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설 명절, 타인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민폐다

새 날 2016. 2. 6.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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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돌아온 명절이다. 이번 설은 주말이 겹치는 바람에 대체휴일까지 더해져 그 어느 해보다 길게 다가온다. 반가운가? 물론 혹자에겐 반가운 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또 다른 이들에겐 긴 연휴가 오히려 고통으로 와닿을 수도 있는 사안이다. 어쨌거나 명절을 통해 간만에 얼굴을 직접 대면하게 될 부모 형제 자매 등과의 만남은 이산가족 상봉 정도는 아니더라도 가슴 훈훈하게 해 주는 멋진 이벤트인 것만은 틀림없다. 물론 모든 일이 그러하듯, 즐거움이 배가되는 만큼 그 이면엔 사람마다 각기 겉으로 드러내놓기 곤란한, 말 못할 괴로움이나 고통 등이 수반되겠지만 말이다.

 

손님 맞이 준비를 해야 할 이 땅에 사는 대다수의 며느리들에겐 이번 연휴가 더없이 괴로운 기간임이 틀림없다. 정의당이 동네 어귀 횡단보도 앞에 내건, 노란색 바탕 위에 선명하게 적힌 '설 음식 준비는 가족 모두와 함께'라는 검은색의 현수막 글귀가 그 어느 때보다 큼지막하고 또렷하게 다가오는 건 다름아닌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명절 후유증을 앓아야 할 만큼 이 땅의 며느리들에게 있어 명절 맞이는 그야말로 혹독함 그 자체다. 이는 허리 등 몸을 혹사시켜야 하는 물리적인 고통을 수반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시댁과의 갈등으로 인한 심리적인 고통이 이보다 더욱 크게 다가올 수도 있는 사안이다.

 

YTN 방송화면 캡쳐

 

견주어 본다면 분명 객관적인 경중이 존재할 게 틀림없으나, 사람들이 각기 겪고 있을 법한 크고 작은 고통은 타인의 것보다 자신의 그것이 가장 크게 와닿기 십상이다.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이상 어쩌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땅 덩어리는 좁아터지는 데다 인구는 차고도 넘치는 한반도, 게다가 가지고 있는 자원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의 도를 넘어선 경쟁은 도저히 피해 갈래야 피해 갈 수가 없는 처지이다. 덕분에 이웃과 친구 심지어 친인척끼리 서로가 서로를 비교하는 습성은 일종의 우리 민족성이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다. 정작 문제는 명절만 돌아오면 그 현상이 더욱 집중되어 많은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데에 있다.

 

늘상 비교를 통해 타인과 견주고, 상대적인 우위를 느끼면서 행복감을 유지해 오던 현상은 우리네의 불안하기 짝이 없는 삶의 한 양태를 고스란히 투영하는 잣대라 할 만하다. 그로부터 비롯됐음직한, 삶의 중요한 고비를 넘어서는 단계에 놓인 이들에 대한 관심은 늘 지나칠 정도다. 대학을 졸업하는 청춘에겐 어떤 회사에 취업을 했는지가 궁금하고, 혼기에 이른 젊은 미혼 남녀에겐 짝은 있는지의 여부와, 있다면 상대는 어떤 사람인지, 아울러 결혼은 언제쯤 하는지 등등 미주알고주알 알고 싶은 내용도 참 많다.  



물론 그보다 위 아래의 연령층에 대한 관심 또한 적지 않다. 직장을 이미 다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승진은 했는지, 사업을 벌이고 있는 사람에게는 잘 되는지의 여부가 궁금하고,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에겐 어느 대학에 들어갔는지, 그보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공부는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의 따위가 몹시도 궁금하다. 답변을 해야 하는 사람의 처지는 아랑곳없이 명절만 되면 일방적으로, 그리고 집중적으로 이러한 질문 만행(?)이 곧잘 벌어지곤 한다.

 

이런 현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타인도 아닌 친인척 사이에 안부를 묻는 게 뭐가 문제가 되느냐며 항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외려 친인척이라는 특수관계 때문에 더욱 감추고 싶은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당사자들이 원치 않는 질문은 일종의 민폐이자 상처를 헤집는 결과에 불과하다. 가뜩이나 여의치 않은 처지로 인해 아픈 마음을 추스리고 있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질문은 상처 부위를 재차 후벼파는 결과와 진배없는 까닭이다. 우리가 누리는 삶의 가치관이나 방식에는 일정한 정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특정한 방향을 유도하는 질문을 하고 또한 무언가 틀에 맞춰진 정답을 듣기 원한다. 입으로는 다원화사회라 부르짖으면서도 다양성이나 개성 따위를 일절 찾을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몰개성적인 데다 지나치게 경직된 사회가 아닐 수 없다.

 

제아무리 돈독한 형제 자매 사이에도 서로 껄끄러운 이야기로 상대방에게 씻을 수 없는 내상을 입히는 경우가 다반사이거늘, 가뜩이나 명절 때만 얼굴을 살짝 내비치는 정도로 그다지 가깝지도 않은 관계에 놓인 사람들이 잘난 척을 일삼거나 상호 비교를 통해 상대적인 우위를 느끼며 억지 행복감을 얻으려는 행위는 전혀 달갑지가 않다. 오늘날 명절이 즐겁지 않고 오히려 피하고만 싶은 이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건 이미 각자도생 시대로 접어들 만큼 각박하고 팍팍한 세상으로 변모한 사회적 배경과 전혀 무관치가 않다.

 

YTN 방송화면 캡쳐

 

제발이지 남의 삶의 가치관 따위에 대한 관심은 끊자. 생김새가 서로 다르듯 모두가 지니고 있는 가치관 역시 각기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한 사람의 삶이 5지선다로 주어진 선택지처럼 특정 방향으로만 정해진 것이 아닐진대, 그에 대한 일방적이며 무조건적인 관심은 진상 행위이자 지나친 오지랖으로 받아들여질 공산이 크다. 만인에게 해악을 끼치는 범죄행위가 아닌 이상 타인이 무슨 일을 하건 이를 비교하는 자체는 사실 실례일 수밖에 없다. 적어도 명절 때만이라도 이와 같은 민폐 행위로부터 벗어나자.

 

요즘처럼 살기 힘들고 어려운 세상이라면 사실 우리 스스로를 돌보는 일조차 녹록지 않음이 지극히 정상 아니겠는가. 타인이 무슨 일을 하건 그건 그 사람 나름의 삶의 방식일 뿐, 굳이 궁금해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미주알고주알 남의 삶에 대해 관여할 권한이 우리에겐 전혀 주어져 있지 않다. 혹여 우리 시선으로는 백수가 되어 집에서 노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사람 나름으로의 삶을 대하는 자세와 그를 풀어나가는 독특한 방식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이를 인정해 주기는커녕 특정한 답을 원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명절에 자랑을 늘어놓거나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이기적인 행복을 추구하려거든 차라리 만남 자체를 시도하지 말자. 그럴 시간에 설 음식 장만에 여념이 없을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며느리의 일손을 도와주는 게 훨씬 가치 있는 일일 테니 말이다. 아울러 지구 평화를 위한 첩경이기도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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