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추석연휴 첫날부터 응급실에 실려간 사연

새 날 2013. 9. 20.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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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추석연휴 시작 이틀전부터 배가 더부룩 답답했다.  전날 마눌님과 오손도손 막걸리 한 잔을 걸치고 잔 터라 당연히 그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생각했고, 이는 평소 하루 정도 지나면 자연스레 없어지는 증상이었기에 크게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다.

 

허나 그 다음날도 배의 더부룩 증상은 큰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그러니까 추석연휴 전날, 난 여느때와 같이 운동을 마친 뒤 샤워를 끝내고 노곤함을 느끼며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잠결에 몸 어딘가가 몹시 불편하였고, 이 느낌은 점차 두렷두렷 살아나며 갈수록 또렷하게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온 신경이 그쪽을 향하고 있었다.  결국 잠을 깨야 했다.  대략 새벽 두 세시쯤 된 듯싶다.  배의 더부룩 답답함이 어느샌가 점차 고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여 바늘로 콕콕 찌르거나 혹은 쥐어짜는 것과 같이 매우 극심한 고통은 아니었다.  그냥 배꼽 주위로부터 시작된 묵직함이 일정 수준의 고통으로 변해 쭉 이어지는 그러한 상황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녀석은 쉼도 없다.  고통이 이어지며 내게 절대로 잠을 이룰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참 지독한 녀석이랄 수밖에.

 

이건 너무도 괴로운 거다.  천장을 보며 똑바로 누워 있어도, 옆으로 누워봐도 고통은 여전했다.  서 있어 보기도 했다.  물론 앉아 있기도 해봤다.  하지만 이 고통이란 녀석, 절대 지친 기색 없이 한 번도 쉬지 않고 나의 몸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곁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마눌님을 깨워볼까도 생각했지만, 곧 낫겠지 싶어 그냥 두기로 했다.  문득 수많은 생각들이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혹시 맹장염은 아닐까?  아니면 대장암에라도 걸린 건 아닐까?  만일 이 고통이 막다른 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라면?  고통 속에서 잠이 오지 않는 그 긴 시간동안 오만가지 잡 생각에 몸은 지쳐 파김치가 되어갔다.  만일 이대로 먼길을 가게 된다면 우리 아이들과 집사람은 어쩌지?  또한 연로하신 우리 부모님은...

 

어느덧 동이 트기 시작했는가 보다.  점차 희부옇게 창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이 무렵이면 대략 5시는 넘겼을 듯..  이젠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곁에서 곤히 잠든 마눌님을 흔들어 깨웠다. 

 

"나, 배가 몹시 아파" 

 

이 한 마디에 마눌님은 벌떡 일어나 부엌에서 매실 진액을 탄 물과 알약 몇 개를 가져왔다.  매실물은 한 모금만 마시고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몸이 받아들이질 않는다.  약만 먹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차도는 전혀 없었다.  식은땀과 함께 두려움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일단 병원을 찾는 게 급선무인 듯했다.

 

과거 장염 때문에 입원한 경험이 있는 아버지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빨리 병원으로 가봐야 한다고 재촉하신다.  곁에 계시던 어머님도 거드셨다.  연휴가 시작되어 어차피 응급실에 가야 할 상황, 승용차를 이용하려고 했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았다.  그렇다고 걸어서 움직이기엔 고통이 너무 심했다.

 

 

아내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119였다.  곧 도착한 119 구급차, 이를 환자가 되어 타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지만, 응급실에 실려가는 상황도 난생 처음 겪는 일이다.  구급차는 매우 빠른 속도로 거리를 내달렸다.  얼마후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구급차, 원무과에 나를 인계 후 홀연히 떠난다.  너무도 고마웠다.

 

병원에선 나를 응급실의 한 귀퉁이 침대에 눕혀놓고 혈압과 체온, 맥박을 재고, 채혈 그리고 소변검사까지, 모든 게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그리고 당직의사가 와서 증상을 상세히 묻고선 잠시 기다리란다.  얼마후 방사선과로 데려가 상반신 엑스레이를 찍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고통은 여전했다.  답답했다.  일단 고통을 가라앉힐 순 없나?  대략의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그래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야 할 텐데, 현재로선 그마저 기다리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난 스르르 잠이 들고 만다.  이는 고통이 사라졌다는 의미?  그랬다.  깜짝 놀라 확인해 보니 분명 고통이 많이 완화되어 있었다.  지속되었던 고통이 완전치는 않았지만 어찌되었든 상당부분 가라앉은 것임에 틀림 없었다.  때마침 당직의사가 검사 결과를 들고 나타난다. 

 

"다른 부분은 모두 정상이고 약간의 염증이 발견되었습니다. 장염이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그랬다.  장염이란다.  얼마나 다행인가.  게다가 정도가 심하지 않아 입원까지도 필요 없단다. 

 

'아 부처님 하느님 알라신이시여, 정말 고맙습니다' 

 

일단 입원하게 되면, 나보다 주변사람들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일, 가뜩이나 추석연휴의 시작이라 음식 장만 등 할 일이 태산 같은데 나 하나 때문에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면 이 또한 큰 낭패이거늘, 천만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추석연휴에 장염에 걸린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혹독한 대가가 따르는 법, 추석 당일에도 난 한 상 가득 차려진 추석 음식을 뒤로 한 채 마눌님이 정성껏 끓여준 죽으로 연명해야만 했다.  명절 때면 배가 터지도록 먹기 바빴던 기름진 음식과 각종 과일들이 모두 그림의 떡으로 다가온다.  평상시 명절 땐 이런 음식들이 지겹고 별 감흥이 없었는데, 아픈 상황이 되니 왜 그리도 먹고 싶고, 그리운 건지...

 

아울러 아플 때 마눌님을 비롯한 온 가족들이 걱정하며 챙겨주는 모습, 솔직히 너무 고마웠다.  가족의 존재감, 바로 이럴 때 느낄 수 있다고 하더니 사실이었는가 보다. 

 

장염으로부터의 완전한 회복을 위해 여전히 난 약을 먹어야 한다.  그래도 오늘부터는 아마 일반 음식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기다려라, 우리집 추석음식 잔반은 내가 모두 처리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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