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글로리데이> 순수를 지우는 방식

새 날 2016. 3. 2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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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이제 갓 졸업한 꿈 많은 네 청년, 그들 저마다가 처한 환경은 각기 다르나 우정만큼은 더없이 돈독하다. 그들 가운데 가장 먼저 군 입대 영장을 받은 상우(수호)의 배웅을 위해 네 친구는 모처럼 의기투합, 거처인 서울을 떠나 포항으로 향하게 된다. 들뜬 마음은 그들 앞에 놓인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는 일종의 묘약과도 같다. 포항이라는 공간적 낯설음은 이들의 심신을 무장해제 시키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의 적당한 알콜 흡수는 우정을 돈독히하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하고도 남는다. 청춘의 밤은 이렇듯 두근거림과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때다. 한 젊은 여성이 남성에게 끌려다니며 일방적으로 폭행 당하는 모습이 우연히 그들 눈에 들어온다. 경찰에 신고하자는 친구들도 있었으나 의협심 강한 용비(지수)가 그들 사이로 가장 먼저 뛰어든다. 지공(류준열)과 두만(김희찬) 그리고 상우 역시 부지불식간에 그들 사이에서 방황하다 휩쓸리게 된다. 무지막지하게 구타 당하던 여성을 돕고자 뛰어들었던 그들이건만 서로 폭행이 오고가던 와중에 어떤 영문인지 몰라도 상대 남성이 죽고, 이들은 졸지에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우마저 뺑소니차에 치이고 마는데...

 

 

친구의 군 입대 배웅을 위해 네 친구가 함께한 단 하룻밤, 그 사이 벌어진 일탈 행위의 대가 치고는 그야말로 혹독함 그 자체다. 약자를 만나면 당연히 도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행한 까닭에 특별히 잘못한 게 없다고 판단한 그들, 하지만 경찰의 추격에 당황해 하며 도주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고 그러던 와중에 상우는 뺑소니차에 치여 크게 다치는 불운마저 닥친다. 나머지 세 명 역시 경찰에 붙잡힌 채 그동안 접해 보지 못했던 미증유의 고통과 운명 속으로 내던져지는 참혹한 신세가 되고 만다.

 

비록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학교와 사회에서 배워온 대로 약자를 만나게 될 경우 응당 도와야 한다는 류의 순수한 자발적 동기는 안타깝게도 이들 청춘에게는 일종의 덫이었다. 때문에 남의 일에 왜 관여하느냐며 너나 할 것 없이 잇따라 다그치는 이들 청년 부모들이 보이는 행동은 도덕적으로는 분명히 옳지 못한 결과임엔 틀림없으나 현실적으로는 가장 바람직한 처세 방법임을 이 영화는 적나라하게 꼬집고 있다. 기성세대로서 낯뜨거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비단 이들 뿐이겠는가?

 

 

이번 폭행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의 행태를 통해서도 이상과 현실은 극명하게 다를 수 있음을 공공연하게 보여준다. 경찰에 갓 입문한 신입의 시선으로는 의혹에 대한 올바른 수사 없이 일방적으로 네 청년들을 폭행치사범으로 몰아가는 현실이 부조리하게 와닿는 까닭에 이러한 상황을 바꿔보려 노력해 보지만, 이는 윗선으로 올라갈수록 점차 탁해지는 등 그들만의 도덕적 해이와 불감증으로 인해 묵살돼버리기 일쑤다. 신입 바로 위의 상관은 경찰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 술집 등을 상대로 푼돈을 뜯어내는 일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하며, 그보다 직위가 조금은 더 높은 상관은 피의자들의 부모로부터 직접 뒷돈을 챙긴다. 경찰서장은 진실을 파헤치려 하기보다 정치권 등의 외압에 휘둘리며 그저 그들의 밉맛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경찰은 꼭두각시에 가깝다. 이번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는 사회적 지위 및 명망 높은 자들에게 타격이 가해지거나 시끄러워질까 봐, 혹은 오로지 경찰 자신들이 피곤하다는 이유 때문에 적당히 만만한 자를 간택하고 그들을 희생양 삼아 사건을 서둘러 종결지으려고만 한다.

 

 

때문에 잘못된 사실에 대해 잘못됐다고 올곧게 지적을 하고, 이를 바로잡겠노라고 호기롭게 나선 청춘을 계란으로 비유하자면, 견고하게 형성돼 있는 사회의 기존 틀은 흡사 바위와도 같은 형국이다. 바위에 무수한 계란을 던지더라도 조금 더럽혀지기만 할 뿐 본질은 변함이 없을 테니 말이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정치권과 검찰을 조종, 입맛에 맞도록 사건을 조작하거나 무마하는 건 사회 지도층 인사에겐 일종의 식은 죽 먹기에 가깝다. 사실마저 왜곡시킨 채 힘없는 사람들을 희생양 삼는 건 그들만의 종특이 아닐까 싶을 만큼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똑같이 곤란한 처지로 내몰린 청년들이지만, 각자의 가정 환경 및 부모의 직업에 따라 그들의 입장 역시 점차 해당 수준에 걸맞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뒷맛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막다른 처지에 놓이게 되니 그동안의 우정은 온 데 간 데 없이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스스로의 안위와 생존만을 걱정하고 생각할 뿐이다.

 

 

세상은 흡사 먹이피라미드와도 같다. 전체적인 밑그림과 틀은 최상단의 포식자 그룹의 의도에 의해 그려지는 게 어느 정도 맞을 것 같다. 결코 그 자리를 넘볼 수 없는 약자들은 포식자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든 약자가 동일한 수준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포식자의 아랫단 역시 사회적 지위 등 계층에 따라 치열한 먹고 먹히는 관계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네 청춘, 우정으로 똘똘 뭉친 사이임에도 막다른 처지로 내몰리게 되자 결국 자신들의 주변 환경을 최대한 이용, 먹이피라미드상 상대적으로 더욱 하단에 위치한 이를 희생양으로 삼기 위해 몸부림친다. 약육강식의 본질적인 모습이다.

 

이 영화가 마지막까지 불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용비의 자존심이자 존재의 이유이기도 했던 의협심에 기댄 채 혹시나 하며 절대로 내려놓지 않기를 바랐던 관객들의 기대감마저 감독이 철저하게 뭉개버리고, 지독히도 현실적인 결과를 따르게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직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우리 사회와 기성 세대가 어떠한 방식으로 지우고 있는지 그 프로세스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라 영 찜찜하다. 

 

 

감독  최정열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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