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위기의 한국 경제와 외교, 정부의 현실인식 수준은?

새 날 2015. 9. 2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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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계절일까? 세상은 온통 우울함 천지이니 말이다. 나 역시 경기가 어렵다는 현실을 충분히 체감하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와 관련한 각종 지표들이 봇물을 이룬다.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리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국내외 주요 경기 예측기관들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대로 점치며 미국 금리 인상, 중국 경제 불안, 신흥국가 위기 등 각종 변수의 움직임에 따라 더 낮아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노라는 것이다. 실제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5년 후 1%대까지 주저앉을 것이라는 암울한 관측도 나온다. LG경제연구원은 2020-2030년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평균 1.7%로 전망하고 있다. 갑갑한 노릇이다.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다. 한국 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이랄 수 있는 수출마저도 심각하게 부진할 전망이란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한국 수출액은 작년보다 4-6% 줄어들어 6년만에 최대의 감소율을 기록할 것이라 예상했다. 1960년 이래 우리의 수출이 감소한 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과 그 후유증을 겪었던 2001년,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과 유럽 재정위기 당시인 2011년, 모두 네 차례에 불과하다. 이렇듯 수출이 감소했던 해는 모두 국가적 경제 위기 상황이라는 특별한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그에 반해 올해는 그 성격이 판이한 탓에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없다.

 

ⓒ헤럴드경제

 

이렇듯 우울함 일색인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한국 경제 위기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각에서는 우리 경제에 대한 비관론도 있지만, 이번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인정했듯이 세계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보다 나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나친 비관과 비판의 늪에서 빠져나와 경제체질을 바꾸고 혁신을 이뤄야 한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 온 경제 활성화와 구조개혁 노력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일본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의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거둔 성과가 더욱 뜻깊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긍정적인 표현과는 달리 어쨌거나 우리의 경제가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한 입장이고, 외교적인 입지 또한 그에 비견될 만큼 곤혹스러운 처지임은 분명하다. 일본의 안보법안 제개정은 우리의 외교 지형을 크게 흔들고 있는 모양새다. 동북아 전체에 미치는 파장이 어마어마할 전망이다. 중국 견제라는 미국의 아태 재균형 전략에 따라 일본이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보통국가화 됨으로써 한미 동맹은 자연스레 미일 동맹이라는 큰 축의 한 줄기로 전락하게 되고, 동북아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무게중심은 일본을 가운데에 둔 채 우리를 비롯한 기타 조건들을 그에 끼워맞춰 저울질하는 형국이 됐다. 우리로서는 당장 전범국인 일본의 재무장과 한반도에 자위대 파병 가능성이 점처지는 상황을 개탄스러워 해야 할 노릇이지만, 한미일 동맹의 최종 목표가 결국 중국 견제를 향해 날이 서있기에 중국과의 관계 유지 또한 염려스러워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결국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 일본이라는 변수마저 더해지며 우리의 외교적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양상이다. 일본이 어떤 나라인가. 과거 우리와 주변국들에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치욕을 안겼던 전범국이다. 이런 나라가 미국 중국 등의 패권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다시금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된다 하니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중국 군사력과 맞먹는 일본의 그것, 이들의 보통국가화는 불과 수십년 전에 일제 침략의 아픔을 겪은 채 여전히 그의 후유증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로선 단순히 한반도에 자위대를 파병하느냐 마느냐 따위의 문제가 아닌,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할 처지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 지역의 긴장 고조는 결국 군비 경쟁을 가속화할 공산이 크며, 이는 재차 긴장감을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자리잡을 가능성마저 높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전 우리가 처한 외교적 현실에 대해서도 별도의 언급을 한 바 있다. 지난달 13일 국정과제세미나에서 "외교적으로 무슨 일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나라가 또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겠네' 라고 생각하면, 우리의 국격에도 맞지 않는 패배 의식에 불과하다"며 이른바 ‘창조외교론'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미래의 성장 동력을 발굴하지 못할 경우 점차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데다, 외교적으로는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 속에서 또 다시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한 채 녹록지 않은 처지로 내몰리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아니 어쩌면 국가의 명운이 달릴 정도로 중차대한 시기를 맞은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때문에 국정최고운영자인 대통령이 때마침 이러한 상황에 대해 직접 언급하고 나선 건 시기적으로 볼 때 매우 적절했다는 판단이다.

 

두 사안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에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 내지 기조는 다름아닌 '창조'다. 일찍이 창조경제를 설파했던 박 대통령이 이번엔 외교 영역에서마저 '창조'를 꺼내든 셈이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던져준다는 건 상당히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가 어렵다는 주장에 대해 신용평가사들이 높은 신용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고 있고, 다른 나라에 비해 나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대통령의 주장은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말일 테지만, 지극히 안이한 판단이 아닐까 싶다. 과거 비슷한 사례가 있기에 더욱 그렇다. 참고로 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10월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은 이탈리아, 호주, 스웨덴과 함께 AA-, A1의 매우 우수한 등급을 유지한 바 있다. 이후 어떠한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청와대

 

박근혜정부 들어서면서 처음 창조경제를 꺼내들었을 당시의 그 개념적 모호성이,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전국적으로 들어서고 있고 언론에 오르내리는 지금이라고 하여 바뀐 건 전혀 없다. 아울러 제아무리 이를 외교 분야에 덧칠한다 해도 그저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질 뿐, 앞서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은 구한말과 해방직후의 모습과 무척 닮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 한 차례의 판단 오류는 자칫 우리 민족 전체를 결코 헤어나올 수 없는, 공멸이라는 참화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사안이다. 일본의 안보법 통과를 긍정적인 요소로 바라보기엔 무리라는 의미이다.

 

'우리 경제는 튼튼하다, 신용등급이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라며 국민들을 설득시키다가 IMF 외환위기라는 미증유의 고통 속으로 나라 전체를 몰아넣은 경험이 있듯, 강대국이 한반도 주변에서 패권 경쟁을 벌이며 우리를 옥죄는 상황에서도 지도자가 무능함과 거짓으로 일관하다 결국 국가를 빼앗기고 나라를 둘로 쪼개놓았듯, 작금의 어려운 상황을 '창조'라는 여전히 모호한 정체성으로 포장한 채 국민들을 현혹시켜서는 안 될 노릇이다. 올바른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국민들을 북돋고 희망을 불어넣는다면 또 모를까, 무조건적인 장밋빛 전망 일색은 결국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와 진배없기 때문이다. 짧게는 십여년 전, 그리고 길게는 수십년 전의 교훈을 절대로 잊어선 안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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