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국정원 대선개입 판결, 좌절감 벗는 계기 되길

새 날 2015. 2. 1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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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9일 항소심에서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 모두에 대해 유죄 선고를 받고 법정구속됐다.  1심에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무죄 선고와는 정반대의 결과다.  재판부의 선고 배경은 다음과 같다.   

 

"정보기관의 선거 개입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상화되거나 합리화될 수 없는 문제다.  이 사건은 헌법이 요구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외면한 채 국민의 정치적 의사 결정에 개입한 것으로써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근본적인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국가기관이 사이버 공론장에 직접 개입해 일반 국민인 양 선거 쟁점에 관한 의견을 조직적으로 전파해 자유롭게 논쟁하던 일반 국민들이 사이버 공간의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는 1심에서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았던 국정원 직원의 트위터 계정이 2심에서는 증거로 대거 채택되면서 이를 통한 온라인 활동 분석이 재판부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결과다.  즉 단순 정치 관여 글과 선거 개입에 해당하는 글이 차지하는 비중을 재판부가 분석한 결과 18대 대선 국면에 접어들 즈음부터 후자에 해당하는 글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점에 주목하고, 특정 시점 이후의 온라인 댓글 활동을 선거운동으로 볼 소지가 다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수석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국정원은 국가 안위를 수호하는 정보기관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국가기관이다.  국정원은 잘못이 재발하지 않도록 심기일전해 재발 방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다분히 의례적인 멘트였으며, 진짜 속내는 모 언론과의 접촉으로부터 드러나고 있다. 

 

즉 국정원장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하여 대선 자체를 불법선거로 볼 수는 없는 노릇이며, 더불어 국정원의 행위가 대선 결과에 영향을 주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애써 그 의미를 축소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재판부의 판결에 따르면 18대 대선은 대통령의 자격 요건을 명시한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된 불법선거임이 명백하기에 이는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서울신문

 

새정치민주연합은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사필귀정이다.  늦었지만 법치주의가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준 뜻 깊은 판결이다.  국가기관이 불법으로 지난 대선에 개입했노라는 사실이 법적으로 인정됐기 때문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과해야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의 대선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권력기관의 대선개입에 대한 입장과 앞으로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분명한 대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라고 논평했다.

 

물론 대법원의 최종 결심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라 섣부른 판단은 아직 금물이다.  하지만 국가정보기관인 국정원이 대통령선거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최종 사실로 드러나게 될 경우, 18대 대통령선거는 명백한 불법선거가 되는 셈이라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에 아로새겨질 커다란 흠집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반성하는 기색 하나 없이 모든 잘못을 국정원의 탓으로만 전가시키려는, 예의 그 선긋기를 시도하고 있으며, 여전히 사건의 본질을 감추려는 일에만 급급해 하고 있는 눈치다.

 

이번 판결만으로 18대 대선은 불법선거임이 명백하니 대통령 더러 당장 물러나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고 하여 지금처럼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후안무치한 행태 또한 모두에게 득될 게 없지 않겠는가.  그동안 집권세력은 부정행위를 저질러온 세력에 대해 단죄는커녕 이들을 비호하기 바빴고, 반대로 옳은 주장을 펴는 이들에겐 온갖 불이익을 주는 등 국민들에게 허탈감과 좌절감만을 잔뜩 심어 주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진실과 정의를 갈구하며 안타까운 현실에 크게 분노하고 좌절했던 수많은 국민들의 아픔이 이번 판결을 통해, 비록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의 치유가 가능할 것으로 보여 무엇보다 반갑다.  무언가 결실을 맺지 못한 찜찜함으로부터 일정 부분 벗어나게 해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진실에 한 발자욱 가까이 다가섰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부여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러한 결과를 빚게 만든 집권 여당과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전임 이명박 대통령, 이들 모두의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고, 재발 방지 장치 마련을 통해 이 땅에서 다시는 비슷한 부정행위가 벌어지지 않도록 예방주사를 놓는 일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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