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에브리데이> 일상의 조각이 모여 삶이 완성된다

새 날 2013. 6. 13.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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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느낌의 영화다.  감독으로선 흥행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법한데, 철저히 이를 무시한 느낌이다.  적어도 내 느낌은 그랬다.  솔직히 재미없다.  아니 지루할 정도다. 

 

감독은 매우 불친절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마치 흑백의 무성 영화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감정의 기복 없이 꿋꿋하게 연출하더니, 결국 영화가 내포하는 의미마저 퍼즐 맞추듯 관객 스스로가 찾게끔 만든다.  물론 그러한 되새김질 없이 보통의 영화처럼 영상만으로 놓고 본다면, 아마도 기겁을 해야 할 정도로 무미건조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영화 속 일상들을 조각 조각 흩뿌려 놓아 관객들이 조각 맞춤을 스스로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아마도 감독의 노림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네 자녀와 아내 카펜(셜리 헨더슨 분)만이 남은 한 가정, 남편 이안(존 심 분)은 마약 복용 혐의로 영어의 몸이 되어 자유롭지 못 한 상태다.  네 명의 자녀를 홀로 건사해야 할 아내의 삶은 고달프기만 하다.  간간이 아이들과 함께 남편에게 면회를 가는 일이 유일한 낙이다.  그들 가족은 그의 출소만을 애타게 기다리며 힘든 나날을 버틴다.  그 그리고 그녀와 아이들의 일상은 그렇게 지속되고 있다.....

 

 

영화 도입 부분, 검은 화면에 배우와 스텝들의 이름이 뜨는 모양새가 마치 영화 끝나고 자막 올라가는 부분을 연상케 한다.  아마도 이 부분부터 보신 분들은 영화의 맨 끝 장면이라 여기기 십상일 듯하다.  그런데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독 커크가 들어간 배우 이름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네 명의 자녀로 등장한 아이들 모두 실제 형제지간이었는가 보다.  그들의 성이 모두 커크였다.

 

 

감독의 연출, 영화 제목에 너무 충실한 것 같다.  실제 일상을 살다 보면 무수한 평범한 날들 속에 때로는 위기와 난관 그리고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영화 속에서도 물론 그러한 일들 언뜻 그려진다.  하지만 감독은 이를 직접 묘사하지 않고 암시만 한 채 철저하게 그저 일상만을 화면에 담아낸다.

 

영화는 그래서 재미 없다.  무언가 사건이 터질 듯 말 듯 잔뜩 기대감만 부풀리다 결국 종영한다.  말 그대로 일상만을 보여 주려 의도한 감독의 철저한 계산에 의한 결과물인 듯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중간중간 간혹가다 보여지는 영국의 자연 경관은 생각보다 매우 수려했다.  이 장치는 세월의 흐름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하나의 일상을 각각의 퍼즐 조각으로 떼어내는 역할도 한다.  화면에 뿌려지는 경관의 계절과 모습은 매번 다르나 기괴한 음악은 한결 같다.

 

 

영상은 매우 거칠고, 소품이나 심지어 배우들까지 정돈되지 않은 느낌으로 와 닿는다.  우리네 삶의 실제 모습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런 형태로 재현해내려 한 감독의 의중인 듯하다. 

 

영화 속 아이들, 실제로 성장했다.  끝 무렵엔 처음에 비해 부쩍 커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 드라마에서처럼 아역 배우에서 갑자기 성인으로 워프하는, 그런 부자연스러움이 아닌, 조금씩 커 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촬영이 이뤄졌음을 짐작케 하는 것이고, 관객 입장에선 비록 지루하고 재미없는 연출로 보여지지만, 감독 입장에선 매우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진 작품이란 것을 간접적으로 확인시켜 준다.

 

일상을 살다 보면 무수한 어려움들이 우리 앞에 놓여진다.  때로는 갈등이 있을 수 있고, 커다란 좌절도 맛 보게 되며, 일탈을 꿈꿔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난관과 매일 매일 일상의 조각들이 한데 모여 비로소 우리네 삶의 퍼즐이 완성된다.  남편의 수형 생활로 인해 범상치 않은 삶을 살아온 이들 가족들도 수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일상이란 퍼즐 완성을 통해 다시 완벽한 한 가정을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우리네 삶 속엔 오만가지 다양한 일들이 녹아들어있다.  영화는 이러한 특별함 따위 철저하게 생략한다.  때문에 특별한 소재거리들을 찾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인 보통 영화와는 영 딴판이다.  감독의 고집스러움이 엿보인다.  매우 불친절하고 재미없고, 지루한 영화지만 신기하게도 종영 후 그들의 일상이 퍼즐 맞춰지듯 미리속에서 그려지며 긴 여운이 남는다.  아무래도 감독에게 농락당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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