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8월14일 임시공휴일 지정 검토가 못마땅한 까닭

새 날 2015. 8. 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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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형제의 난'이라 불리는 연매출 83조원, 임직원 23만여명의 재계 서열 5위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이다.  언론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롯데그룹의 이번 사태를 하루가 멀다 하고 헤드라인으로 장식한 채 뜨거운 관심을 보이며 세간의 이목을 모으는데 모든 화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모양새다.  덕분에 그다지 관심 밖이었던, 아니 전혀 알고 싶지 않았던, 롯데 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의 상세 가계도까지 반 강제적으로 눈에 익혀야 할 정도로 언론들의 반응은 뜨겁다. 

 

재벌가의 경영권 다툼은 잊을 만하면 한번씩 불거질 만큼 우리에겐 낯설지 않은 사건이다.  가장 비근한 사례로는 지난 2012년 삼성그룹 이건희, 이재현, 이맹희 형제 간 분쟁과 2009년 금호아시아나그룹 및 금호석유화학으로 분리된 금호그룹 분쟁 그리고 형제들 간 다툼 끝에 박용오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결국 비극으로 마무리된 두산그룹 분쟁을 꼽을 수 있다.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오를 경우 2000년 현대그룹 '왕자의 난'과 1992년 한화그룹 김승연, 김호연 형제 간 갈등 따위를 접하게 된다. 


돈 앞에선 형제도 부모도 없는, 마치 막장 드라마와도 같은 이러한 세태를 바라보면서 한창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이를 과연 뭐라고 설명을 해 주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가뜩이나 돈이면 못 할 일이 없고 많으면 많을수록 더 없이 살기 좋은 곳이 대한민국이라 회자되는 본격 물질만능시대 앞에서, 물보다 훨씬 진한 피가 돈 앞에선 온전히 기조차 펴지 못 하는 기이한 현상을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때문에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남의 가정 가계도까지 파헤쳐 가며 막장 드라마 각본 써내려가듯 과도하게 들추고 있는 언론의 관심이 내겐 못마땅하게 다가온다.  제아무리 영향력이 막강한 재계 서열 5위라 해도 그렇지, 국민 정서상 그다지 좋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극히 재벌가다운 그들만의 리그를 언론들은 왜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이렇듯 강제로 주입시키려 드는가.  정작 국민들이 알고 싶어하는 사안에 대해선 보도 자체를 꺼린 채 아예 다뤄 오지 않다가도 어째서 지극히 막장 요소가 가미된 가십거리에 불과한 사안에 대해선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해 가며 대서특필해야 하는가 말이다.

 

ⓒ연합뉴스

 

물론 언론들의 이러한 행태에 대해 수확이 전혀 없다고만 할 수는 없다.  이 과정을 통해 롯데의 전근대적 경영 행태와 투명하지 못한 기업의 지배구조 등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탓이다.  23만명에 달하는 임직원을 거느릴 정도의 거대 기업 집단의 지배구조가 고작 몇 명도 되지 않는 일가족에 의해 맡겨진 채 이들의 가족회의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묘한 광경은 그야말로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는 이러한 기형적인 현상은, 가뜩이나 좋지 않은 재벌 기업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시각을 더욱 안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을 뿐이다.

 

한편 정부가 올해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이번달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광복 70주년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메르스 사태 등으로 인해 심각하게 침체된 내수를 진작하기 위한 취지로 읽힌다.  그동안 임시 공휴일 지정은 88 서울올림픽 개회식날과 2002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을 기념하기 위해 폐막식 다음날 등 총 두 차례만 실시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이례적인 사안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정부가 임시공휴일을 검토해야 할 만큼 광복 70주년이 특별한 날이 맞긴 한 걸까?  물론 우리 민족 모두가 기뻐해야 할 만큼 뜻 깊은 날인 것만은 부인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70'이란 숫자보다는 '50', '100' 단위의 숫자가 훨씬 의미있게 다가오지 않을까?  '50주년' 내지 '100주년'이란 상징성에 비하면 '70'이란 숫자는 그다지 설득력이 약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때문에 정부의 이번 임시공휴일 검토는 역사적인 의미를 기리기보다, 현재 산적해 있는, 현실적인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꺼내든 일종의 당근책이 아닐까 싶다.

 

ⓒYTN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달 1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가발전과 국민대통합을 위해 광복절 특사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후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이에 대한 준비작업에 본격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재계는 기업인들이 이번 사면 대상에 포함되기를 기대해 왔고, 박근혜 대통령이 긍정적인 검토 방침을 전하면서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기업인들이 포함될 가능성은 매우 높아졌다.  새누리당 지도부 역시 이에 대해 적극 지원하며 힘을 싣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친인척이나 특수관계인에 대한 대통령의 사면권 제한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역대 정부의 사면권 남용을 강하게 비판하고, 당선자 신분이던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최측근 인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 특사에 대해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잘못된 관행을 확실하게 바로 잡아야 한다며 일침을 가했던 적도 있다.  결국 박 대통령이 이번 광복절 특사를 단행하며 경제인들을 사면 대상에 포함시키게 될 경우 자신의 공약은 물론 금과옥조로 여겨오던 원칙과 신뢰마저 뒤집는 꼴이 되고 마는 게 아닌가.  따라서 8월 14일 임시공휴일 지정 검토는, 국민들로 하여금 부패 기업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켜 사면을 보다 원활하게 하기 위함인, 일종의 당근책을 제시하고 있는 정황으로 읽힌다.

 

재벌기업에 대한 국민 정서는 여전히 우호적이지 않은 편이다.  더구나 롯데 그룹의 진흙탕보다 혼탁한 형제 간 경영권 분쟁 사태는 이를 더욱 악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대통령은 국민대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운 채 경제인 사면을 위한 군불을 떼고 있는 모양새다.  즉, 임시공휴일이라는 달콤한 미끼를 통해 경제범죄 행위를 일삼아 온 재벌 기업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좋지 않은 감정과 정서를 최대한 무디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대통령 자신이 입버릇처럼 말해 왔듯,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잘못된 관행을 되풀이해선 절대로 안 되며 이 같은 관행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정부패 혐의로 현재 형을 살고 있는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이 이뤄져선 안 된다.  이번 임시공휴일이 만에 하나 이를 위한 기름칠과 같은 사전 정지 작업이라면, 이는 과거 임시공휴일 지정과는 달리 전혀 명분 없는 결과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누군들 휴일을 주겠다는데 이를 마다하고 싶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연유 때문에 내겐 정부의 임시공휴일 검토가 무척 못마땅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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