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봄을 기다리며... 소설 <겨울을 지나가다>

새 날 2025. 2. 2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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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나이 71세.

 

췌장의 꼬리 부분에 또아리를 튼 악성 종괴는 발견 당시 이미 췌장의 경계를 넘어 엄마의 몸 구석구석을 마구 헤집어 놓은 상태였다. 병원 치료를 포기한 엄마는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겠노라 선언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딸 앞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하게 된다.

 

예고된 엄마의 죽음. 하지만 맞딸 정연에게 엄마의 부재란 너무도 낯설고 두려운 경험이었다. 생전 엄마와 정연의 사이가 각별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엄마는 남편 없이 두 딸을 성장시켰으며, 정연은 동생 미연과 달리 아직 미혼이었다.

 

정연은 동생 미연과 함께 엉겁결에 장례를 치르고 뒷일을 마무리하게 된다. 이후로는 온전한 추모의 시간. 정연은 엄마와의 추억을 되짚으며 엄마가 살아온 삶과 자신의 그것을 조용히 반추해 본다. 정연은 엄마를 잃은 이 춥고 힘겨운 계절을 과연 꿋꿋하게 극복해낼 수 있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 달이 지났다. 황망했다. 소설 속 이야기처럼 나 역시 급히 장례를 치르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제서야 어머니의 텅빈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모든 게 부질 없는 짓이란 걸 알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의 실체를 다시금 보고 싶고, 또 손으로 어루만져도 보고 싶다. 

 

공교롭게도 소설 속 엄마와 생전 내 어머니를 괴롭혀온 질병은 같다. 내 어머니의 죽음도 예고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그날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 어머니의 생전 모습을 잊지 않을 요량으로 살아계실 때 최대한 꾹꾹 눌러 담아둔다고 노력하였으나 너무도 급히 서둘러 떠난 어머니 앞에서 이 못난 자식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가뜩이나 추운 계절이건만 그래서 그 어느 해보다 가혹하고 모질게 다가오는 올 겨울이다.

 

다시 소설 속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정연의 엄마도 내 어머니처럼 겨울에 돌아가셨다. 대부분의 생명체들이 잠시 움츠러드는 차고 건조한 계절 겨울. 정연에겐 엄마의 부재로 인한 시련이 다름 아닌 이 척박한 계절 겨울 이미지로 치환된다. 소설은 차갑고 암울하기 짝이없는 이 겨울이라는 계절을 정연만의 방식으로 관통하며 엄마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당위를 독자들에게 차분히 전달한다.

 

정연은 서울에서의 생활을 일시 중단하고 엄마가 살던 집에 눌러 앉는다. 물론 이렇다 할 뾰족한 계획 따위는 없었다. 오랜 시간 머무르려고 했던 건 더더욱 아니다.

 

엄마의 손때가 묻은 집. 이곳에 머물던 정연의 머릿속은 엄마와의 추억들로 가득하다. 끊임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그녀의 감정도 사정없이 흔들린다.

 

엄마와 정연의 삶을 이어주는 매개는 칼국수였다. 정연은 엄마가 생전 요리해 주던 칼국수 레시피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재창조해내고, 이를 통해 외부세계를 향하여 조심스레 문을 두드린다. 엄마가 기르던 반려견은 정연의 손에 맡겨지게 되고, 반려견의 양육은 엄마의 삶을 넘어 자신의 삶을 정연만의 방식으로 이어 나가게 해준다. 나무를 닮은 남자 영준과의 인연도 그렇게 싹튼다. 

 

이로써 정연은 엄마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본인도 알지 못 하는 사이 조용히.

 

동토를 연상시키는 계절 겨울이 제아무리 길다 해도 결국 끝이 있음을, 아울러 어느덧 자신이 그 끝 지점 위에 서 있음을 정연은 스스로 터득하게 된 것이다.

 

부모를 잃은 상실감은 그 어떤 위로로도 치유받기 어렵다. 다만, 겨울이라는 계절을 정연이 묵묵히 관통하는 과정을 지켜 보며 약간의 위로를 얻을 수 있다면, 삶을 이어나가는 데 있어 작은 보탬이 되리라 생각한다. 작가가 써내려간 여리면서도 차분한 글 속에서 의외의 힘이 느껴지는데, 그건 아마도 능동형으로 지은 제목 탓일 듯하다 . '겨울이 우리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겨울을 헤치고 지나가야 하는 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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