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국회선진화법 폐기 압박, '날치기의 추억' 꿈꾸는가

새 날 2013. 9. 2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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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원내 복귀를 선언함과 동시에 강력한 원내 투쟁을 예고하고 나서자 새누리당이 겉으로는 태연한 척 반색하는 모양새지만, 한편으로는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벌써부터 기싸움에 돌입한 양상이다.  물론 치밀한 계산이 있은 뒤겠지만 뜬금없이 국회선진화법 수정론을 화두로 꺼내들었다. 

 

새누리당, 국회 선진화법 개정 경고 나서

 

23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에서 최경환 원내대표는 "국회 선진화법으로 인해 야당의 협력 없이는 법안 처리를 포함해 국회 운영에서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야당이 상생의 선진적 정치문화 확립을 위해 도입된 국회 선진화법을 악용한다면 결국 그 피해 및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것이며, 그 법도 수명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하며 국회 선진화법의 개정 내지 폐기를 경고하고 나섰다.

 

 

그런데 이러한 새누리당의 움직임은 3자회담 결렬 다음날인 지난 17일 박근혜 대통령의 민주당을 향한 '국민적 저항' 작심 발언과 궤를 같이하는 모양새다. 

 

당시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선진화법을 제정하고, 그것을 극단적으로 활용해서 민생의 발목을 잡아서는 결코 안 될 것"이라며 장외투쟁 중이던 민주당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퍼부어댔다.  즉 국회 선진화법 개정 내지 폐기에 대한 명분 축적을 위해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운을 뗀 것이고, 뒤를 받히고 있던 새누리당이 일제히 지원사격을 하는 모양새로 읽히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에도 정부와 새누리당이 정부조직개편안을 자신의 의지대로 관철시키지 못하자 국회 선진화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바 있듯 이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익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고 여길 시 여지없이 이의 개정이나 폐기를 들먹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통과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듯 여권 일각에서는 국회 선진화법을 놓고 벌써부터 소수독재라느니 소수의 횡포라는 거친 언사까지 나돌고 있던 찰나, 때마침 터져준 박 대통령의 한 마디는 이들을 일사분란하게 하나로 모으며, 법 개정 공론화 시도의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다.

 

국회 선진화법이란?

 

그렇다면 국회 선진화법은 과연 어떤 취지로 누가 주도하여 만들어졌을까?  국회 선진화법은 18대 국회가 보여줬던 폭력과 날치기 행태의 오명을 씻고 상생정치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자는 취지로 지난해 5월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근혜 대선후보의 적극적인 주도 하에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이다.  다수당의 일방적인 국회 운영 및 폭력 등의 횡포를 막기 위한 국회법 개정안을 의미한다.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4.11총선이 끝난 뒤인 25일 "18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다시 한 번 국회 본 회의를 소집해 국회 선진화법안을 꼭 처리해야 한다. 총선 전 여야가 합의한 것이며 국민에게 약속 드린 것이기 때문에 이번에 처리가 꼭 됐으면 한다" 며 국회 선진화법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 후보였을 당시엔 해당 법을 직접 주도하여 통과시켜 놓더니, 대통령이 된 후엔 걸리적거리니 이를 폐기하자는 뜻?  화장실 들어갈 때의 마음과 나올 때의 마음이 달라지는 원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셈이다.

 

ⓒ세계일보

 

국회 선진화법에 따르면 국회의장의 본회의 직권상정 요건이 천재지변과 전시 사변 등의 국가비상사태, 교섭단체 대표 합의시 등으로 엄격하게 제한돼 있다.  여야 간 이견이 있는 안건에 대해서는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할 수 있도록 했으며, 90일간 활동을 보장하고 있다.  아울러 쟁점법안의 신속처리는 재적의원이나 재적위원(상임위) 60%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직권상정과 날치기 같은 파행을 원천 차단한 셈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날치기의 추억' 꿈꾸는가

 

야당의 협력 없이는 법안 처리를 포함해 국회 운영에서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서글픈 현실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니는 여당의 원내대표, 그렇다면 국회 운영과 법안 처리를 야당의 협력과 협조를 구하지 않고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말인지 당췌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혹여 직권상정과 날치기를 다시 꿈꾸기라도 하겠다는 뜻인가?

 

그렇다.  국회 운영과 법안을 야당의 협력과 협조 없이 처리할 수 없어 답답해 하는 것은 과거의 자신들 주특기였던 오만과 독선의 상징 '날치기'를 그리워하며 꿈꾸고 있노라는 것을 국민들 앞에 공개적으로 신앙고백하고 있는 것과 진배 없는 일이다.  도대체 국민들의 수준을 얼마나 얕보고 있으면 이렇듯 공개적으로 대놓고 떠들어댈 수 있는 걸까.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은 국회 파행의 책임 대부분이 본인 탓임을 부정한 채 오히려 야당에게 '국민적 저항' 운운하며 독설을 퍼붓고 있고,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공개적으로 '날치기의 추억'을 꿈꾸고 있다.  이쯤되면 이 나라엔 온통 오만과 독선 그리고 불통의 기운만이 가득 들어차 있는 느낌이다.  배려나 소통, 양보와 같은 개념들은 도무지 찾아볼래야 찾을 수가 없다.

 

ⓒ경향신문

 

신뢰의 정치를 선보이겠다던 박 대통령, 대통령이 되기 전의 마음과 된 후의 마음이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손바닥 뒤집히듯 이처럼 쉽게 바뀌어도 되는 건가?  작금의 국회 파행을 전부 야당 탓으로 돌리며, 자신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인 양 애써 감추고 있지만, 결국 그 원인 제공자는 박 대통령 자신이다.  정권의 정통성 시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이를 스스로 해결하려들지 않는 이상, 아울러 불통과 오만으로 가득 찬 비상식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이상, 야권의 협력을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민생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과연 박수가 혼자 친다고 하여 소리가 날 수 있는 것일까?

 

국회 선진화법은 지난날 우리 국회의 자화상이었던 폭력과 날치기에 대한 처절한 반성의 의미로 내놓은 여야 합작품이다.  여권은 민생 운운하며 과거의 못된 버릇들을 버리지 못하고 자꾸만 시계를 과거로 돌리려고만 한다.  국회 선진화법은 말 그대로 후진적인 우리의 정치를 한 단계 올려보자는 취지이거늘, 만약 이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개정하게 된다면 국회 선진화법이 아닌, 국회 후진화법과 다름 없음이리라.  시대를 역행하는 셈이다.  여권은 진정 이런 형태를 바라고 있는가?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국회 선진화법의 개정이나 폐기를 논함에 앞서 야당을 진정한 국정 파트너로 삼고 이들과 민주정치의 기본 원리인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하려는 의지를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그대들이 말하는 상식적이며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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