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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과 갈등이 빚은 혼돈,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새 날 2016. 4. 2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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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라고스, 일군의 괴한들이 생체실험연구소를 급습하여 생체 무기를 탈취하는 사건이 빚어진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와 팔콘(안소니 마키), 블랙위도우(스칼렛 요한슨) 그리고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가 현장에 투입된다. 하지만 이들의 작전 수행 도중 다수의 민간인이 죽거나 다치는 불상사가 벌어지고 만다. 여론은 절대로 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결국 이번 사건은 어벤져스의 그간의 활동에 대해 되돌아보는 빌미가 된다.

 

즉, 어벤져스가 정의의 수호신으로 활동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이번 사례처럼 죄없는 민간인들이 죽어나가는 등 통제 없는 시스템은 자칫 이들을 괴물로 돌변시킬 수 있기에 국제기구의 통제 하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자신들의 의지에 의한 활동이 아닐 경우 작전이 위축되거나 정작 필요한 곳에서의 제대로된 활동이 어려워질 수 있고, 작전을 수행하다 보면 그의 반대급부로 일정 부분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을 주축으로 한 일군의 멤버들은 유엔의 통제를 찬성하는 입장이고, 캡틴 아메리카를 주축으로 한 또 다른 멤버들은 그와는 반대로 통제에 거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의도는 이들을 일정한 틀 안에 가두려 함이 명백하고, 이번 사태가 그와 관련하여 좋은 기회로 다가오는 것 또한 틀림없다. 이의 일환으로 유엔 산하 117개국 대표가 한 자리에 모여 어벤져스를 자신들의 통제 하에 두기 위한 회의가 진행되던 찰나, 현장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 일부 국가 원수가 사망하는 등 쑥대밭이 되고 만다. 이의 배후로 윈터 솔져인 캡틴 아메리카의 친구 버키(세바스찬 스탠)가 지목되고, 그에 대한 추격전이 펼쳐진다. 하지만 캡틴은 버키의 행위가 아님을 확신하며, 오히려 그의 보호에 앞장선다.

 

가뜩이나 어벤져스의 유엔 통제에 반대하고 나선 상황인 데다 미국 정부와 아이언맨을 주축으로 한 다수의 어벤져스 멤버들로부터 눈밖에 난 캡틴이거늘, 단지 친구라는 이유로 유엔 폭탄 테러 용의자를 돕고 나선 상황이라 양측 간의 갈등은 더욱 첨예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갈수록 곤혹스러운 처지로 내몰리게 되는 캡틴은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어떠한 판단을 하게 될까?

 

 

언제나 지구촌의 정의를 수호하던 멋진 모습을 선보여오던 어벤져스가 이번 작품 속에서는 갈등과 분열 양상이라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민낯을 드러낸다. 때문에 지구를 위험에 빠뜨려온 악의 무리들을 속시원하게 무찌르는 모습보다는 양분된 어벤져스 멤버들의 격투기 장면이 액션의 주를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블표 액션은 확실히 여타의 그것과는 결이 다르게 와닿는다.

 

스칼렛 요한슨의 맨몸 격투는 시원시원하여 흔히 접해오던 중국 무술 기반의 그것을 월등히 압도하고도 남고, 하늘과 땅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여타 멤버들의 활약은 이를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속을 후련하게 해준다. 도로를 질주하는 이들과 차량의 흐름이 뒤섞일 때면, 마치 내 몸도 그들과 함께하는 듯한 착각 속으로 빠져든다. 아마도 이런 맛에 모두들 마블표 액션을 감상하고, 또한 엄지를 척하고 내미는 게 아닐까 싶다. 한 마디로 후련함 그 자체다.

 

 

이야기 얼개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으며, 중간중간 여러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깨알 같은 웃음은 이번 작품에 잔재미를 한껏 불어넣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도 남으나, 어벤져스 캐릭터의 다수가 총 출동하는 바람에 다소 복잡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분명히 캡틴 아메리카를 보러 온 것 같은데, 왠지 어벤져스 시리즈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듯싶다. 여기서 한 술 더 떠 난 점잖은 정의의 수호자 캡틴을 보러온 것이지, 어벤져스 간의 몸싸움을 보러 온 게 아니라며 볼멘소리를 내지를 법도 하다.

 

그들 간의 편싸움은 누구의 필살기가 더욱 강한가를 겨루는 느낌이다. 그나마 애시당초 갈등과 분열을 빚게 만든 단초가 설득력을 잃을 경우 이들의 싸움 역시 어색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을 텐데,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건 다행스런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어벤져스를 유엔의 통제 시스템 하에 두려는 진영의 움직임에 대해 그와는 반대 진영의 가치관을 지닌 캡틴의 안타까워하며 주저하던 모습과 친구의 우정을 놓고 갈등하던 장면이 제법 진지하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이 시리즈물이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으나 줄창 악당만을 깨부수는 이야기로부터 이렇듯 한 번쯤 살짝 비껴가는 것도 나름 괜찮은 것 같다.

 

 

갈등과 분열 구조는 사실 우리 사회, 아니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람 사는 세상이라면 흔히 볼 수 있는 그러한 형태의 것이다. 악당을 물리치고 정의를 수호하는 그들이 우리 세계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워낙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까닭에 이를 통제하지 않을 시 자칫 인류의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데다, 자신들의 독단적인 판단과 결정으로 작전을 수행하다 보니 적지 않은 민간인의 희생을 불러올 개연성마저 높으니 이들의 활동을 유엔 통제 하에 두자는 견해와 자신들의 활동이 제약을 받게 된다면 진짜로 필요한 영역에서의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어 애초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견해가 서로 상충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갈등은 사실 단칼에 무 베듯 어느 한쪽으로 쉽게 결정지을 수만은 없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를 등에 업은 측은 이 포스팅의 서두에서 언급한 한 사건을 빌미로 그렇지 못한 다른 편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렇다면 통제되거나 혹은 누군가의 숨겨놓은 의도에 의한 부정확한 정보로 인해 사건의 진실이 덮이고 그 이면마저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적으로 밀어붙인 결과가 혹시 이러한 혼돈을 빚고 있는 건 아닐까?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숙고해야 하는 사안은 아닐까? 우리는 영화속 캡틴의 행위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감독  안토니 루소, 조 루소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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