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커피를 사실래요, 시간을 사실래요?

새 날 2015. 11. 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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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카페를 이용하는 이유는 여럿 있다. 우선 친구와의 만남이든 아니면 연인과의 데이트가 됐든 그렇지 않으면 일 때문에 이뤄지는 만남이든 간에 어쨌든 우리가 삶을 영속하는 동안 이미 맺었거나 현재 맺고 있고, 그도 아니면 새로이 맺게 될 사회적 관계의 형성과 이의 지속적인 유지를 위한 매개체로서의 존재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물론 혼자만의 시간, 즉 짜투리 시간 소비 내지 그냥 이유없는 시간 죽이기 등이 필요해서일 수도 있겠고, 혹은 오로지 커피를 마실 요량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더러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근래엔 실용적인 목적으로 이를 찾는 손님들이 부쩍 느는 추세란다. 무엇보다 쾌적한 시설에다 무선랜과 전원 등이 잘 갖춰져 있는 탓에 장시간 동안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그의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한 통계 하나를 살펴보자. 인크루트가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취업준비 어디서 하나요’라는 주제로 설문조사한 결과 설문 대상자의 37%가 카페를 꼽아 여타의 장소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카페라는 공간이 어느덧 공부 등 실용적인 장소로 인식되고 있는 모양새다. 

 

ⓒZiferblat 홈페이지

 

현실이 이러하다 보니 웃지 못할 현상마저 빚어지기 일쑤다. 커피 한 잔 시켜놓은 채 하루종일 앉아 있는 이른바 진상이라 불리는 고객들 때문이다. 지나치게 낮은 테이블 회전율이 카페 업주들을 적자에 시달리게 만들고 있노라는 속사정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고작 아메리카노 한 잔 시켜 놓은 채 한나절 이상 스터디룸처럼 사용한다는 온라인에 올라온 글을 향해 진상 손님이라며 이를 비난하는 댓글과 자기 돈으로 커피값을 지불하고 이용하는 건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등의 댓글이 난무한 채 서로를 헐뜯는 현상은 우리 사회에선 어느덧 낯익은 풍경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 듯싶다. 미국의 뉴욕만 해도 장시간 진을 치는 손님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아이디어와 업주의 꼼수 따위가 속출하고 있단다. 일례로 카페 내에서 노트북을 사용하지 못하게 전원이나 무선랜을 아예 없애거나 일부러 의자를 적게 비치하고 등받이가 없는 편치 않은 의자를 두는 방식 등이다. 심지어 화장실을 폐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카페 업주들의 불만이 상당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좌석의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이와 관련하여 한 기자의 사례를 들어보자. 뉴욕에서 종종 찾던 카페에 모처럼 들렀더니 ‘이 곳은 집이 아니며 라운지, 스터디룸, 혹은 무료 와이파이 사용을 위한 커뮤니티 센터도 아닙니다. 카페는 엄연히 비즈니스입니다.’ 라는 안내문이 입구에 떡하니 걸려 있더란다. 주인장의 분노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어투임이 분명한데, 이 사례만으로도 업주 입장에서의 카페와 손님 입장에서의 카페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어느 정도에 이르는가를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현실적인 얘기를 한 번 해볼까?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과연 몇 시간 동안 카페에 머무는 게 적당한 걸까? 이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할 테지만, 사실상 해답은 없다고 보는 게 맞을 듯싶다. 카페에서 판매하고 있는 건 커피 등 각종 차와 음료 그리고 스낵 종류이지 카페에 앉아 있는 시간에 대해서는 별도로 규정할 수가 없는 탓이다. 만약 테이블마다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별도로 규정한다면 우리의 정서상 정내미가 떨어진다며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길 공산이 크다. 결국 카페 업주 입장에서는 전적으로 손님들의 양심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딜레마는 이로부터 비롯된다. 즉 카페라는 공간은 커피를 구입하여 이를 마시는 장소로서의 개념인데, 근래엔 쾌적한 시설과 환경 덕분에 단순히 차를 마시기보다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서의 개념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탓이다. 이 대목에서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우리는 카페에 커피를 사러 가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을 사러 가는 것일까? 테이크아웃이 아닌 이상 둘 모두가 맞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실은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는 없는 입장일 테다.

 

근래 이러한 모호함에서 착안된 듯한 새로운 개념의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른바 '안티 카페'다. 이름에서 감이 대충 오겠지만 기존의 카페와는 정반대의 컨셉이다. 즉 카페에 머무는 시간을 판매하는 대신 커피나 식음료 따위의 것들에 대해 무료로 제공해주는 곳이다. 참신하지 않은가? 앞에서도 언급했듯 요즘 젊은이들은 단순히 커피를 마신다기보다 스터디를 위하거나 휴식을 위한 공간을 원하고 있다. 현대인들의 새로운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그에 걸맞는 개념의 상품이 탄생한 셈이다.

 

ziferblat.net 캡쳐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시간제 카페 시스템은 지난 201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치페르블라트(Ziferblat)’라는 카페가 개설되면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카페의 홈페이지에는 ‘당신이 이 곳에서 사용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무엇이든 무료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안티 카페는 현재 유럽을 중심으로 점차 확산 추세에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얼마전 등장했다고 하니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싶다.

 

앞으로는 카페에 앉아 있으면서 너무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불안해 하며 눈치를 보거나 민폐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필요가 없게 될 전망이다. 이용 목적에 따라 자신에게 적당한 장소를 고르면 될 테니 말이다. 단순히 커피 등을 마시며 관계 형성 및 유지를 위한 만남 등과 같은 애초 카페라는 상업적 공간의 등장 취지에 부합하는 본연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예전과 같이 기존 카페로 발길을 옮기면 될 테고, 굳이 커피 구입 목적이 아닌, 조용하고 쾌적한 장소에서의 시간 활용을 원한다면 이러한 안티 카페를 이용하면 될 듯싶다.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빚어지고 있는 갈등과 마찰의 불편함이 작용 반작용 현상으로 이어지고 역발상이라는 참신한 결과를 낳은 게 아닐까 싶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커피를 사시겠어요 아니면 시간을 사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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