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롱패딩 열풍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

새 날 2017. 11. 2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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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백화점에서 평창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출시한 이른바 '평창 롱패딩'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지난 겨울 유행을 타기 시작한 롱패딩 패션이 올 겨울 들어 대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평창 올림픽 기념 상품인 '평창 롱패딩'이 대중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품귀 현상마저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롱패딩의 유행은 패션 그 자체로는 그다지 새로운 현상이라고 볼 수 없다. 그동안 우리 주변에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로 스포츠 선수들이나 감독 그리고 주변의 체육관 사범 등이 겨울철이면 즐겨 입는 의상이 다름 아닌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이 롱패딩 패션이다. 근래엔 유행의 첨병인 인기 연예인들마저 덩달아 해당 패션에 동참하고 나섰다.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롱패딩의 유행은 사실상 인기 연예인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찍은 CF와 공항 패션 등이 TV 전파를 타면서 어느덧 중고생들에게까지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두툼한 패딩 재질의 옷감이 무릎 아래까지 완전히 덮어 살을 에는 한반도의 겨울 추위와 시베리아 대륙으로부터 불어오는 찬 바람을 비교적 완벽하게 막아주는 실용적인 측면도 인기 요인 가운데 하나이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아무리 유행이 좋고 중요하다지만 무언가에 꽂히면 물불 가리지 않고 우루루 덤벼드는 냄비 같은 우리네의 속성은 이번에도 그 실체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온라인상에서는 평창 롱패딩 제품이 일찌감치 품절됐으며,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이를 사려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수백 미터씩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공급 물량에 비해 이를 구입하려는 사람이 많다 보니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먼저 구입하기 위해 뒤엉키는 볼썽사나운 상황이 연출됐으며, 급기야 무질서한 다툼을 말리기 위해 경찰까지 출동하는 소동이 빚어지고 말았다. 롱패딩, 그게 도대체 뭐라고 이렇듯 큰 혼란을 야기해야 하는 것인지 그저 의아할 따름이다.


뿐만 아니다. 롱패딩의 유행이 일반인을 넘어 중고생들에게까지 확산되는 바람에 새로운 갈등이 유발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롱패딩의 가격대는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은 브랜드의 롱패딩은 대체로 비싼 축에 속한다. 심지어 100만 원을 넘는 초고가 제품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부모들은 롱패딩만을 고집하는 자녀에게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채널A 영상 캡처


이는 수 년 전 각급 학교에 불어닥친 때 아닌 고가 패딩 열풍으로 인해 이른바 '등골 브레이커'라 불리던 현상의 재림이라 할 만하다. 당시 등골 브레이커의 부작용을 몸소 체득했던 일부 학교는 고가 제품이 학생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롱패딩 금지령을 내리면서 이에 반발하는 학생들과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이와 더불어 겨울 교복 재킷을 입은 상태에서만 외투를 입도록 허용하는 일선 학교의 겉옷 금지 규정이 또 다시 논란으로 불거졌다. 교육부가 학생들의 건강과 개성 실현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전국 시도교육청에 과도한 겉옷 금지 학칙을 시정하라고 지시하였지만, 다수의 일선 학교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조치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근 충남청소년인권더하기가 충남도내 64개교 1천511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이에 응답한 학생의 65%가 추운 날씨에 외투를 입는 것에 대해 여전히 규제를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듯 학생들이 추위를 막기 위해 걸쳐야 하는 외투는 비단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값비싼 등골 브레이커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었다. 



수 년째 비슷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고, 아울러 자꾸만 반복되고 있음에도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교육 당국의 미온적인 태도는 어떻게 보면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학생다움을 유지하면서 추위도 막고, 고가 브랜드로 인해 발생하는 위화감을 없앨 요량이라면 차라리 겨울 외투 또한 정식 교복으로 지정하여 이를 저렴한 가격으로 학생들에게 공급하는 방식은 어떨까 싶다. 


수 년 전 전국 학생들의 겨울철 교복으로 감쪽같이 둔갑했던 고가 패딩 열풍도 그랬거니와, 이번 롱패딩 열풍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가라앉으며 낡은 유행으로 전락, 이내 사라질 게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이유로 평창 롱패딩을 사이에 두고 이를 먼저 사가겠다며 심하게 다투는 어른들의 모습은 참으로 볼썽사납기 짝이 없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려는 업체들의 상술 또한 갈수록 진화, 대중들을 끊임없이 미혹하고 있다. 


어른들의 평창 롱패딩 구입 해프닝과 아이들의 롱패딩 열풍은 전혀 관련없는 듯보이나 실은 동일 선상에서 이를 해석해야 옳을 듯싶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냄비처럼 금방 달아올랐다가 이내 식어버리는 경향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금세 사그러들 단순 유행임에도 다른 이들보다 먼저 구입하겠노라며 패딩을 놓고 살벌하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사이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의 그러한 웃픈 광경을 고스란히 지켜보면서 성장한다. 겨울철만 되면 반복되는 유사한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되레 달아오르는 냄비 근성과 함께 이를 더욱 부추기는 현상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켠이 답답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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