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폭력 및 남성성에 대한 저항 '채식주의자'

새 날 2018. 8. 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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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 영혜는 평범한 부부다. 그녀는 특별히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여성이다. 내가 그녀를 선택한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주변으로부터 눈길을 끌 만한 출중한 외모는 절대로 아니면서도 그렇다고 하여 아예 못나지도 않은, 나의 취향을 존중해주는 등 여러모로 무난했기에 나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결혼 생활 역시 내가 기대하던 바와 같이 평범함의 연속이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영혜는 다짜고짜 꿈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앞으로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물론 결코 말로만 그런 게 아니었다. 냉장고에 보관돼 있던 각종 고기며 계란 등 육식과 관련한 값비싼 음식물들은, 특별히 장모님이 귀한 것이라고 귀띔하며 보내온 음식물까지 죄다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흡사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잠도 거의 자지 않는 듯싶었다. 내가 온갖 방법을 동원, 아내를 설득해 보았지만 아내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 뒤로 그녀의 몸뚱아리는 눈에 띌 정도로 수척해져갔다.


그렇다고 하여 정신 건강에 특별히 문제가 발생한 것 같지는 않다. 생활은 정상적으로 하고 있으며, 오직 그 이상한 꿈 이야기나 육식과 관련한 대목에서만 이상 증세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인들과의 공식 식사 모임에서조차 그녀의 육식에 대한 거부 의사는 확고했다. 정색을 하며 '전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라고 의사를 또박또박 밝히는 그녀의 뒤에서는 설사 이상한 사람이라며 주변인들이 수군대거나 비아냥거릴지는 몰라도 짐짓 그녀 앞에서만은 의사를 존중해주는 듯한 분위기다. 뭐랄까. 속내는 전혀 그렇지 않으나 점잖은 사람들 앞이니 겉으로는 왠지 고상을 떨어야 할 것 같은, 그러한 느낌이다.



이러한 그녀의 이상 행동을 더 이상 참기 어려웠던 나는 처가댁에 하소연, 무언가 도움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처가 식구 모두가 나서도 아내의 행동에는 작은 변화조차 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처형댁이 집을 새로 장만한 것을 계기로 집들이 겸 아내를 설득할 겸 처가 가족 모임을 갖기로 했다. 온가족이 모처럼 함께 모여 식사를 즐겼고, 마침내 아내의 육식 거부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거리로 등장했다. 처형, 처남, 장인, 장모 할 것 없이 모두들 아내에 대한 걱정 보따리를 한 뭉텅이씩 풀어놓기 사작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이냐'는 질문으로부터 촉발된 그녀를 향한 질책과 힐난 등 집중 포화는 결국 장인의 완력까지 동원시키고 마는데...


이 책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총 3개의 중편소설이 실려 있다. 각기 독립된 작품으로 볼 수 있지만 내용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이들이 하나로 합쳐질 때에야 비로소 장편소설 한 편이 완성되는 느낌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끔찍한 유년시절과 어린시절을 겪어야 했던 영혜가 그로부터 비롯된 듯한 정신 이상 증세를 드러내게 되고, 그녀를 매개로 결국 가족 모두가 미증유의 고통을 겪게 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영혜의 행동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까?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무의식이 그녀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게 하고 행동과 정서를 규정한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할까? 가부장적인 성향이 강한 데다가 다혈질적이며 폭력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던 아버지는 사실상 어릴 적 그녀의 모든 걸 지배해 왔다. 특히 영혜의 다리를 물었던 개를 아버지가 오토바이에 묶어 산 채로 끌고 다니다가 피를 토해 죽게 만들고 그 고기로 집에서 잔치를 벌였던 끔찍한 사건은 그 뒤로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녀의 뇌리에 또렷이 각인되게 했다.


영혜는 9살 때 산에서 길을 잃었을 당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노라는 속내를 언니인 인혜에게 넌지시 비쳤을 정도로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 했다. 인혜는 맏딸이라는 생득적 환경 덕분에 어쩌면 영혜가 겪었던 것들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탄생 순서로 얻은 혜택조차 결과적으로는 그들 가족의 과거를 촘촘이 옭아매고 있는 질곡에 의해 끔찍한 방식으로 점차 소멸되어가지만 말이다.


소설 속 남성들은 하나 같이 문제적 인간들로 묘사돼 있다. 영혜의 채식주의의 이면에는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행태와 폭력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혜의 남동생은 그러한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영혜를 오늘날에 이르게 한 가해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을 양산할 개연성이 농후하다. 영혜의 남편이 영혜를 선택했던 이유는 서두에서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찌질함 그 자체다. 그저 그런 무난한 여자를 아내로 선택, 자신의 틀 안에 가둬놓은 채 정작 본인은 처형인 영혜의 언니 인혜를 은밀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음욕을 품어왔다. 그는 영혜가 채식주의자를 선언한 뒤 그녀를 보듬어주기보다는 이제 무난함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 자신의 처지를 개탄하면서 여지 없이 그녀를 내차고 만다.



인혜의 남편 역시 많이 특별하다. 그는 예술을 하는 사람인 탓에 주로 그녀가 돈벌이를 담당해야 했으나 의사와 교육자 집안이라는 이유로 영혜의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무난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8년 동안의 결혼 생활은 서로를 제대로 실망시켰다. 아니 체념과 좌절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하다. 그러는 사이 인혜의 남편은 채식주의자임을 선언하고 이상 행동을 벌이던 영혜애 대해, 영혜의 남편이 인혜를 마음 속에 품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을 품게 됐다. 육식을 피하고 점차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져가는 영혜의 엉덩이에는 몽고반점이 남아 있는데, 인혜 남편은 특이하게도 이 몽고반점에 천착하고 있었다. 영혜처럼 폭력성을 버리고 순수함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의 발현이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남성들의 흔하디흔한 욕망의 표출일까?


폭력과 육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식물처럼 영양소를 자가발전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반드시 다른 생물을 살생해야만 한다. 아울러 살생에는 어떤 식으로든 폭력이 수반된다. 때문에 아버지가 개를 향해 행사했던 폭력은 곧 고기를 먹지 않겠다며 뻐팅기는 영혜의 뺨 위로 작열하던 무지막지한 손바닥의 그것이었다. 영혜의 잠재의식을 지배하며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상처로 각인된 아버지의 폭력은 그녀로 하여금 적어도 영양소 공급만큼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식물이 되고픈 열망에 취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알프레드 아들러가 주장한 것처럼 현재의 행위가 목적성을 띤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면 더 없이 좋을 법한데, 안타깝게도 언니인 인혜가 자꾸만 과거를 되짚어가며 어떤 지점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아울러 과연 현실을 되돌릴 수는 있는 것인지를 무수하게 고민하고 번뇌해 봐도 딱히 정답을 찾을 수 없었던 것과 같이 결국 성장 환경 등의 과거가 워낙 강하게 원인으로 작용, 결코 손을 쓸 수 없도록 삶의 굴레로 다가오게 만든 듯싶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폭력 그리고 지배, 위계 등으로 상징되고 점철돼온 남성성에 대한 강한 저항 정신을 드러낸 이야기다.



저자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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