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헬조선'의 대유행, 한국 사회 향한 경고신호인가

새 날 2015. 10. 5.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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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이니 '흙수저'니 하는 신조어가 근래 언론을 통해 급격한 빈도로 노출되고 있는 양상이다. 언론들은 이를 2015년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하는 인터넷 유행어로 꼽고 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비하적 표현이 도를 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일 또한 잊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인터넷 유행어를 만들어내는 이들은 젊은 세대들일 터, 작금의 청년세대 앞에 놓인 현실이 얼마나 각박하고 어려운 것인가를 여실히 드러내는 징표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어쩌다 우리 청년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보다 자기비하에 더 익숙해진 것일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둘로 나뉜다. 같은 사안을 두고서도 언론사의 지향점과 정치적 성향에 따라 해석이 분분한 탓이다. 그 중에서 한국경제가 내놓은 기사 하나를 살펴보자. "나라 탓하는 '헬조선'.. 부모 탓하는 '흙수저'"라는 제하의 기사인데, 이의 논조는 한 마디로 작금의 자기비하 현상이 선진화하지 못한 질 낮은 시민의식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경제 규모나 국제적 지위에 걸맞지 않게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남에게 미루는 '남 탓 문화'가 심각한 탓이란다. 문제만 생기면 남에게 책임을 미루는 이들을 비판하는 단어인 '남탓충'이 유행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머니투데이

 

대기업을 탓하는 문화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사회 일각에서 최근의 경기 침체를 대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풀지 않은 탓으로 돌리고 있는 데에 대해 2012년 비금융 상장사의 총자산 대비 현금성 자산 비중은 9.3%로 그 비중이 14.8%에 이르는 유럽연합 등에 비하면 낮은 수준임을 강조하고, 한국 대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데 국내 잣대로만 평가해선 안 된다며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진화된 시민의식이란 게 과연 구체적으로 무얼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애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공정하지 못한 경쟁과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누릴 수 없는 환경이라면 제아무리 선진으로 중무장한 시민의식을 들이댄다 하더라도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구조적인 모순에서 비롯된 현실의 고난을 젊은이들이 이런 식의 자조 섞인 비하적 표현이나마 나타내고 있는 현상을 어쩌면 다행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방식으로라도 자신들의 고충을 표현할 출구가 없다면 훨씬 끔찍한 형태로 발현될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아울러 대기업을 탓하는 문화가 잘못됐다며 재벌의 편에 서고 있지만, 한국의 국민총소득(GNI)에서 기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그나마도 설득력은 떨어진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 4일 OECD 회원국의 제도부분별 소득비중을 분석한 결과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한국의 GNI 대비 기업소득 비중은 평균 25.19%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우리의 기업소득은 2000년 이후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재벌 및 부자 감세 정책으로 일관해온 정부의 정책 덕분에 기업 소득이 높아졌음에도 낙수효과로 이어지지 않은 채 사내 유보금만 차곡차곡 쟁여놓은 결과가 되고 만 것이다.



'헬조선' 내지 '흙수저'라는 젊은이들의 자기비하적 표현은 결국 국가와 사회로부터 도무지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자포자기적 현상 중 하나로 봐야 함이 옳다. 곰곰이 생각해 보라. 젊은이들이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고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충분히 얻을 수 있는 환경이라면 굳이 왜 이런 자기비하에 빠져들겠는가. 가장 비근한 사례로 최근 5년간 한국의 자살 사망자 수를 들어보자. 언론이 전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자 수는 전세계의 주요 전쟁 사망자 수보다 2-5배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청년층의 경우 사망률 1위로 자살이 꼽힐 만큼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쯤되면 헬조선이란 단어가 괜한 게 아니지 않겠는가.

 

'헬조선'의 표현을 일종의 사회에 대한 경고등이라 여길 때 그 점등 시점이 참으로 절묘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미증유의 어려움에 봉착해 있으며, 지금보다는 앞으로가 더욱 우려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문제는 단순히 한 영역만이 아닌 모든 부분에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는 점일 테다. 경제적으로는 전 업종에서 이미 경쟁력이 다해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할 시급한 판국이나 여의치가 않고, 외교적으로는 수십년 전 나라를 잃거나 반으로 쪼개졌던 상황과 엇비슷한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더욱 암울하다. 국민들로 하여금 그나마 작은 희망이라도 부여잡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할 야당은 존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쇠락했고, 부패한 정치 집단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는 상황에서 그들의 장기집권이 가시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신기하게도 이들 부패한 정치 집단이 우리를 작금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때만 되면 다시금 그들에게 몰표를 던져주는 유권자가 다수를 이룬다. 아마도 젊은이들은 이러한 현상에서도 절망감을 느끼며 기성세대를 욕하고 부모세대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고령사회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출산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데 노인의 수는 점차 늘어나며 나라 전체가 늙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들의 노후를 보장해줄 만한 여력이 국가에 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아니 관심조차 없는 눈치다. 때문에 헬조선이니 흙수저니 하는 현상은 어쩌면 임계치에 도달한 한국 사회에 보내오는 마지막 경고 신호일지도 모른다.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이를 알리고 있는 셈 아닐까?

 

ⓒ국민일보

 

무능하기 짝이 없는 정부가 그동안 내놓은 정책은 죄다 허울 좋은 '개혁'이란 이름을 내걸고는 있지만 여전히 탁상공론 수준에 그쳐 현실의 어려움을 단순 봉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부분의 정책이 수준 이하이다. 미래를 예측하고 이에 적절하게 대비하길 이들로부터 바란다는 건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청년희망펀드는 그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돈 몇 푼 모아 청년들의 일자리를 해결한다는 발상 자체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다.

 

청년들의 자기비하는 모 일간지가 지적하고 있듯 남 탓에서 비롯된 경향이 크다. 하지만 남 탓을 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게 되면 거기엔 어떤 수를 써도 해결할 방도가 전혀 없는 젊은이들의 절망감과 아우성으로 가득하다. 정작 문제는 이러한 결과가 단순히 어떤 사안 하나로부터 불거진 게 아닌, 사회 전반의 구조적인 모순이 더해진 결과라는 데에 있다. 결국 한 치 앞의 미래조차 전망하지 못하고 그에 대비하지 않은 국가가 이와 같은 환경을 만들어놓은 셈이다. 그나마 이렇듯 경고음을 울리는 상황에 대해 고맙게 받아들이고 이를 기회로 삼아야 함이 옳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젊은이들의 헬조선이라 외치는 아우성의 공포는 가까운 시일 내에 진짜 현실로 우리 앞에 느닷없이 들이닥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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