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이성과 비이성은 종이 한 장 차이 '이레셔널 맨'

새 날 2016. 7. 25.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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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호아킨 피닉스)가 철학과 교수로 새로 부임하기로 한 대학은 벌써부터 술렁이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만의 독창적인 학문적 사상과 청중을 압도하는 달변의 이면에 놓인 범상치 않은 그의 사생활 및 과거의 기록들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 만한 호기심 가득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강좌를 듣던 질(엠마 스톤)은 그가 부임하기 전부터 그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한껏 고무되어 있던 찰나다. 때마침 에이브가 질이 제출한 과제물에 대해 유달리 관심을 보이며 그녀와의 접촉면을 넓히는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 


질에게 있어 에이브의 모든 면은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 에이브의 학문적 성과는 과거의 아픈 기억 그리고 고통스러운 현재와 어우러지며 그만의 독특한 감성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질은 그러한 그에게 흠뻑 빠져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삶의 목표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우울감에 빠져든 그의 모습조차도 그녀에게는 일종의 환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에이브는 질과의 사이에서 일정 정도 거리를 유지하려 하고 반대로 질은 그와 더욱 가까워지려 하는, 무언가 엇박자와 같은 상황 속에서 함께 데이트를 즐기던 중 모 카페에서 한 여성의 하소연을 듣게 된다. 아이의 양육권을 놓고 법정 다툼 중이었는데 해당 사건을 담당하던 판사가 지나치게 불공정하다는 내용이었다. 에이브는 순간 그 여성이 언급한 것처럼 부도덕한 판사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경우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무언가 뚜렷한 목표를 갖게 된 그는 갑자기 삶에 대한 의욕이 마구 솟구치며 활력을 되찾게 되는데...  


질에게는 또래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에이브의 놀라운 학문적 통찰력과 문득 문득 드러나는 문학적 감수성 그리고 오직 그만이 간직하고 있을 법한 독특한 마력에 빠져 어쩔 줄을 몰라해한다. 에이브와 가까워질수록 그의 반대급부로 남자친구와는 강력한 척력이 발생했다. 에이브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조차도 그녀에게는 로맨틱 그 자체로 다가왔다. 이를 어쩌나. 



하지만 칸트나 키르케고르 같은 철학자들의 논리를 언급하며 학생들에게 강의할 땐 무언가 그만의 지성적인 면모를 뽐내듯 한없이 냉철해 보이는 에이브였으나, 적어도 그 자신의 삶에 대해서만큼은 방임과 자기파괴를 일삼을 만큼 무책임하기 짝이 없었다.


영화는 3자 구도로 그려진다. 크게는 에이브와 질의 시각으로 나눌 수 있다. 영화 도입부, '에이브는 처음부터 미쳐 있었던 것 같다'는 질의 나래이션으로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에이브의 관점으로 다가가는 시점에서는 그의 나래이션이 조용히 흐른다. 지극히 합리적이며 이성적일 것 같은 둘 사이에서 강한 인력이 작용할수록 외려 세상은 점차 비이성적으로 변모해 가는 느낌이다. 



에이브의 동료 교수인 리타(파커 포시)가 3자 구도의 나머지 축이다. 리타는 철저하게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다. 에이브라면 자신의 지겨운 결혼 생활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판타지라 여겨지던 스페인에서의 삶을 가능케 해줄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에이브라는 사람은 어떠한 종류의 사람이든 전혀 관심 밖의 일이었다. 심지어 그가 극악의 범죄자라 해도 말이다. 오로지 자신의 욕구만 해소되면 그만이었다.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세 사람 중 가장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사람은 바로 리타 아니었는가 싶다. 물론 이 영화 속에서의 이성과 비이성의 차이란 겨우 종이 한 장 정도의 미약한 간극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동정과 연민 그리고 존경 따위의 복합적인 감정으로부터 비롯됐을 법한 에이브를 향한 질의 강한 끌림은 점차 애정과 사랑으로 변모하게 되나, 그러면 그럴수록 에이브의 모습은 이성과는 전혀 거리가 먼, 점차 광기를 띤 내면의 마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실 에이브가 왜 오늘날 이토록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삶의 목표를 잃고 방황하게 됐는지에 대해 짐작 가는 대목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가 12살 되던 해에 어머니는 자살하였고, 이라크에 파병된 친구는 그만 지뢰를 밟아 운명을 달리하고 만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결코 겪지 않았을지도 모를 아픔들을 연거푸 경험한 그에게 있어 현실에서의 삶은 어쩌면 무의미와 고통 그 자체일지도 모를 일이다. 때문에 무기력과 자기파괴에 빠져들던 그에게 있어 우연히 다가온 공공의 적 제거라는 뚜렷한 삶의 목표는 그 무엇보다 달콤한 유혹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회악을 자신의 손으로 제거한다는 나름의 철학을 앞세우며 비로소 삶의 목표와 심리적 안정을 찾은 듯한 에이브에게 있어 그의 음험하면서도 광적인 행위를 멈추게 할 브레이크는 이 세상에 절대로 존재하지 않았다. 고통과 번민 속에서 자기파괴를 일삼아 오던 그가 마침내 자기 위안을 찾게 됐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일까? 하지만 지극히 비이성적인 행위에 의한 결과물은 지속적으로 비이성적인 행위를 부르기 일쑤다. 모순으로부터 헤어나기 위해 또 다른 모순에 빠져들어야 하듯 말이다. 


누가 봐도 놀랍기 그지없는 계획을 주저 없이 주도면밀하게 처리하는 면면 그 자체는 지극히 이성적으로 다가올 법하지만, 자신의 행위에 의한 결과물이 어떠한 도덕적 법적 문제들을 야기하게 될지에 대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이를 헤아리고 있는 측면에서는 도저히 합리적이라고 볼 수가 없다. 그가 이레셔널 맨인 이유다. 


제법 심각한 주제 의식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시종일관 쿨함을 잃지 않고 있다. 이 작품만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한결 같은 밝은 톤의 배경음악은 그러한 분위기에 일조한다.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은 특히 돋보인다. 너무도 지성적이나 어딘가 모르게 불균등할 정도로 우울해 보이며 내면의 고통과 끝없이 싸울 것만 같은 독특한 캐릭터는 오로지 그였기에 더욱 빛을 발했던 것 같다. 당차고 똘똘한 현대 여성상을 제대로 보여준 엠마 스톤의 캐릭터도 매우 흡족했다. 추천하고픈 영화다.



감독  우디 앨런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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