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사회적 충격이 개인에게 전가되는 방식 '기억의 밤'

새 날 2017. 11. 30.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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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삼수생 진석(강하늘)은 자신이 갖추지 못한 재능을 고루 갖춘 형 유석(김무열)의 다재다능함과 두뇌의 명석함이 마냥 부러웠다. 덕분에 그는 형을 늘 자랑스러워했으며, 더 나아가 존경해 마지 않아 오던 터다. 형제의 우애는 남달랐다. 1997년 5월, 진석의 가족은 새집을 장만하여 이사하게 된다. 가족들은 기대감에 한껏 고무된 모습이다. 물론 찜찜한 구석이 전혀 없지는 않다. 널찍한 2층집이었으나 무슨 영문인지 이전 집 주인이 방 한 칸을 일시적으로 자신이 사용하게끔 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청해왔고, 이로 인해 형제는 본의 아니게 방 하나를 함께 사용해야 했다. 



이사를 오게 된 뒤로 진석은 이상한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아울러 이전 집 주인이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며 신신당부하던 그 의문의 방안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오는 등 환청에 시달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제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아버지(문성근)로부터 전화를 받고 급히 자리를 비운 형 유석이 그 짧은 시간 동안 괴한들에게 둘러싸여 납치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는 진석이다.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뒤 무려 19일만에 집으로 돌아온 형은 가족들이 애태우던 현실을 뒤로 한 채 그간의 일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무슨 까닭인지 당시의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새하얗게 지워지고 만 것이다. 진석이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있었음에도 이후 형의 행동은 어딘가 모르게 이상했다. 급기야 곤히 잠들어 있어야 할 새벽 야심한 시각에 벌떡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조용히 다녀오는 형이다. 악몽은 갈수록 심해지고 환청이 일상을 옥죄어오는 날의 연속인 상황, 심리적 고통과 번민 속에서 몸부림치던 진석은 새벽에 일어나서 어디론가 사라지던 형의 뒤를 무작정 쫓는다. 이윽고 밝혀지는 놀라운 사실들, 진석에게 과연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진석과 그의 부모, 그리고 형제 간에 이뤄지는 대화는 여느 가족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화기애애한 듯 보이나 진석을 통해 드러나는,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 표정과 씁쓸한 웃음은 그들 사이가 사실은 고루 섞이기 힘든 매우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게 한다. 친숙함을 표현하기 위한 요량에서 비롯된 듯한 형의 과장된 몸짓은 이의 정점이다. 



진석을 괴롭히고 있는, 알 듯 모를 듯한 그 기묘한 악몽과 이전 집 주인이 사용하겠다며 비워둔 방에서 들려오는 환청, 그리고 무언가 어색하기 짝이 없는 가족들 간의 관계, 이러한 요소들이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안락하게 다가와야 할 집안은 온통 의심과 음울한 기운투성이다. 좁디좁은 공간과 익숙한 사람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왠지 낯선 느낌과 팽팽한 긴장감은 관객이 스크린을 통해 경험하게 될 탄성력을 어느새 임계치에 다다르게 한다. 


평소 친숙하던 것들을 향해 의심이라는 외피를 덧씌우니 스릴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의혹이 되어서는 안 될 관계와 대상 그리고 공간이 온통 의심투성이로 둔갑하자 이는 어느덧 공포로 변모, 관객들에게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독특한 소재와 짜임새 있는 스토리는 근래 접할 수 없었던 독창적인 스타일이다.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대목이다. 게다가 반전이 거듭되면서 앞서 지나쳤던 사건의 궤적과 이후 벌어지는 신들 사이의 개연성이 척척 들어맞는 점은 이 작품의 각본이 그만큼 탄탄함을 입증하는 요소다. 



긴장감을 최고 수위로 고조시킨 뒤 조금은 느슨해져도 될 듯싶은 찰나, 그러니까 마음을 풀어놓는 순간 여지없이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신은 문득 작품에 몰입하느라 잊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 영화가 스릴러 장르임을 재차 깨닫게 한다. 강하늘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는 흠 잡을 데 없다. 특히 몸을 사리지 않은 듯한 강하늘의 길바닥 위에서의 투혼은 이번 작품에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그의 고군분투가 돋보인다. 


가정이라는 특별한 공간이 갖는 포근함과 평범함이라는 이미지의 이면에 감춰진 섬뜩함은 현재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안온함이 얼마나 허무하게 그리고 맥없이 무너질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장르적 특성 탓에 관객으로 하여금 적당한 공포감과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극을 끌어나갈 것으로 짐작했으나 의외로 사회성이 뚜렷하다는 점은 이 작품만의 특징이자 정체성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영화는 1997년, 그리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7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한다. 1997년은 우리로서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해다. 



외환 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내는 바람에 국가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다. 후폭풍은 매서웠다. 환란은 온 국민으로 하여금 미증유의 고통을 감내하게 만들었다. 우리처럼 평범한 소시민들의 삶을 일제히 밑바닥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십시일반으로 금붙이를 모아 내다팔던 기억은 차라리 행복했던 추억이자 경험이다. 



그동안 우리 경제를 든든하게 받쳐온 중산층을 대거 몰락시켜 한계 이하의 삶으로 전락시키거나 그도 아니면 거리로 내몰았으며, 이도 모자라 가족마저  해체시키는 비극을 오롯이 감내해야만 했다. 이렇듯 IMF는 우리의 삶에 도무지 회복하기 힘든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영화는 이러한 아픈 경험에 천착한다. 감독은 사회적 충격이 개인에게 어떻게 전가되고 있는가를 그만의 적나라하면서도 극단적인 방식으로 묘사한다. 어쩌면 가혹하리만치 잔인하기 짝이 없었던 그 20년 동안의 기억을 차라리 해리성 기억상실증이라는 질병에 의존해서라도 이를 지우고 싶었던 욕망을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를 빌려 발현시키려 했던 게 아닐까 싶다. 



감독  장항준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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