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부모 직업 체험 학습,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인가

새 날 2016. 5. 1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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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학기제'가 올해 전국 중학교 1, 2학년을 대상으로 전면 시행되고 있다. 자유학기제란 중학교 교과과정 중 한 학기를 학생들이 중간 기말고사 등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도록 수업 운영, 토론, 실습 등 학생 참여형으로 개선하고 진로탐색 활동과 같은 다양한 체험활동이 가능하도록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제도를 일컫는다(교육부 자유학기제 사이트 참조). 

 

물론 입시제도의 틀이 견고한 상황에서 단 한 학기만의 자유학기제 운영으로 과연 아이들의 꿈과 끼가 찾아질 것인가 하는 매우 기본적인 의문에 대해 일각의 비판적인 시각과 회의적인 반응이 전혀 없지는 않다. 나 역시 서열 문화로 상징되는 대학 사회와 기본 입시제도의 극적인 변화 없이는 해당 제도가 지극히 형식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던 자유학기제는 이번 정부가 끝남과 동시에 가장 먼저 폐기될 정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 취지 자체에는 공감하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됐든 아니면 교육 당국이 됐든, 어쨌거나 이러한 제도를 머릿속에서 그린 뒤 밖으로 끄집어내어 일정한 형태를 갖춰 구현했다는 건 그나마 아이들을 성적에 따라 줄세우고 있는 작금의 우리 교육 방식이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점을 그들 스스로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래 이 자유학기제가 자꾸만 잡음을 일으키고 있는 모양새다. 아이들의 진로 교육 방법의 일환으로 직업을 직접 체험해보는 현장 학습이 중등 교육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부모님 직업 체험' 학습이라는 형태다. 물론 다양한 교육 효과를 노렸음직하다. 일단 부모님이 몸담고 있는 직업을 탐방함으로써 아이들로 하여금 해당 직종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도를 넓히게 하고, 또한 막연하게 알던 부모님의 직업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인지를 체득하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다가오게 한다. 아울러 부모님의 직업 활동에 참여하여 평소 자신을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를 몸소 느끼게 해주는 또 다른 이점도 있다. 

 

하지만 교육 당국은 이로 인해 더러 상처 받는 아이들이 있을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부담을 호소하는 부모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모양이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쓰여있을 법하지만, 현실은 그와 달리 아주 냉혹하다. 아직 사회 생활을 겪지 못했더라도 세태의 흐름에 대한 이해도가 나름 높은 요즘 아이들이기에 이러한 뜨악한 현실을 모를 리 만무하다. 

 

 

누가 보아도 번듯한 직업에 몸담고 있는 부모를 가진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이에 대해 받아들이는 무게감은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다. 부모인들 다를까? 자신은 비록 험한 일, 떳떳하지 못한 일, 혹은 비정규직에 몸담으며 힘겹게 살아오고 있으나, 적어도 자식에게만큼은 훌륭한 부모로 비치고 싶고,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을 대물림하기 싫은 절절한 심경은 어떤 부모인들 한결 같을 수밖에 없을 테다. 

 

그러나 직업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갖는 편견은 유독 두드러진다. 물론 다른 영역인들 매한가지겠지만 말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한 부모가 학생들의 직업 체험에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밭일을 가르쳤다고 하여 다른 부모들로부터 핀잔을 들었단다.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나 식당에서 밤에 서빙 보조를 하는 어머니, 혹은 아예 직업이 없는 부모를 둔 경우 직업 체험이 어렵게 다가온다며 하소연하는 아이들의 사연은 결코 낯설지 않다. 아이들 저마다 그리고 부모들 저마다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고 우리식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는 이상 이러한 모습은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사례들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교육 당국의 취지를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다. 아울러 부모의 직업을 통해 다양한 직업의 세계와 부모가 자신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이론적으로는 굉장히 바람직한 제도임엔 틀림없다. 다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이 이를 못 따라갈 뿐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일부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제도가 이미 자리매김되어 잘 활용돼오고 있단다. 이는 아무리 좋은 취지의 동일한 제도라 해도 사회가 갖는 성향과 구성원의 수준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 아이들은 성적에 의해 반강제로 줄세우기 당하고 있고, 비단 성적뿐 아니라 외모, 재산 등 웬만한 영역을 통해서도 온통 서열 구조화된 사회이거늘, 직업이라고 하여 그로부터 예외일 수는 없을 테다. 직업에 대해 갖는 편견적 시각과 그에 따른 차별은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관행이다. 공부 잘해 좋은 학교에 진학하라며 종용하고, 또한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갖추거나 돈 많이 벌 수 있는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며 부모들이 열심히 자녀들을 채찍질하는 이유 역시 그로부터 기인한다.

 

이렇듯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제도라 해도 우리 사회에서는 그로 인해 오히려 갈등의 골을 깊게 하고 상처를 입히거나 부담으로 전가시킬 개연성을 높이고 있기에 도입에 앞서 교육 당국이 그러한 측면까지 두루두루 살피며 신중하게 고려했어야 함이 옳다. 작금의 잡음은 자유학기제가 벌써부터 지나치게 형식으로 흐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 아닌 우려를 낳게 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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