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런던 해즈 폴른> 이 영화 왜 시간 저격용인가

새 날 2016. 3. 1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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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영국 총리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긴급속보가 전 세계로 타전된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은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며 잇따라 장례 행사에 참석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작금의 국제 정세는 장례식조차 마음 놓고 치르기 어려울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가던 와중이다. 필리핀을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 테러가 일어나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등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탓이다. 장례식이 치러질 영국 런던은 도시 전체가 긴장감에 휩싸였으며, 그에 걸맞는 삼엄한 경비가 이뤄지고 있다.  

 

마침내 장례식 당일이다. 각국 정상은 각기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의 경호와 선호하는 이동 스타일로 속속 행사장으로 들어선다. 자동차를 이용하거나 때로는 선박으로, 그리고 헬기를 타고 이동하는 정상도 눈에 띈다. 정상들의 행사장 진입을 예의주시하던 경찰과 경호원들의 눈빛 몸짓 하나하나로부터는 그들이 이미 초긴장 상태에 접어들었음을 눈치채게 해 준다. 

 

 

그때다. 의전 차량 한 대가 행사장으로 진입함과 동시에 엄청난 굉음과 화염에 휩싸이더니 이내 폭발하고 만다. 장내는 일시에 쑥대밭으로 변모한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자동차 폭발이 신호탄이기라도 한 양 경찰로 둔갑한 테러요원들이 곳곳에서 출몰하더니, 자동소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마구 투척하기 시작한다. 아울러 런던 도심 곳곳에서는 미증유의 동시다발 폭탄 테러 행위가 벌어진다. 도심은 공황 상태에 빠져든다. 독일 총리를 비롯한 각국 정상 5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민간인들의 희생은 셀 수 없을 정도다.

 

미국 대통령(아론 에크하트)은 특수 경호원 배닝(제라드 버틀러)의 헌신적인 경호 덕분에 수차례의 위기로부터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테러 세력의 공격은 상상 이상으로 집요하다. 그들의 표적은 보다 명확한 것 같다. 다름아닌 미합중국 대통령이었다. 이후로 테러 세력과 그들의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추격전이 전개되는데... 

 

 

이 영화가 설정한 허구적 상상은 사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마냥 허구라고 치부하기엔, IS 등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서방세계 간 적대적 감정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 작금의 국제 정세 때문에 영 찜찜하게 다가온다. 결국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될 일이기는 하나, 어쩌면 실제로 벌어질 법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에 그래서 섬뜩하다.

 

특히 미국인들이라면 비록 영화라는 허구적인 장르적 특징을 감안하더라도 9.11 테러의 악몽을 떠올림직하다. 런던 도심에서 총리의 장례식날 잇따라 벌어진 폭탄 테러는 흡사 9.11 테러 당시 무역센터를 비롯, 펜타곤 등 미국 전역에서 동시다발로 가해졌던 테러 행위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영화 속에서 테러 세력에게 쫓기며 거의 죽다시피한 채 도망다니는 미합중국 대통령의 모습은 안쓰럽기 짝이 없다. 속된 표현을 빌리자면 개고생이다.

 

 

영화는 테러 세력을 향한 서방세계의 응징으로부터 시작된다. 테러 세력 역시 그에 대한 보복 차원으로 런던 테러를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이 작품은 미합중국 대통령과 그의 경호원 그리고 백악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지만, 그렇다고 하여 특별히 미국 쪽으로 추가 더 기울어진 것 같지는 않다. 테러는 천인공노할 행위임이 분명하나 그들의 이러한 행동의 배경엔 미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은연 중 드러내고 있는 까닭이다. 흡사 부시를 빼닮은 미합중국 대통령이 테러세력에게 붙잡혀 린치를 당하는 장면은, 되레 왜 이러한 결과를 빚게 했느냐며 준엄하게 꾸짖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무조건 킬링타임용이다. 절대로 그 이상이나 이하가 될 수는 없다. CG로 떡칠을 했든 아니면 실사를 적용했든, 어쨌거나 영화는 속시원하게 건물이며 다리 그리고 헬기 등을 마구 폭발시키고 무너뜨린다. 하지만 테러로 인해 고통 받게 될 그 이면의 모습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퍼부어지는 총탄 세례와 잇따른 폭발 신을 통해 우리의 내재돼 있던 분노와 스트레스, 욕구 따위를 대신 풀어줄 뿐, 이는 흡사 게임을 즐길 때 느낄 수 있는 희열과 비슷한 종류의 것에 다름아니다. 런던 도심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폭발 장면은 그저 오색찬란한 불꽃놀이에 불과하다. 테러 행위라는 끔찍한 소재를 오락용으로 승화시킨 독특한 작품이다.

 

 

한 발 더 나아가 테러라는 마냥 심각한 상황에서조차 감독은 여유를 잃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앞서도 언급했듯 영화속 미국 대통령의 인상은 흡사 부시 전 대통령을 빼닮고 있다. 부러 고생을 시킨 게 아닐까 싶다. 아울러 다른 나라 정상의 장례식 행사를 위해 방문한 이탈리아 총리가 이제 갓 서른이 된 젊은 여성과 밀회를 즐기는 모습은, 아마도 망나니 짓으로 유명했던 베를루스코니를 풍자한 듯한 느낌이다.

 

 

드론을 원격조종, 적의 동태를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며 단 한 차례의 버튼만으로 폭탄을 투하, 상대방을 제거하는 방식은 영화적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마치 게임하듯 지상에서 타깃을 향해 아무런 감정 없이 폭탄을 퍼부어대는 모습과 불꽃놀이를 하는 듯한 화려함 일색의 도심속 폭탄 테러 장면은 보는 내내 속을 후련하게 해 준다. 표현에 거리낌이 없다. 다만, 비록 허구이긴 하나 테러 행위에서 비롯된 고통과 후유증에 대한 이해 없이 이러한 소재를 오롯이 게임 즐기듯 오락용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현상이 과연 바람직한지 아닌지의 판단은 결국 관객 몫으로 남겨놓아야 할 듯싶다.

 

 

감독  바박 나자피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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