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애견인의 시각으로 본 꼴불견 애견인 백태

새 날 2016. 5. 7.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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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가 개 목줄과 관련한 사연 하나를 접했다. 물론 이러한 하소연은 근래 흔하디 흔한 현상 중 하나라 딱히 주목할 만한 사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나로서는 같은 애견인이기에 그냥 모른 척 지나가기가 왠지 꺼림직스러웠다. 사연인즉 이렇다. 반려견을 끌고 나온 견주가 개에게 목줄을 착용하지 않은 바람에 글쓴이와 함께 동행 중이던 개 공포증이 있는 어린 자녀가 가던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해 목줄을 착용해 달라고 호소하는 과정에서 서로 실랑이가 벌어졌노라는 사연이다. 

 

그런데 이후 견주의 태도가 몹시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모양이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러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개에게 목줄이 아예 없던 상황이 아닌 데도 풀어놓은 상태라 처음에는 정중하게 부탁을 했더란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마주하게 되면서 여전히 목줄이 없는 걸 확인하게 되고 재차 이에 관해 언급을 했더니 견주가 그냥 신고하라며 막무가내로 버티더란다. 

 

 

시쳇말로 표현하자면 그냥 배째라는 식이다. 그런데 비록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생활공간 곳곳에서 꼴불견인 애견인을 만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산책로에서 걷거나 뛰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목줄 없는 애견 때문에 놀라 페이스가 흐트러지거나 자칫 넘어질 뻔한 사례가 숱함에도, 정중히 사과를 건네는 애견인을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애견의 돌출 행동은 순전히 목줄을 착용하지 않아 발생한 상황이고, 그에 따른 책임은 온전히 견주에게 있음에도 눈 하나 꿈쩍 않는다. 아마도 산책로 여기저기에서 뒹굴고 있는 애견의 배변 흔적 역시 대부분 이러한 꼴불견 애견인에 의해 방치된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듯 말이다.

 

근래엔 목줄을 착용한 애견조차도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길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목줄의 형태가 최근 유행하면서 이를 길게 늘어뜨린 채 애견을 풀어놓아 외려 목줄이 없는 경우보다 더욱 당혹스럽게 만들곤 한다. 한 번은 산책로를 천천히 달리고 있는 와중이었다. 주변은 어두웠고 너무 긴 줄로 인해 견주와 개가 한쌍이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 그 긴 줄에 의해 내 목이 걸리는 불상사가 빚어진 것이다. 하지만 견주는 사과라는 걸 아예 모르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잘못 따위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던 건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애견을 데리고 다닌다는 건 미처 예측 못한 돌발 상황이라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둔 채 그에 대처해야 하는 엄중한 책임감이 뒤따르는 일이다. 때문에 개에게 목줄을 착용하고 늘 주변을 의식한 채 주의를 기울이며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이 정도의 작은 책임 의식조차 없다면 애견을 산책시킬 자격이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니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그 자체가 모순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하여 무조건 목줄을 하는 것만으로 견주의 책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면 그 또한 큰 오산이다. 앞서도 살펴봤듯 지나치게 긴 줄은 되레 목줄을 아예 하지 않음만 못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산책시 애견의 목줄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정부는 2008년 동물보호법을 개정, 반려견 목줄 착용에 대해 이를 의무화한 바 있다. 만일 목줄을 착용하지 않아 단속에 적발될 경우 1차 5만 원, 2차 7만 원, 3차 10만 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애견인 중 구체적인 과태료 금액까지는 모르더라도 개에게 목줄을 착용하지 않은 채 산책시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을 줄로 안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사례의 견주 역시 신고할 테면 신고해 보라며 오히려 으름장을 놓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일부 애견인들은 여전히 목줄을 착용하지 않은 채 애견을 데리고 다니는 걸까? 더구나 신고할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외려 큰 목소리를 내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짐작 가는 대목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실제로 애견과 관련하여 단속을 하는 경우를 내 눈으로 단 한 차례도 본 적이 없는 데다 혹여 애견 때문에 불편 신고를 하게 되더라도 과태료 부과로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거의 없는 탓이다. 이는 통계로도 드러난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11개 한강공원에서 반려견 관리 소홀로 계도한 사례가 무려 4만 건에 육박하는 데 반해, 실제 과태료로 부과된 사례는 고작 16건에 불과하단다.

 

ⓒ뉴시스

 

현실이 이러할진대 배려를 도통 모르는 일부 애견인들의 막가파식 행동이 활개를 치는 건 지극히 당연한 노릇 아닐까? 물론 그렇다고 하여 그의 반대급부로 마구잡이식 단속을 하자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단속이 결코 능사가 아닌 까닭이다. 단속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적인 문제점도 실은 걸림돌이다. 그렇다면 결국 공존과 배려라는, 사회 구성원이라면 응당 갖추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가치관이나 덕목 따위의 문제로 귀결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이는 전적으로 애견인 스스로에게 달린 사안이다. 애견인이든 그렇지 않든, 애견에 의한 불편 호소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게 될 경우 그에 따르는 제재는 필요악이 된다. 같은 애견인의 시각으로 보더라도 작금의 현실은 어느덧 우리 사회가 감내 가능한 한계 수준에 거의 도달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

 

반려동물 인구 천만 명 시대라고 한다. 5명 가운데 1명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비슷한 문제들이 자꾸만 부각되고 대두될 수밖에 없는 과도기적 상황이다. 애견인들을 향해 개매너라는 표현이 가해지고 있고, 개가 개를 키운다거나, 아니 개보다 못한 사람이 개를 키운다는 표현이 횡행하고 있는 사실은 같은 애견인으로서 더없이 가슴 아픈 일이다. 공존과 배려라는 매우 기본적인 가치를 다시금 곱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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