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호모 나이트쿠스'의 증가, 달갑지 않은 이유

새 날 2017. 5. 15.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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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경험한 외국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빼놓지 않고 엄지척 하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습니다. 바로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고 밤이 깊어갈수록 불야성을 이루는 도심을 꼽습니다. 이러한 환경을 온전하게 갖추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구비되어야 할 것들이 몇가지 있는데요. 우선 세계 최고 수준의 치안 상황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으슥한 밤 시간대에 마음 놓고 돌아다니며 놀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우리의 치안 수준이 빼어나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실제로 해외 여행객들이 매긴 치안 수준을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뿌듯한데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근래 밤을 즐기는 문화가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관련 빅데이터를 조사한 모 IT기업에 따르면 이와 관련한 언급량이 지난 2013년에 비해 2016년에는 무려 64%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신조어도 탄생했는데요. 다름아닌 '호모 나이트쿠스'라는 용어입니다. 이는 밤을 의미하는 'night'와 인간을 뜻하는 접미사 'cus'를 결합하여 만든 합성어로, 주로 밤에 활동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밤에 활동하는 사람들이 오죽 많으면 이를 뜻하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을까 싶네요.


ⓒ연합뉴스


호모 나이트쿠스가 많아지니 24시간 영업하는 각종 카페와 편의점, 음식점들도 덩달아 호황을 누리게 되고, 야식 배달 업체와 심야 상영을 하는 극장가 등도 희색이 만연합니다. 밤 늦게 여행을 떠나 다음날 새벽에 돌아오는 올빼미 여행 상품도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도심 이곳 저곳에는 이들 호모 나이트쿠스를 위한 야시장이 개설되어 밤새 뜬눈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이들의 시선과 발걸음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밤새 흥청망청하는 밤샘 문화가 연일 계속되는 대한민국의 도심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흡사 별천지이자 흥겨운 놀이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엄지척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데요.


그러나 호모 나이트쿠스가 많아지게 된 배경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를 마냥 반겨할 수만도 없는 처지입니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2,113시간입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 다음으로 깁니다. 회원국 평균인 1,766시간과 비교하면 347시간이나 길며, 하루 24시간으로 따지면 2주가 넘는 장시간에 해당합니다. 새벽에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감성을 즐기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며 밝은 측면만을 부각시키기 이전에 왜 수많은 사람들이 밤잠을 줄이면서까지 늦은 시각에 이런 활동을 해야 하는가를 먼저 헤아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호모 나이트쿠스가 증가하게 된 배경과 관련하여 온전히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한 환경과는 별개로 순수하게 새벽 감성을 즐기는 등 밤샘 문화 자체에 매력을 느끼는 취향을 지닌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주말의 여유도 찾을 수 없고, 저녁이 있는 삶조차 바랄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잠 시간을 줄이면서까지 밤 시간대를 활용하고 있는 사실 또한 엄연한 우리의 현실입니다. 


혹자는 호모 나이트쿠스가 늘어나자 이른바 '아침형 인간'과 '심야형 인간'의 장단점을 비교해가며, 인생을 즐기는 측면에서 볼 때 후자가 바람직스럽다거나 해외에서의 실제 연구사례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며 이를 자꾸만 부추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극찬을 하고 있는 우리만의 화려한 밤문화의 이면에는 장시간의 격무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어 심야 시간대를 택하고 이를 활용하는 어두운 측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 보장된다면 아마도 작금의 화려한 밤문화는 지금과 같은 각광을 받을 수 없는 데다가 외국인들의 엄지척을 불러오지 못할 개연성이 높습니다. 


노동자들은 현재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에 허덕이면서 없는 시간 쪼개가며 밤문화를 기웃거리고 있습니다만, 취업준비생인 다수의 청년들은 최악의 취업난 속에서 좌절을 겪으며 이의 고통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고자 마찬가지로 밤문화를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이들의 고통을 먹고 자라는 대한민국 도심의 불야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외국인 관광객들로 하여금 엄지척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인에 놀라는 7가지' 유튜브 영상 캡쳐


우리의 노동시간은 세계 최장급입니다만, 노동 효율과 생산성은 크게 떨어져 OECD 회원국 가운데 26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장시간 노동이 굳이 필요할까 하는 의문부호 하나가 붙는 대목입니다. 외국인들의 시선엔 매일 밤늦게까지 부어라 마셔라 술을 먹은 직장인들이 다음날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는듯 멀쩡히 출근하는 모습이 매우 의아하게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사실 이러한 문화도 저녁이 있는 삶이 보장될 경우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당 근로시간을 최장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의 단축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주고 일자리도 늘릴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인 정책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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