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스릴의 이면에는 뭉클한 모성애가 '장산범'

새 날 2017. 8. 18. 12:37
반응형

준희네 가족은 할머니(허진)의 치매 치료를 위해 어느 날 고향인 장산으로 내려가게 된다. 숲으로 둘러싸이고 다소 외진 곳에 위치한 새 집은 숲과 강아지를 테마로 하는 펜션 형태였다. 준희 엄마인 희연(염정아)은 고향으로 돌아온 할머니가 치매 증상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되기를 한껏 고대하는 입장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들이 키우던 개를 잃어버려 이를 찾겠다며 두 남매가 준희네 집으로 찾아온다. 바로 그 때다. 펜션 너머 숲 방향에서 남매가 찾는 개의 소리가 들려온다. 남매는 흡사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양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남매가 도달한 곳은 아주 오래 전에 폐쇄된 장산터널이었다. 터널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남매는 희연 부부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고, 그들은 그곳에서 경찰에 의지해야 할 만큼 잇따라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동시에 희연은 장산터널 부근에서 어린 소녀(신린아)를 발견하고, 남루한 옷차림과 몰골이 안쓰러워 자신의 집에서 당분간 함께 지내기로 작정한다. 하지만 소녀가 들어온 이후 집에서는 자꾸만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데...



사실 희연 가족에게는 준희 오빠인 준서가 있었으나 얼마 전 실종됐다. 적어도 희연의 머릿속에는 그렇게 기억되어 있다. 그녀가 도시를 떠나 숲속의 외딴 펜션으로 거처를 옮긴 이유 가운데 하나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의 치료 목적도 있었으나, 그보다는 치매 증상이 호전될 경우 잃어버린 준서와 마지막으로 자리를 함께했던 시어머니로부터 준서에 관한 작은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 때문이다.



희연의 삶은 준서를 잃어버린 그날 부로 사실상 멈춰있었다. 사건이 벌어지고 시간이 제법 흘렀으나 과거 준서의 모습이 기록된 비디오를 여전히 켜놓은 채 잠을 청하거나, 모아놓은 준서의 소지품들을 보듬으면서 아이를 잃은 아픔과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안쓰럽기 짝이없다. 그런 그녀에게 장산터널 부근에서 발견된 길을 잃은 듯한 정체모를 작은 소녀는 준서에게 미처 쏟지 못한 모성애를 자극해오는 대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소녀는 그녀 나름대로 희연을 살갑게 '엄마'라 부르며 준서로 인해 가슴에 생긴 커다란 구멍을 메워주고 있었다. 하지만 희연의 남편인 민호(박혁권)는 희연과 소녀의 관계가 영 떨떠름하기만 하다. 부부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인자는 다름아닌 이 정체모를 소녀였으며, 실제로 미스터리한 일 모두는 이 소녀 주변에서 빚어지고 있었다. 



희연이 소녀에게 베푸는 애정과 관심은 관객의 마음마저 따스하게 녹인다. 자신이 낳고 기르던 아이를 잃은 엄마의 입장에서 겪었을 고통을 감히 헤아릴 수는 없으나 희연이 소녀의 얼굴을 보듬으며 "미안하다, 엄마가 지켜줄게" 라고 다독이는 장면은, 흡사 영화 '오두막'에서 하나님 배역을 맡은 옥타비아 스펜서가 자신의 딸을 유괴살해범에 의해 잃고서 실의에 빠진 샘 워싱턴에게 다가가 따스하게 건네던 위로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염정아의 엄마 연기는 뭉클함 그 자체다.



배우 염정아가 극중 선보인 모성애는 실제로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감히 범접하기 어려울 만큼 리얼하다. 그녀의 연기에서 한결 원숙미가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작부터 심장을 조여오는 긴장감은 영화가 막을 내리는 그 순간까지 맥빠짐 없이 지속된다. 스릴러 장르로써는 일단 합격점을 주고 싶다. 이 작품은 초자연적 존재와 현상을 다루는 무속신앙을 근간으로 한다. 그러면서도 전래동화 '해님 달님'이나 에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같은 작품의 모티프 일부를 차용해온 점은 이채롭다. 



감독이 그 어떤 작품보다 사운드 효과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러한 효과 덕분인지 실제로 관객으로 하여금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묘미를 선사해준다. 그의 연장선이지만, 환청은 이 영화에서 핵심 소재다. 이 작품에서 소리는 관객의 호기심을 유발하거나 배우들의 움직임을 결정짓고 때로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의 쓰임새로도 활용된다. 희연이 장산동굴 속에서 그녀를 미혹하는 여러 소리로 인해 혼란을 겪을 때마다 관객은 함께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으며, 자연스레 그녀가 겪고 있는 고통의 크기를 헤아려보게 된다. 



희연이 겪고 있는 고초가 심해질수록 그녀 안에 내재돼 있던 모성애는 더욱 뜨겁고 강하게 달궈진다. 이 계절의 막바지 더위를 몰아낼 만한 스릴을 충분히 만끽함과 동시에 그 이면에 따스하게 흐르는 희연의 강한 모성애로부터 뭉클한 감성까지 전달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흡족스러운 작품이다. 



감독  허정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