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불통과 공포가 사회 전체를 물들이는 방식

새 날 2014. 9. 20.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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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파리 경제대 교수가 한국어판 출간과 강연 등에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성장 일변도에 가려 있던 분배의 중요성과 부의 불평등 문제를 일깨운 그의 이론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던 찰나다. 

 

ⓒ연합뉴스

 

마침 피케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니 조심스레 끄집어내볼까 한다.  그와 대척점에 위치한 이론인 '낙수효과'란 게 있다.  경제학계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며, 그동안 주로 우파 경제학자들의 무기로 활용돼왔다.  부유층의 투자 및 소비 증가가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로까지 영향을 미쳐 국가 전체의 경기부양효과로 나타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대기업 및 부유층의 소득이 증대되면 더 많은 투자가 이뤄져 경기가 부양되고, 전체 GDP가 증가하면 저소득층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가 소득의 양극화가 해소된다는 논리이다. 

 

조금 더 쉽게 표현하자면, 위에서 떨어지는 물이 자연스레 아래로 흘러 어느덧 전체까지 스며드는 현상을 말하며, 국가 전체의 성장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미치고 대기업의 이익이 중소기업과 일반 서민들의 삶에 자양분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그럴듯한 가설이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최근 한국 경제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어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들의 경우 조 단위의 이익을 구가하고 있지만, 반대로 중소기업의 실적은 바닥을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성장세마저 미미하고 청년실업은 급증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한없이 열악해져만 가고 있어 모두들 살기 힘들다며 아우성이다. 

 

갈수록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쪼그라든 채 삶이 팍팍해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굳이 피케티의 이론을 빌릴 필요조차도 없다.  단언컨대 우리 사회에 낙수효과란 없다.  이 가설은 용도 폐기돼야 한다. 

 

낙수효과의 진실은 사실 이랬다...  ⓒ인터넷 커뮤니티

 

하지만, 과연 그럴까?  비록 경제학계에서 말하는 낙수효과의 가설이 적어도 우리 사회에선 실제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낳고 있지만, 그와 다른 영역에서는 정반대로 매우 잘 작동하는 듯싶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박근혜 대통령의 16일 국무회의 발언부터 살펴보자.  17분간 이어졌던 이날 발언의 백미는 다음의 두 문장이라 할 수 있겠다.

 

"세월호특별법은 여야 2차 합의안이 마지막 결단이었다. 더 이상의 추가협상은 없다"

 

"사이버상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과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어서고 있어 사회의 분열을 가져오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이 끝난 뒤 관련 부처들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일사불란하며 기민했다.  교육부는 세월호 노란 리본을 달지 못하도록 교육청 등 산하기관에 공문을 내려보냈으며,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에 따르면 경찰은 평소와 달리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시민에게 시위 장소를 옮길 것을 종용했단다.  대통령 면담 요청 절차도 복잡하게 바뀌어 유가족들의 애를 태우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한 마디에 하부조직 전체가 세월호 지우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모양새다.

 

ⓒ아시아경제

 

그중에서도 검찰의 움직임은 단연 군계일학 감이다.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사범 단속을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전담수사팀을 설치하고 선제적 대응에 나서겠노라고 18일 밝혔다.  이를 위해 방송통신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안전행정부, 경찰청, 한국인터넷진흥원과 주요 포털업체 등이 참여하는 유관기관 대책회의가 개최되기도 했다.  

 

악의적 허위사실 유포자는 물론이거니와 확산자 및 전달자 모두를 엄벌에 처하기로 했단다.  아울러 포털업체와 함께 상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허위사실 게시물은 즉시 삭제키로 했단다.  오로지 대통령을 향한 모독을 막기 위해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심지어 국민 감시까지 행하는 본격 공포정치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다.

 

검찰의 이와 같은 충성 행위는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여러 사례가 있지만 자꾸 말해 봐야 입만 아픈 상황이다.  때문에 가장 최근의 사례만 예로 들겠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적 논란을 보도했던 일본 산케이 신문사를 압박하며 국제적인 망신을 초래하더니, 인터넷과 SNS 등에 유언비어를 유포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명예훼손 사건 전담 수사팀’을 신설하여 진작부터 논란을 빚은 바 있다.

 

ⓒZUM 학습백과

 

마치 대한민국이 왕조국가라도 되는 양 우리 대통령은 여왕 행세를 하려 하고 있고, 짐이 곧 국가이자 짐의 발언이 곧 법이 되는 세상이니, 그 밑의 충복들마저 대통령이 무심히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에 과잉 충성 경쟁을 벌이기 일쑤다.  그러는 사이 대통령의 아집과 오만한 기운이 대한민국 산하 전체를 물들여가고 있다.  이땅의 주인은 오직 대통령 하나인 듯싶다.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생태계 먹이 피라미드의 최상단에 위치한 대통령, 그녀의 발언은 어느덧 낙숫물이 된 채 그 바로 아랫 단계의 먹이사슬인 2차 1차 소비자에게로 떨어져 스며들고, 다시 매우 빠른 속도로 흘러 생태계의 말단에 위치한 생산자에게까지 일순간 퍼져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점차 공포감과 불통의 기운으로 뒤덮어가고 있다.  

 

때문에 누가 뭐라 해도, 심지어 피케티가 제아무리 틀린 가설이라며 우긴다 한들 대한민국 사회에 낙수효과는 엄연히 존재하며, 현재도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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