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새누리당 저출산 대책에 화가 나는 이유

새 날 2015. 10. 2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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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당정협의가 국회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새누리당은 청년들이 취업하는 사회 진출 연령을 낮추기 위해 초등학교 입학을 2년 가량 앞당기는 등 학제 개편을 정부에 요구했다. 앞서 정부가 지난 18일에 내놓은 저출산 대책 시안에 이어 이번엔 여당이 내놓은 관련 해법인 셈이다. 정부는 이를 적극 검토키로 했단다.

 

이 자리에서 새누리당은 정부가 내놓은 시안을 향해 과거 대책의 재탕이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지난 10년간 10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붓고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정부가 과거 대책을 다시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데 대해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과거 대책의 저출산 극복 효과가 미흡한 점에 대해 분석도 않고, 이번 대책에 따른 예산 및 관련 법안조차 제시하지 않았다"며 발상의 전환과 획기적인 대책을 주문했다.

 

ⓒ세계일보

 

정부가 18일 '제3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 계획'을 내놓자 인터넷에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비등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피상적인 대책으로 일관하는 정부에 대해 청년세대들이 냉소적인 반응을 일제히 쏟아낸 것이다. 새누리당이 정부를 질책한 이유도 다름아닌 이러한 여론을 다분히 의식했음직 하다. 새누리당의 정부 질타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저리도 정곡을 제대로 찌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만큼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이토록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선 새누리당이 들고 나온 회심의 대책이란 건 과연 무얼까? 새누리당은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현행 만 6세에서 5세로, 1년 정도 앞당기고 초등학교를 6년제에서 5년제로, 중고 6년을 5년으로 줄이는 학제개편을 과제로 검토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학제에 손을 대서라도 사회 진출 시기를 앞당기겠다는 취지이다. 새누리당은 청년들의 사회 진출 연령이 높아지는 것을 늦은 결혼과 저출산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사회 진출을 앞당길 경우 늦은 결혼과 그에 따른 저출산 문제가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교육계의 반응은 둘로 갈린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자녀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나면 여성의 취업률이 올라가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취학 연령을 낮추는 것이 저출산 문제 완화에 일정 수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자녀를 1년 일찍 학교에 보낼 경우 그만큼 양육비용과 유아기 사교육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측면도 있다. 우리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 만큼 중차대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는 저출산의 원인이 이러한 해법으로 정말 해결 가능한 걸까? 

 

그러나 학제 개편 문제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리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때문에 실제 실행까지는 상당한 혼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교육과정 및 입시제도의 변화와 함께 수조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해 1학기를 9월에 시작하는 ‘9월 학기제’ 도입을 공론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조차도 섣불리 손을 대지 못하는 현실에서 학제 개편은 이보다 훨씬 복잡다단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교육부 역시 학제 개편에 대해 쉽지 않으리라 판단하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교육과정, 학생 발달단계, 예산, 사회적 환경 등 고려할 사항이 너무 많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새누리당이나 교육계 일각에서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저출산과 학제 개편의 연계성도 실은 알려진 바 전혀 없다.

 

저출산 문제는 생산가능인구를 지속적으로 감소시켜 우리나라를 노동력 부족 국가로 전락시키고 있는 양상이다. 새누리당이 꺼내든 대책은 취학 연령을 낮출 경우 사회 진출 연령도 낮아져 결혼이나 출산 연령 역시 그에 따라 낮아질 것이라는 지극히 긍정적인 전제가 깔려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나 새누리당 할 것 없이 저출산의 원인을 결혼을 자꾸 미루는 등 늦은 결혼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회 진출 연령이 1년 내지 2년 빨라질 경우 그만큼 생산가능인구를 늘릴 수 있다는 복안까지 고려한 듯싶다. 이른바 꿩먹고 알먹고?

 

ⓒ국민일보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작금의 저출산 원인을 전혀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다는 방증이다. 앞선 포스팅 '정부 저출산 대책에 청년세대는 왜 냉소적일까'를 통해서도 언급한 내용이지만, 젊은 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가 단순히 나이에 있지 않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저출산은 살인적인 경쟁과 나아질 기미 없는 팍팍한 현실의 삶, 출산과 양육을 어렵게 만드는 사회적 환경, 불투명한 미래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서 비롯되어 발현되고 있는 현상이다. '헬조선'의 유행은 괜한 게 아니다. 사회 진출 나이를 낮춘다고 하여 결혼하지 않으려던 젊은이들이 결혼을 꿈꾸게 되고, 또 늦은 결혼마저 빨라져 출산율이 높아진다는 건 그야말로 꿈보다 해몽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정부와 마찬가지로 우물에서 숭늉을 찾으려 시도하고 있다. 여당이 정부의 대책마저 비판하고 나선 상황이지만, 이쯤되면 실은 정부나 새누리당이 내놓은 대책 모두 도긴개긴이 아닐까 싶다. 특히 새누리당이 내놓은 저출산 대책은 더욱 웃프다.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히기 위해 옷을 재단하는 게 아니라 사람더러 옷에 맞추라고 하는 것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대해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며 강하게 비판해놓고선 되레 황당한 발상을 꺼내든 새누리당이다. 저출산 현상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 다름아니다. 국가는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미래가 달린 사안이다. 이를 놓고 집권여당이란 작자들은 또 다시 표피적 해법만을 제시하며 그 나물에 그 밥인 정부를 질타하고 나섰으니, 이 얼마나 적반하장인 상황이며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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