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블랙홀, 호기심과 상상력의 결정체 -『블랙홀 교향곡』

새 날 2012. 4. 2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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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 살다 보니 가끔 밤하늘을 쳐다봐도 별 하나 제대로 관찰하기 힘들다. 반짝이는 무언가 드문 보이는 경우는 있지만, 이마저도 별빛보다는 오고가는 비행선 내지 인공위성 불빛이 아닐까 하는 의심부터 든다. 고도성장의 부산물, 대기오염의 진행속도는 내가 나이를 먹어가는 정도보다 더욱 빠른 듯하다. 어릴 적 밤하늘 모습은 분명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현실적인 삶에 매몰되어 가고 밤하늘의 별빛이 사라진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별이며 우주 등의 얘기는 실상 내 관심 밖의 사항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어릴 적 순수했던 마음과 깨끗했던 하늘이 동시에 사라져버린 것처럼....

 

서울대학교 우종학 교수의 저서 "블랙홀 교향곡(동녘사이언스 출간)"은 이렇듯 지극히 현실적인 이들에겐 우주에 대한 새로운 호기심과 상상력을 북돋워 주기에 충분하다. 물론 과학에 관심 있거나 흥미 있는 학생들에겐 더 없이 훌륭한 참고서로 손색이 없다.

 

 

저자가 끄집어내어 풀어 쓴 내용들은 일개 행성 지구에 살고 있는 내가 바라보기엔 어마어마한 규모의 이야기다. 우주의 관점에서 인간의 존재란 티끌만큼도 안 되니 말이다.

 

나는 과학이란 분야가 몹시 딱딱하고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과학 관련도서를 평소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읽어도 쉽게 이해하기란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다행히 이 책에선 그런 점을 느끼기 힘들 정도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풀어 쓴 흔적이 역력하다. 평소 보기 힘든 생생한 이미지들은 덤이다.

 

블랙홀이란,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는 강한 중력을 가진 고밀도의 덩어리를 말한다. 이러한 블랙홀의 개념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그 후 200여년이 지나서야 학계에서 인정받게 된 사연도 흥미로웠으며, 실제 블랙홀을 찾기 위한 과학자들의 눈물 나는 노력과 그 결과물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과학분야와 달리 천문학 쪽은 이론을 검증할 수 있는 실험이나 관찰이 녹록치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관측장비를 개발하여 이론 검증에 온 힘을 기울인 결과 우주의 신비가 한 꺼풀씩 벗겨짐은 물론 새로운 사실도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외국의 첨단 장비들에 비해 우리의 그 것은 너무도 보잘 것 없다는 사실이다. 제대로 된 망원경 하나 갖추지 못한 열악한 상태에서의 연구활동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나마 조만간 우리도 큰 주경의 망원경 설치 계획이 있다 하니 늦었지만 다행이라 생각되며, 이왕 제작할 거라면 해외 여느 장비와 비교해도 손색없었으면 한다. 관측기기 제작 자체가 첨단산업이다. 기계, 전자, 제어, 컴퓨터공학 등 다방면의 첨단기술이 요구되어진다. 따라서 이참에 한국의 기술력을 종합 검증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든다.

 

처음엔 호기심과 상상력에서 빚어지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이론적 바탕이 되어 정립된 블랙홀의 개념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첨단 관측기기들이 속속 개발되면서 놀랍게도 우리 앞에 실제 모습으로 등장하며 점점 구체화된다. 처녀자리에 위치한 3C273으로 명명된 괴상한 형태의 별은 나중에 "퀘이사"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며, 이 퀘이사가 블랙홀의 개념과 맞아 떨어짐이 밝혀진 것이다.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는 거대블랙홀 퀘이사의 실제 모습이 촬영된 사진을 보노라면 그저 놀랍기만 하다. 특히 전파망원경으로 찍은 시그너스A의 거대한 제트 뿜는 이미지는 흡사 예술사진을 방불케 한다.

 

 


우리은하의 중심부에 거대 블랙홀이 존재하며, 대부분의 은하에도 블랙홀이 자리하고 있단다. 그럼 지구에서 볼 때 각종 티끌이나 먼지 등에 가려 보이지 않는 우리은하의 중심부에 블랙홀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해 내었을까. 이 역시 17세기 블랙홀의 개념을 제일 먼저 창조해낸 영국의 존 미셸이 제안한 방법을 이용했다 한다.

 

별 또한 생명체처럼 탄생과 죽음을 맞이한다. 별은 핵융합을 통해 엄청난 에너지를 뿜으며 스스로 빛을 내는데, 내부 에너지를 모두 사용하게 되면 결국 죽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별, 태양도 앞으로 50억년 후면 그 생명을 다한다하니 역시 영원불멸한 존재는 없는가 보다.

 

그럼 블랙홀과 별의 죽음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별의 죽음은 별의 크기에 따라 세 가지 시나리오로 나뉜다. 태양을 기준으로 이 보다 그리 크지 않은 별들은 핵융합이 멈추면 질량을 대부분 잃어버리고 백색왜성으로 변신한다. 태양 질량의 열 배 쯤 되는 별들은 핵융합이 멈춤과 동시에 초신성이란 거대폭발과 함께 대부분의 질량을 잃는다. 하지만 남은 핵이 찬드라세카의 한계보다 크기에 백색왜성은 될 수 없고, 중성자별로 최후를 맞는다. 태양 질량의 열 배보다 훨씬 무거운 별들은 초신성 폭발을 거치지만, 남은 핵의 무게가 태양 질량의 세 배를 넘기에 내부로 붕괴하여 블랙홀이 된다.

 

블랙홀이란 개념이 17세기에 탄생하였고, 200여년이 지나서야 이론으로 정립, 그 후 수많은 연구와 검증이 이뤄져 오늘날과 같은 결과가 도출되었다. 그동안 많은 과학자들의 노력과 성과는 정말 눈이 부실 정도다. 그러나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17세기 영국의 존 미셸이란 학자의 상상력과 호기심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결과가 있었을까.

 

인류의 끊임 없는 발전은 아마도 존 미셸과 같은 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이 듦이란 경험이 많아진다는 것을 뜻한다지만, 반대로 경험이 늘어나는 만큼 상대적으로 호기심이나 상상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방증이리라. 아무래도 익숙한 것만 찾으려 하고 낯선 것들을 외면하는 난, 나이 듦이란 핑계로 호기심과 상상력을 스스로 억제해 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호기심 없는 삶이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것인지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앞으로 내 살아가는 모든 방식과 삶에, 비록 작은 호기심일지언정 또한 엉성한 상상력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곁들여 볼 생각이다.

 

끝으로 오랜 시간 나의 뇌 한 쪽 영역으로부터 가출해 있던, 우주/별/은하/블랙홀과 같은 개념들을 불러들여 풍부한 이론과 함께 곰곰 생각해 볼 기회를 준 저자 우종학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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