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우리의 시민의식은 어느 수준에 와 있을까?

새 날 2017. 7. 9.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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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은 우리를 몹시 부끄럽게 한다. 외견상 빌라로 판단되는 건물 옥상 위로 쓰레기 더미가 가득 들어찬 광경은 그 모습만으로도 고약한 악취가 풍겨올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이 아닐 수 없었다. 해당 게시글 아래에 달린 댓글창에는 우리나라가 맞느냐는 확인 글 일색이었다. 당연히 중국일 것이라는 댓글이 많은 것으로 봐선 나름 우리의 시민의식을 굳게 믿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주변 아파트에는 한글로 아파트 명칭이 또렷이 적혀 있음이 확인된다. 이후 무언가 피치 못할 특별한 사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성의 글들이 주류를 이루며, 여전히 우리의 시민의식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눈치였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며 별반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인터넷 커뮤니티


그러나 결과적으로 볼 때 나를 비롯한 많은 네티즌들이 우리의 시민의식 및 양심에 대해 지나치게 과대평가했던 게 아닐까 싶다. 이후 해당 사건에 대해 여러 언론사들의 취재 및 보도가 뒤따랐고, 그 결과는 상당히 충격적이면서도 부끄럽기 짝이없다. 낯 뜨거울 정도다. 해당 건물은 인천의 남구 주안동에 위치해 있는 3층 짜리 다세대주택이었으며, 3년 전에 폐쇄되어 현재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옥상 위에 쌓인 쓰레기 더미는 모두 3.5톤의 분량으로, 3년 전부터 주변 사람들에 의해 차례차례 버려진 것으로 추측된다.


해당 건물의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고, 모두 폐쇄된 상태라 그곳으로부터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옥상 위 쓰레기들은 전부 해당 다세대주택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주변 건물 입주자들이 버렸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JTBC가 주변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여 실제로 이웃하고 있는 오피스텔의 한 주민이 밤 늦은 시각에 몰래 해당 건물 옥상에 쓰레기 더미를 투척하는 장면을 촬영, 보도함으로써 사실로 밝혀졌다. 아울러 쓰레기 수거 작업에 나선 인천 남구청이 버려진 쓰레기 봉투 안을 뒤져 3-4명의 불법 투기자를 찾아냈는데, 이들 역시 바로 옆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버려진 쓰레기 더미의 대부분은 종량제 봉투가 아닌 일반 비닐 봉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긴 종량제 봉투 값을 아끼기 위한 요량이었을 테니 이러한 결과는 지극히 당연하지 않을까? 혹시나 했던 나의 생각은 다수의 양심을 저버린 사람들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법과 제도가 버젓이 살아있고, 그러한 시스템에 의해 우리 사회가 일견 잘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이렇듯 감시가 느슨하거나 개개인의 양심에 기대야 하는 상황에서는 여지 없다.



물론 쓰레기의 불법 투기 행위와 관련하여 인간의 심리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길을 걷다가도 누군가가 먼저 빈 병이나 컵 등을 길 가운데에 버려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주변은 쓰레기 더미로 돌변하곤 한다. 한 두 사람에 의한 일탈이 다른 사람들의 비슷한 행위에 영향을 미치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부여하기라도 하는 양 이러한 일들은 도심 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혹자는 거리 곳곳에 설치돼 있어야 할 쓰레기통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며 항변한다. 물론 전혀 틀린 주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서울 도심만 하더라도 거리 위 쓰레기통의 숫자가 수년 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종의 군중심리와도 같은 쓰레기 투척 행위는 쓰레기통이 있든 없든 그것과는 별개로 받아들여진다. 아울러 지자체마다 서로 경쟁적으로 쓰레기통을 없앤 이유 역시 각 가정에서 배출된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등 아이러니하게도 부족한 시민의식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민의식의 부재가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게 했고, 이는 다시 시민들의 시민의식 부재 현상을 부채질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하고 있는 셈이다. 


비단 거리 위의 쓰레기 더미만이 문제가 아니다. 주택가 주변에도 조금 으슥한 곳은 여지없이 쓰레기 불법 투기 현상이 빚어진다. 한 두 사람이 먼저 쓰레기를 버리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은 온통 쓰레기 천지로 돌변하고 만다. 법과 제도가 잘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 몇 푼 아끼기 위한 요량으로 혹은 당장 자신만 편하고자 하는 얄팍한 생각에 의해 감시의 눈길이 뜸한 틈을 이용, 흔히들 양심을 저버리곤 한다.


이번 다세대주택 옥상의 쓰레기 더미 사례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해당 건물이 폐쇄되어 사람이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이웃 주민 가운데 누군가가 먼저 쓰레기를 불법 투기했을 테고, 이를 확인한 또 다른 주민들에 의해 몇 푼 아껴 보려는 심정 반, 당장 편하고 싶은 심정 반이 더해져 은근슬쩍 버려지기 시작하면서 오늘날의 쓰레기 더미로 돌변했을 테다.


ⓒ경향신문


결국 이는 시민의식의 부재가 낳은 볼썽사나운 사례이자 양심을 저버린 행위이다. 3.5톤에 이르는, 악취가 진동하는 거대 쓰레기 더미는 사실상 우리가 버린 양심에 해당하는 무게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법과 제도를 언급하기에 앞서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려선 안 된다는 건 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교육을 받아 왔고 몸에 체화됐을 법한 가장 기초적인 공중도덕 가운데 하나다. 이를 다 큰 어른들 앞에서 재차 언급하는 일 자체가 참으로 부끄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집이라면 쓰레기를 그토록 아무렇게나 버리고 방치할 수 있을까? 


이번 사례는 현재 우리의 시민의식과 양심이 어느 수준에 와 있는가를 간접적으로 확인시켜주는 잣대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감시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양심마저도 아주 쉽게 저버리는, 여전히 속물에 불과한 우리의 얕은 시민의식을 향한 일종의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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