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김용판 무죄, 부정선거 '셀프면죄' 위한 무리수

새 날 2014. 2. 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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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판 무죄 선고

 

지난해 8월 16일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선서를 거부한 바 있던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같은해 10월 15일 국회 안행위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도 선서를 거부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한때 경찰 조직내 2인자였으며 정계 진출마저 점처졌던 그였기에 이러한 그의 돌출 행동의 배경엔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건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의 두둑한 배짱이 엿보이기까지 했다.  그랬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를 축소 은폐하고, 불법선거운동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6일 무죄 선고를 받은 것이다. 

 

우린 그보다 앞서 지난 18대 대선이 치러졌던 2012년 12월의 일을 복기해 봐야 할 듯싶다.  12월 16일 밤 11시, 3차 대선토론이 있던 날이자 대통령 선거 투표를 사흘 앞둔 날, 경찰은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긴급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 수서경찰서가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분석한 결과 10월 1일부터 12월 13일까지 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에 대한 비방이나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글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참담한 결과는 이미 예견됐던 각본일 뿐이다

 

경찰의 긴급 수사결과 발표는 야당의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제기에 찬물을 끼얹었음은 물론이거니와 3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 판도에도 적잖은 파장을 불러오게 된다.  결국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12월 19일 박근혜 후보가 51.6%의 득표율로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48%를 득표한 문재인 후보에 불과 3%p 앞섰던 상황이다.



물론 직접 두 눈과 귀로 이를 확인하며 참담함을 느껴야 했지만, 김용판의 무죄는 일찌감치 예견됐던 사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받을 때마다 해당 사건은 이미 사법부로 넘어간 상황이니 사법부의 판단을 지켜보면 될 것이고, 우린 민생에나 올인하자며 위기 국면을 교묘히 회피해 왔다.  그러나 뒤로는 오늘날과 같은 결과 도출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해 왔던 셈이다. 

 

코드가 맞지 않는다며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찍어내기한 바 있고, 소신 수사 의지를 밝힌 윤석열 차장 등을 교체하는 무리수를 둬가며 검찰의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에 대한 무력화를 시도해 왔다.  결국 사법부의 판단을 지켜보자는 대통령의 발언은 오늘날의 결과를 염두에 둔 지극히 계산적인 언급이었던 셈이다. 

 

부정선거 의혹 불식 통해 정통성 스스로 부여하려는 정권

 

재판부는 권은희 전 과장을 제외한, 김 전 청장을 비롯 여타의 경찰관들 주장만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다른 경찰관들의 진술과 배치된다며 정작 내부 고발자인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진술을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경찰관들의 사전 입맞추기 의혹에 대해선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며 일축하고, 쉽게 단정짓는 만용마저 부렸다.  아울러 수사가 부실한 상황에서도 경찰이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서두른 까닭에 대한 판단 등은 애써 배제한 채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는 이상한 소회만을 밝히고 있다.  

 

이게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재판부는 수사에 대한 축소 은폐 지시 여부에 관한 한 경찰 내부 진술에만 의지한 채 사건 전개 과정에서 드러난 지극히 상식적인 의혹이나 쟁점들은 애써 무시한 듯 보인다.  당시 수사 진척 상황을 놓고 보건대,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 내용에 과장이나 왜곡 등은 없었는지와 선거법 위반의 고의성에 관한 정황 근거 따위들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는 얘기밖에 더 되겠는가 싶다.

 

상식을 벗어난 이번 판결은 대통령이 자주 사용해오던 화법 중 하나인 '비정상의 정상화'에도 상당 부분 배치된다.  결국 이 또한 부정선거 의혹으로 발목 잡혀 있는 현 정권이 정통성을 스스로 부여하려는 '셀프 면죄'의 조급한 속내로부터 비롯된 무리수 아닐까 싶다.  그 첫 단추로 이번 재판을 선택한 모양이다.  뭐든 첫 단추가 어려운 법이거늘 이미 이를 달성했으니 이후의 일들 또한 모두 일사천리?  과연 그렇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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