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청년희망펀드' 강제 가입 논란, 도입 취지는 어디로?

새 날 2015. 9. 23.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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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노사정 대타협을 계기로 제안하며 1호로 기부했던 청년희망펀드의 가입 붐이 일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황교안 총리 등 정부 및 지자체 관료와 금융권 그리고 정치권 인사까지 나선 채 너나 할 것 없이 이의 가입 행렬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년희망펀드는 KEB하나, 신한, 국민, 우리, 농협은행 등 5개 시중은행을 통해 가입할 수 있으며, 22일 현재까지 단 이틀 동안 2만 1670계좌 3억 8031만원을 기부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해당 펀드를 통해 조성된 기부금은 청년 구직과 일자리 창출 지원을 위해 설립될 '청년희망재단'의 청년 일자리 사업 지원에 사용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청년구직자,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으로 1년 이상 취업하고 있는 불완전취업 청년, 학교 졸업 뒤 1년 이상 취업을 하고 있지 못한 청년들에게 해당 기금이 우선 지원된다고 합니다.

 

ⓒ뉴시스

 

청년실업은 어느덧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의 해결을 위해선 어떤 방식이 되었든 사회 구성원 간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청년희망펀드라는 아이디어를 직접 내고 이의 가입을 통해 정부나 기업 그리고 국민들로 하여금 청년층의 고충을 헤아릴 수 있도록 주위를 환기시키고, 더 나아가 청년 고용의 중요성을 일깨운다는 측면에선 굉장히 긍정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모든 일엔 명과 암이 존재하듯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 청년희망펀드 역시 일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청년희망펀드를 출시한 시중은행에서 직원들에게 펀드 가입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가입을 필두로 금융권에선 신한 하나 KB금융 등 3대 금융지주 회장과 전 경영진이 이에 가입하기로 하면서 사실상 이러한 결과는 벌써부터 예견됐던 사안입니다. 특히 그 어느 곳보다 상품 실적 경쟁이 치열하여 평소에도 직원들에게 자사 상품 판매를 강요해오던 업계 관행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이 같은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결과였습니다.

 

실제로 언론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모 은행은 각 사업본부와 영업점별로 자사 직원들의 청년희망펀드 가입률을 집계 관리하고 있고, 일선 영업점에선 지점장이 나서 가입하지 않은 직원들에게 계좌 개설을 주문하거나 이미 가입한 직원들에겐 가족 등 다른 사람 명의로의 추가 가입을 요구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창구 직원은 1만원, 창구 뒤의 책임자급 직원은 2만원씩 일률적인 가입이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이 피부로 와닿는 건 실제로 영업 점포 간 그리고 직원 간 실적 경쟁이, 액수보다는 계좌 개설 건수 위주로 흐르는 경향이 큰 탓입니다.



실적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어느새 가입자가 누구인가는 중요한 요소가 아닌 게 돼버렸습니다. 직원도 모자라 고객뿐 아니라 주변 지인들까지 총 동원하여 계좌 개설을 종용할 테고, 그러다 보면 파트타임이나 청원경찰 등 계약직 직원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이의 가입을 강요하는, 결코 웃을 수 없는 결과마저 빚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 직원들은 오히려 청년희망펀드의 수혜 대상자일지도 모르는 현실이기에 이러한 결과가 못내 씁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행태는 비단 금융회사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일까요? 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금융회사가 더욱 불거질 수밖에 없었던 건 해당 펀드를 직접 다루고 있거니와 순전히 업계의 실적 경쟁 관행 탓이 크기 때문이지 다른 영역 역시 정도의 차이만 존재할 뿐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일례로 국무총리가 펀드에 가입했다면 국무총리실의 다른 직원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요? 가뜩이나 경직된 우리의 조직 문화에서는 힘든 얘기 아닐까요?

 

청와대는 애초 기업 명의의 기부는 받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정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입장인 기업들의 실적 경쟁을 부추긴다는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는 각계각층의 자발적 참여를 바라는 청년희망펀드의 취지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싶습니다. 말이 그렇지 가뜩이나 제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대통령 아니던가요? 좀처럼 창의적이지 못하고 경직된 사회 구조 아래에서의 행정부 수반의 일거수일투족은 결국 여타의 경우보다 강력한 영향을 미치며 마치 흐르는 물처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기 마련 아닐까요? 

 

앞서도 살펴봤듯 대통령의 펀드 가입 이후 국무총리로부터 시작하여 정치권 금융권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이에 동참하고 있는 건 비단 자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대통령의 한 마디면 쩔쩔 매야 하는 관료 사회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정치권마저 휘어잡은 채 쥐락펴락하고 있는 대통령이거늘, 직접 자신의 월급 일부를 기부하는 행동을 보이는 상황에서 이를 외면할 수 있는 강심장들이 우리 사회엔 그리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청년희망펀드는 이름만 펀드일 뿐 원금을 되돌려 받거나 이자가 나오는 그러한 종류의 상품이 아닙니다. 공익신탁이기 때문입니다. 공익신탁이란 개인이나 법인이 재산을 어떤 일정한 공익 목적에 사용하기 위하여 신탁하는 성격의 것입니다. 따라서 원하는 사람만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상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에서건 간에 비자발적인 가입이 이뤄지고 있는 건 청와대도 언급했듯 애초 해당 펀드의 설립 취지와는 결코 어울릴 법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청년희망펀드가 그 이름과는 달리 해당 기금의 구체적인 사항이나 운용계획이 제대로 알려진 바 없는 데다, 근본적인 청년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멀다는 한계가 엄연한 탓에 애초의 목표에 과연 얼마나 부응할 수 있을지가 의심스러운 대목이긴 합니다만, 어쨌거나 청년들이 겪고 있을 고통의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케 한다거나 청년 고용의 중요성에 대해 대중들에게 일정 부분 알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마련된 해당 펀드의 기금 조성이 지금과 같이 왜곡된 방향으로 흐른다면 가뜩이나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는 오히려 절망감으로 되돌아올 공산이 큽니다. 이는 애초 펀드 조성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 결과입니다. 이름만 자발적인, 반강제적인 기금 동원 붐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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