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때아닌 겨울비에 몸 절반이 젖게된 사연

새 날 2014. 2. 2.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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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첫날부터 나의 서식지엔 비가 추적추적 내렸어요.  오전 내내 날이 꾸물거리더니 오후로 접어들자 마침내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하더군요. 

 

설 전날엔 음식 장만하느라 하루를 고스란히 헌납한 아내님을 위해 미약한 능력이나마 힘을 보태어 함께 만두를 빚어주었고, 저녁 늦게 일을 마친 뒤엔 가벼운 안마 봉사도 살짝 선을 보였답니다.  물론 큰 도움이 되지 못했으리란 생각에 그저 미안할 따름이지만요.

 

연휴 3일째 되는 날이 되어서야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리하야 겨울비가 구슬피, 아니 줄창 내리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콧바람도 넣고 아내님의 쌓인 피로도 풀겸 우린 하릴없이 서울 도심속으로 마실을 나갔더랬습니다.

 

빗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굵어지더니 마치 한여름에 내리는 소나기 마냥 꽤 많은 양으로 돌변해 있었어요.  과연 이렇게나 많은 양의 겨울비를 과거에 본 기억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사정없이 지상으로 내리꽂으며 겨우내 잊혀졌을지도 모를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어요. 

 

한참을 걷던 우린 어느덧 인사동 건너편 길로 접어들게 되었지요.  이 빗속에서도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나더군요.  특히나 선남선녀의 예쁘장한 연인들 모습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어요.  늘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기에 사실 명절 연휴 만큼 이들이 함께하는 데에 있어 좋은 기회도 드물겠죠.

 

겨울비 내리는 별궁길

 

아내님과 난 미친 척하며 감고당길, 별궁길을 쏘다니다가 삼청동을 찍고 다시 인사동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답니다.  많은 비 때문이었는지 거리 위 노점상들 모습은 당췌 볼 수가 없었고, 손에 쥔 우산은 우리의 활동 반경에 연신 제약을 가해 왔더랬어요. 

 

수많은 사람들을 스쳐갈 때마다 우산을 높이 들거나 반대로 낮춰, 서로를 배려해 주어야 하는 상황의 반복, 길바닥은 고인 빗물로 인해 어느새 흥건해져 걸을 때마다 질척이고...



그래요.  실은 두 중년 부부가 연인들 흉내를 내었다는 게 애초 원죄였던 셈이죠.  간만에 데이트 분위기 낸다며 우린 그리 넓지도 않은 우산 하나를 함께 받쳐 쓰다보니, 빗물로부터의 공격에 어느 한 사람 온전한 방어를 할 수 없었답니다. 

 

내딴엔 아내를 배려한답시고 우산을 쥔 손의 힘줄이 튀어나올 만큼 신경을 바짝 썼건만, 왼쪽에 위치한 아내님은 아내님 대로 왼쪽 어깨와 등짝이, 아울러 오른쪽에 위치한 난 나 대로 오른쪽 어깨와 등짝이 그만 쏟아지는 겨울비에 사이좋게(?) 흠뻑 젖고 말았네요. 

 

집에 돌아와 반반씩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 널고 있자니, 나나 아내나 왜 이리도 웃음이 나오는 건지..  부러 비를 맞으며 돌아다녔던, 철없던 어린 시절이 불현듯 떠올라 그랬던 걸까요?  

 

마구 쏟아지는 겨울비, 하나의 우산 속에서 '부부는 일심동치미'란 위안 아닌 위안을 빌미 삼아 비록 반반씩 젖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 흔치 않은 겨울비가 다시 내릴 즈음, 지금의 기억들이 우리에겐 또 하나의 고운 추억의 형태로 또렷이 자리잡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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