벌금 납부 대신 일당 5억 원의 이른바 '황제 노역'을 택했다.  뉴질랜드에 도주해 있는 동안 그는 호화생활과 함께 기업활동을 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세계일보

 

그럼 허 회장의 '황제 노역' 결정으로 인해 화제가 된, 벌금 및 노역과의 관계에 대해 한 번 살펴보자.  현행 형법은 벌금을 납입하지 아니한 자에게 1일 이상 최대 3년 이하의 기간 동안 노역장 유치를 인정하고 있다.  3년 범위 안에서 적절한 수감 일수를 정하고 벌금액을 그 일수로 나눠 일당을 산정하게 되는 방식이다.  당연히 일당을 높일수록 구치소 수감 기간이 줄어들게 되어있는 구조다.  하지만 문제는 벌금 액수에 따른 노역 일당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지 않아 법관의 재량에 따라 일당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는 점이다. 

 

형법 제69조(벌금과 과료) ① 벌금과 과료는 판결확정일로부터 30일내에 납입하여야 한다. 단, 벌금을 선고할 때에는 동시에 그 금액을 완납할 때까지 노역장에 유치할 것을 명할 수 있다.
②벌금을 납입하지 아니한 자는 1일 이상 3년 이하, 과료를 납입하지 아니한 자는 1일 이상 30일 미만의 기간 노역장에 유치하여 작업에 복무하게 한다.

형법 제70조(노역장유치) 벌금 또는 과료를 선고할 때에는 납입하지 아니하는 경우의 유치기간을 정하여 동시에 선고하여야 한다.

 

허 회장의 경우 애초 1심에서 벌금 508억 원을 선고받았으며, 이를 납부하지 않을 시 일당을 2억5천만 원으로 계산하여 총 203일간의 노역을 결정한 바 있다(물론 일당 2억 5천만원이란 금액도 터무니 없는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상급심에선 벌금을 그의 절반인 254억 원으로 대폭 삭감해주었고, 반대로 일당을 5억 원으로 높여 고작 50일간의 노역만을 부과한 것이다.  그에게 책정된 노역 일당 5억 원은 사법 사상 초유의 금액으로서 일반인의 1만배에 해당한다.  법의 맹점을 제대로 역이용한 셈이다.

 

그렇다면 일당 5억 원이란 액수는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허 회장에게 부과된 벌금 254억 원을 만약 일반인의 노역 일당 5만 원으로 계산할 경우 날짜로는 508,000일, 햇수로는 1,391년이란 기간동안 유치장 안에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되어야 하는,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허 회장의 경우 고작 50일간의 유치장 노역만으로 모든 게 해결된다.  서민들에겐 감히 범접하기조차 어렵게 와 닿는, 5억 원이란 돈의 가치를 단 번에 우습게 만들어버린 재판부의 능력은 정말로 놀랍다 못해 탁월할 정도다.



좀 더 현실적인 수치로 접근해볼까?  5억 원이란 돈은 연봉 5천만 원의 직장인이 10년을 한 푼 안 쓰고 꼬박 모아야 만져볼까 말까한 액수다.  허 회장은 이를 단 하루동안의 노역만으로 갚을 수 있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특혜가 아닐 수 없다.  조세 형평이니 조세 정의 따위의 말들은 모두 허튼 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재벌회장님들이 죄를 지어 법정에 불려갈 때면 한결 같이 멀쩡했던 이들조차 너도 나도 갑자기 초췌한 병자의 모습으로 돌변, 휠체어에 앉아 수액을 꽂은 채 출입하는 모습이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의 흔하디 흔했던 일반적인 행태다.  판결 역시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한 채 면죄부를 주거나 그도 아니면 잠깐동안의 형기를 마치고 대부분 사면되어 풀려나기 일쑤였다.  그 기저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어오고 있는 유전무죄라는 불문율이 짙게 깔려있는 셈이다. 

 

반대로 서민들을 대하는 정부의 행태는 어떻던가?  박근혜정부 들어서며 부족한 세수 확충을 명분으로 온갖 명목의 범칙금과 벌금 등을 남발해오고 있다.  민주당 조경태 의원에 따르면 올해 예산에 반영된 벌금 관련 세입만 20조 8천억 원에 달한단다.  지난해에도 무리한 단속으로 인해 서민들의 원성이 자자했건만, 그에 비해 무려 3조 원이나 증가한 수치다.  일례로 교통법규 위반 범칙금 및 과태료의 경우 전년에 비해 836억 원이나 더 걷혔다. (횡단보도 정지선 위반 단속이 곱지 않은 이유 포스팅 참조)

 

이렇듯 서민들에겐 교통 범칙금을 비롯 온갖 종류의 벌금과 범칙금을 마구 부과하며 악착 같이 받아내더니, 정작 부자들에겐 느슨한 법 적용을 통해 얼마든 빠져나갈 여지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세수 부족분을 부자 증세를 통해 메우려하기 보단 오롯이 가뜩이나 가벼운, 만만한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털어내고 있는 셈이다.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정도다.

 

납세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일반 서민들에 대해선 쥐 잡듯 고혈을 짜내고 있고, 정작 거액의 납세나 벌금을 회피하고 있는 파렴치한 이들에겐 온갖 특혜를 제공하고 있는, 이 불편부당한 행태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는 결국 입으로는 서민들에게 법과 원칙을 준수하라며 매일 같이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은 지키지 않으며 온갖 특혜란 특혜는 다 누리고 있는 형국 아니겠는가. 

 

대기업의 총수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었던가?  국민에게 부여된 의무 따위는 무시한 채 그저 권리만 찾아먹으며 특별히 보호를 받아야 할 계층이라도 된다던가?  도대체 허 회장이란 이는 어떤 인물이기에 이토록 파렴치한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도 일당이 5억 원이나 되는 특혜를 부여받을 수 있는 걸까? 

 

주체하기 힘들 만큼의 엄청난 재산을 보유한 재벌 총수가 국가에 내야 할 벌금이 아까워 대신 노역을 결정한 채 스스로 구치소로 걸어들어가는 모양새도 실은 우습지만, 그보다는 법원이 결정한 일당 5억 원이란 거액은 누구든 벌금 납부 대신 노역 선택에 대해 한 번쯤 고민에 빠뜨리게 할 만큼 무척이나 달달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이 외려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당장이라도 해당 법을 개정하여 노역 일당의 상한선을 제한할 필요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애초 일반인들의 상식 수준에선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일당을 책정하여 벌금 납부 회피의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한 재판부의 판결이나 해외에서 호화 도피생활을 일삼을 만큼 여전히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벌금 납부를 꺼린 채 대신 일당 5억 원이라는 '황제 노역'을 택한 허 회장 모두 국민들을 철저하게 농락하고 있는 셈 아니면 과연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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